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안식처였길 바랬건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꼭 쉐다곤 파고다를 들렀다 가고 싶었다.
양곤에서 6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지만 힘든 일이 있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면 쉐다곤을 가곤 했다.
정리되지 못한 감정들과 때때로 밀려오는 공허함과 서글픔을 해소하기 위해 붉은 노을이 드리 울 때쯤 쉐다곤을 가면 그 찬연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조용한 곳에 앉아 명상을 하거나 개인의 소망을 기도하고 나면 다시 일어설 힘을 얻곤 했다.
2020년 12월 코로나로 인해 쉐다곤은 폐쇄되었고, 회사의 응급상황으로 인해 긴급히 한국으로 가야만 했을 때 쉐다곤을 마지막으로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무척 아쉬운 것 중 하나였다. 그러다 올해 다시 미얀마와 연이 닿아 양곤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한동안 업무 인수인계와 집을 구하러 다니는 등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다 보니 벌써 10월을 넘겼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쉐다곤을 갔다. 외로운 타국 생활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곳을 다시 방문한다는 것에 살짝 설레기까지 했다. 그런데 미얀마의 상황이 변했기 때문일까. 오늘의 쉐다곤은 더 이상 마음의 안식처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북문에 내려 예전처럼 위에서 외국인 입장료를 내고 올라가는 줄 알았는데, 검열이 더 엄격해졌다. 가방 안을 샅샅이 확인하고 심지어 지갑까지 열어보는 것을 보고 기분이 살짝 나빴다. 어차피 겉에서 만져져도 딱히 문제 될만한 것이 전혀 없음에도 자꾸 시간을 지체하는 것이 조금 불만스러웠다. 그러다 외국인 입장을 담당하는 담당자가 나를 어디론가 계속 데리고 갔다. 불안한 마음에 어디로 자꾸 데려가냐고 물으니 외국인 관리 사무소로 간다고 한다. 지금 미얀마 상황이 많이 불안해져서 외국인이 쉐다곤을 방문하는 것을 엄격히 관리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 시내 곳곳에서 폭발 등이 일어나고 있고 경찰들의 검문이 더욱 강화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외국인 전용 사무소에서 명단까지 작성하고 론지까지 빌리니 30분이 지나있었다. 약간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드디어 쉐다곤을 보는데 그 찬란한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미얀마 사람들은 기도를 하거나 사진을 찍고 있었고 방문객들도 예년에 비하면 현저히 많이 줄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적은 편은 아니었다. 물론 외국인은 보이지 않았다. 입구에서 긴장을 하고 온 탓이었을까, 생각보다 쉐다곤에서의 시간을 즐기지 못했다. 감사한 것도 염원하고 싶었던 개인적인 소망들도 많았지만 오늘은 꾹 눌러 참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얀마에서 와서 생각보다 양곤 시민들의 일상생활이 활발해져 크게 위험하다 느끼지 않았었다. 그런데 외곽지역과 지방에서는 여러 안 좋은 소식들이 들려온다. 환율은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고 물가는 멈출 줄 모르고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가 1차로 크게 타격을 받았는데 쿠데타로 직격탄을 맞아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넘쳐나고 월급까지 줄었다고 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이 나라에 더 이상 희망을 느끼지 못한 건지 외국으로 유학을 가려는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 꼭 폭풍의 핵 속에 있는 것만 같다. 이런 상황에서 어쩌면 여러 면에서 안정적인 나라에서 온 내가 개인적인 소망들을 기도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다른 염원을 했다.
'미얀마가 얼른 안정을 찾아 더 이상 고통받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길 기원합니다.'
'미얀마에서 인연 닿은 모든 사람들이 모두 안전하게, 이곳에서 해야 하는 일들을 완수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부디, 부처님께서 이 염원을 받아주시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