보통은 하루 2끼를 먹는다. 아침으론 계란, 양배추, 두부 부침을 즐겨 먹는다. 요리도 실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잘하게 된다. 당근 수프, 단호박 수프... 수프 종류라면 나만의 것으로 무엇이든 뚝딱, 마녀 수프처럼 아주 맛있게 만들 수 있다는 부심이 있다. 샌드위치도 그 중 하나다.
그릴 파히타, 타코, 부리또, 샌드위치를 도시락으로 척척 싸곤 한다. 도시락도 꼭 선물처럼 싼다. 겉만 보면 이것이 도시락인지 선물 박스인지 꾸러미인지 모를만큼. 아주 작고 사소하지만 내겐 낭만이 되는, 하면 기분 좋아지는 것들이다. 내가 나에게 매일 주는 선물.이 된다.
닭안심에 갖은 향신료를 넣어 마리네이드 해놓았다. 저녁은 파히타로 정했기 때문. 혼자 먹는다고 해서 소홀하면 더더욱 안될 일. 혼자일수록 아주 맛있게, 맛도 모양도 기깔나게 먹겠다.는 생각이 있다. 요리하는 동안 굉장히 조용한 침묵. 고요의 순간이었다가 그 고요에서 깨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허밍으로 룰루랄라. 신나게 요리한다. 불 앞의 온기도 어쩜 따수운지. 정말 별 거 아닌 것이 별 것이 되어버린다.
며칠 전 양지를 사다가 양념해 볶았는데 주변에서 다들 맛있다고 했다. 이국적인 맛.이 난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다.라고 했는데 즉흥적인 요리 같으면서도 하는 동안 내 나름 고도로 계산된 것이 아닐까.싶다.
향신료를 좋아해서 또 그런 맛이 취향이라서 요리할 때 향신료를 자주 넣는데 그래서인지 내 요리는 한식을 해도 이국적인 맛이 난다. 분명 한식 스타일인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익숙한 맛.을 내는 일이 드물달까.
샌드위치를 만들 땐, 바게뜨인지 브리오슈인지 식빵인지 사워도워인지 베이글인지... 상관 없이 간이 적절히 밴 프레시한 식재료들 간의 밸런스를 맞춰 나간다. 샌드위치가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손이 많이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정성들일수록 맛있어지는 것도 이것이다.
직접 만든 바질 페스토에 치즈 한 장만 넣어도 그 어느 샌드위치 부럽지 않은 초간단 그러나 계속 당기는 샌드위치가 된다. 그러면서도 느낀다. 꼭 무언가 꽉 채워진다고 해서 다 좋을 것은 아니라고. 넘치면 없으니 못할 때도 있다는 걸, 너무 넘치지도 않고 너무 부족하지도 않게 그 사이의 시계추 중심을 잘 잡아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진다.
"바질페스토와 치즈 한 장으로도 이토록 맛있단 말이지... 어쩌면 이토록 단순한 것이. 단출한 것이. 기본이, 실은 본질인 것이지..." 무튼 적절하게. 넘치지 않게. 슴슴한 듯 안한 듯 그러나 기가막히게 간이 밴요리는 늘 내게 많은 걸 던져준다. 질문하게 하고 나만의 답을 발견하게 한다.
둘러보면 온통 사유할 것 투성이다. 그러니 어느 공간에서든 사색이 이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양배추를 찹하면서도 지금 나의 숨, 나의 행위, 움직임을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엔 살아있음.을 느낀다.
하루하루 살아있다는 것이, 살아졌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같은 일임을 꽤 오랜 시간 놓치고 살았다. 요즘 절로 입밖으로 나오는 말이 있다. "짧은 인생..." 사실이고 묻고 따지고 할 것 없는 생과 사의 이치다.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 그러거나 저러거나 지금의 나.만 있다는 것. 이 순간의 나.만 있다는 걸 요리하면서도 나는 수시로 실감한다. 고요한 알아차림 안에서 내 안의 묵직함, 움직이지 않는 것. 변하지 않는 것.과 마주한다.
분명 나이 들어가고 있다. 생기도 이십대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것도 사실이고 눈가와 입가의 주름도 예사롭지 않다. 마흔이 넘고 어느 시점엔 눈도 침침하게 되는 순간들이 오겠지.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만 급변적인 것보단 천천히 스며들듯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누구에게나 젊음은 공평한 것이다. 나이듦도 마찬가지다. 생애의 당연함, 필연을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겠다. 정말 나이들어서만일까. 몇 년 전부터 나의 변화가 심상찮은데ㅡ 나 다워지는데 화려함보단 점점 구수함, 촌스러움, 옛스러움, 단출함의 성정이 됐다.
서른 초중반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나는 이토록 단출할 수가 없다. 수수할 수가 없다. 반짝이던 시절도 한 때.다 싶고 그 시절은 그 시절대로 또 아름다웠다. 지금은 귀걸이도 차지 않고 메이크업도 안하거나 옅게 하고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패션으로 살고 있다. 유행 없이 살다보니 자유롭다. 옷을 입을 때도 내가 입었을 때 내가 예뻐 보이는 것. 내게 잘 어울리는 색감과 텍스쳐. 입으면 기분 좋아지는 옷. 기준으로 고르고 입는다.
구수한 언니가 돼가고 있다는 건 나로선 이토록 긍정적이다. 남과 비교할 것 없이 내가 좋은 것.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기 때문인데, 짧은 인생.에서 언제까지 남과 비교하는 삶을 살텐가?하는 자각이 있은 후다. 진짜 나.로 살아가야한다.는 타는 결기다. 나는 화려함보단 소박한 것. 사소한 것. 촌스러운 것. 투박한 것.과 더욱 결이 맞는 사람이었다. 그런 류. 그런 감성을 좋아했고 그런 것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고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인 것이다.
남들이 날 어떻게 볼지.에 관해 상관하지 않는다. 무심하다. 의식하거나 상관할 게 없는 것이 누가 타인의 생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을까.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 판단하지 않는다. 나도 타인도. 나와 타인은 누구의 평가대상도 판단대상도 아니다.
자기 본연의 의지로 자기 생.을 살아가면 되는 것을. 오랜 시간 놓치고 산 내 소중한 삶에 대한 아쉬움, 안타까움, 회한이 있었다. 이제 더는 소모적인, 축내는 것들을 하지 않기로 했다.
짧은 인생... 정말 맞다. 그러니 이제라도 진짜 자기 생.을 살아야 한다. 언젠가 스러지게 되더라도 그 길 안에서 스러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