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찰리
지난 2019년 12월 1년간 인턴으로 일하던 회사의 계약이 끝났다. 파견 계약직과 인턴 계약직으로 경험한 두 번의 회사생활은 어떤 세상에 던져져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을 줬다. 한 두세 달쯤 모아둔 돈으로 자기 계발을 한 다음 여유롭게 이직할 생각에 들떠있던 나는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 팬데믹과 그에 따른 경기침체를 맞았다.
스무 살부터 작년 겨울 일을 관두기까지 난 쉬지 않고 살았다. 학교도 다니고 틈틈이 아르바이트도 하고, 영화제를 쫓아다니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았다. 난 너무 궁금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좋아하는 걸 일로 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지. 이리도 열심히 살았는데 왜 아직도 난 답을 모르는 걸까.
언젠가 엄마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렇게 고민했는데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오히려 이런저런 경험이 선택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난 이제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 뭘 해야 할까 난?” 우리 엄마는 무심하게 툭 그러셨다. “당장 뭘 해야 할지 모를 땐, 그냥 눈 앞에 있는 일을 해”
출근할 직장도, 공부할 학교도, 심지어 목표도 없는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나에게는 일을 하며 모아둔 적금통장과 1년 계약 만료로 수령할 수 있는 실업급여가 있었다. 공과금, 통신비등 고정적으로 빠져나가는 돈을 빼도 당장 6개월 정도는 먹고살 수 있었다.
먼저 엉망이 된 몸부터 살폈다. 급작스럽게 5kg이 찌는 바람에 무릎이고 허리고 관절이 남아나지 않았다. 유튜브를 뒤져서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홈트레이닝 동작들을 익혔다. 새벽에 자고 한낮에 일어나는 습관을 바꿨다.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영어를 포기한 문과생이었던 나는 늘 영어 콤플렉스가 있었다. 언제까지 콤플렉스 속에 살 수는 없지. 퇴직금을 1원도 못써보고 바로 영어학원을 등록했다. 원래 돈을 써야 아까워서 하는 법이다.
매일 신문을 읽었다. 세상 돌아가는 일은 알아야 하기 때문에. 깨끗한 곳에 정리된 마음이 담긴다고 쓸고 닦고 집을 정리했다. 한국어능력시험, gtq포토샵 1급, 한국사능력검정시험...말뿐이었던 자격증 시험도 준비했다.
의미없는 비교로 남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로 했다.
백수생활을 맞아 스스로를 정리하고자 브런치를 시작했다. 말이 아주 많은 나지만 글로 내 이야기를 하는 건 아직도 쑥스럽다. 들키지 말아야 할 부분까지 드러나는 느낌이 든다. 인생이 늘 그렇듯 내 마음대로 안되지만, 가끔씩 한두 줄 써 내려가는 글은 나름 큰 위로가 됐다.
엄마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코로나가 가져온 간만의 휴식기는 늘 달려 나가는 법만 알던 나를 자리에 가만히 붙잡아두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내가 생각보다 운이 좋고 가진 게 많은 사람임을 알았다. 누구나 같은 출발선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온전히 나만의 고민에 몰두할 수 있다면 아직 내 삶에는 여유가 있다는 것 역시도.
앞만 보고 달리는 것만 방법인 줄 알았는데, 멈추고 보니 몰랐던 길들이 보였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었다. 지난 6개월의 백수 시절에 오늘로서 마침표를 찍는다. 이제 안다. 불안했던, 모든게 멈춘줄 알았던 시간들 또한 내 삶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