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싣고 달린 봉고차
대학 졸업과 함께 시작된 여정
봉고차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나와 동대문에서 십 년 이상을 함께한 아이다. 이름은 그레이스. 지금은 길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아주 가끔 볼 수 있는 차다.
대학을 졸업한 해부터 몰았으니, 사회에 발을 내딛자마자 단짝이 된 친구나 마찬가지였다. 옷을 실어야 해서 앞 좌석만 남겨두고 뒤는 전부 짐칸이었다.
차 유리는 선팅이 되어 있지 않았다. 24살의 체구도 왜소한 여자가 큰 차를 몰고 다녀서인지 일하는 현장에서 언제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당시에는 그 관심이 너무 싫었다. 훤히 잘 보이는 차 유리도,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그 나이면 한참 멋도 부리고 좋은 차도 좋아할 나이다. 봉고를 몬다는 게 좀 창피했다.
하루하루를 함께한 동반자
그럼에도 그레이스를 정말 잘 몰고 다녔다. 출퇴근할 때는 물론,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 기분 전환을 위한 드라이브를 할 때, 물류 창고에 갈 때, 인천에 통관 관련 업무를 보러 갈 때, 내 이동 동선엔 언제나 그레이스가 함께 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2종 면허를 따고 처음 몰게 된 차가 그레이스였다. 처음에는 혼자 도로에 나가는 게 너무 무서워 동생을 옆에 태우고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동네에서 버스를 따라다니며 운전을 연습했다. 혼자 길에 나서는 것조차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적응하고 나서는 큰 차를 자유자재로 몰며, 주차도 수월하게 하고, 다니지 못하는 곳이 없을 정도로 여로 곳을 누볐다.
그레이스와 나만의 공간
지금은 그레이스가 내 곁에 없지만, 어쩌면 폐차되었을 수도. 몇 년 전 수소문해 보니 사무실 근처 카센터에 중고로 넘겨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찾아가 봤지만 그레이스는 볼 수 없었다. 꼭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
당시엔 봉고를 모는 것이 참 부끄럽고, 되도록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봉고를 몰던 모습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고유성 속에서 나만의 독특한 캐릭터도 생겼다.
24살에 일을 시작해서 10년 이상의 시간 동안, 봉고차를 몰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공장 직원분들을 챙기고 전체적인 운영까지 맡아서 했다.
그레이스는 때론 나만의 힐링 공간이 되어주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이면 초콜릿이나 달콤한 간식거리를 사서 차 안에서 편안하게 먹었다. 음악을 듣고, 때론 울기도 하고, 바람의 쐬고 싶은 날이면 훌쩍 드라이브를 떠났다. 그 안에서만큼은 온전히 나 자신일 수 있었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한정적인 공간인 차체에 담긴 넓은 꿈과 책임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제한된 공간의 차체에 큰 꿈과 책임을 싣고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것 같다. 그레이스와 함께 한 시간은 지금 생각에도 특별하고, 삶의 한 페이지를 만드는 순간이었다.
단순한 봉고차가 아니었다. 청춘과 용기, 책임감을 함께 싣고 달려준 친구였고, 때로는 세상과 잠시 거리를 두고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쉼터였다. 언젠가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그대는 그냥 반갑게 웃으며 인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