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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와 찰리 Jul 29. 2020

[술로 빚은 인간관계] -1 소주와 홍초

주정도 때론 약이 된다

글 | 미지

눈 앞에 있는 일이 내게 득이 될지 독이 될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세상 사는 게 조금 편해질 것 같다. 2n년 동안 나는 내 앞에 떨어진 모든 일들을 조금이라도 떨어지지 않게 주어담기에 급급했으니. 그땐 기회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알고보니 시간 낭비였던 경우가 많았다. 그때의 나에겐 감탄고토의 태도가 조금 필요해 보인다.
나는 아직도 단맛과 쓴맛을 구별하는 데 능숙하지 못하다. 일단 덥석 먹고 ‘아 쓴맛이구나’ 생각한다. 그러고도 잘 뱉지 못한다. 어쩌면 이십대 중반, 사회 초년생에겐 당연하다. 그럼에도 하나 확실한 건 단맛에서도 쓴맛에서도 하물며 신맛에서도 성장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를 만들었던 단맛과 쓴맛, 그리고 신맛, 매운맛, 짠맛 이야기. 미각(味覺) 만족 에세이, 지금 시작한다.     


코로나 시대, 백수의 음주 라이프

멈춰 있는 시간에 종종 인간관계를 생각한다. 만남과 대화가 제한된 요즘, 나는 지나간 관계들을 하나하나 꺼내보며 후회와 반성을 이어나간다.


‘왜 좀 더 성숙하지 못했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 늘 술이 옆에 있다. 정확히는 술을 마셨기 때문에 지난 일들이 더욱 생생하게 생각난다. 간단한 안주와 적당한 알코올은 쓸데없이 진지한 감정들을 어색하지 않게 견디게 해 준다.


오늘은 비가 오니 송송 썬 김치가 들어간 부침개에 양양에서 사 온 옥수수 동동주를 함께 곁들인다. 예쁜 그릇과 전용 잔 같은 건 필요 없다. 김치전과 비슷한 크기의 동그란 접시와 국그릇 하나만 있으면 준비 완료. 매콤한 김치전과 달짝지근한 막걸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술 한 모금에 과거의 관계들이 하나씩 스쳐 지나간다.  


주정(酒酊) 가르쳐준 널널한 관계의 편안함사실 나는 술보다 술자리를 더 좋아한다. 혼술도 좋지만 여럿이서 이야기를 나누며 마시는 술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20대 초반에는 다른 과 술자리나 친구의 아르바이트 회식에 참석한 적도 있다. 물론 그들이 나를 초대한 경우에만. 직장을 다닐 때도 회식을 아주 싫어하거나 꺼려하지 않았다. 직접 나서서 회식 장소를 정한 적도 많다. 기왕 가는 거 내가 좋아하는 안주를 먹으면 좋지 않겠나.


이렇게만 들으면 내가 타고난 술꾼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대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만 해도 술자리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면 어김없이 진솔하고 진지한 이야기가 오갔기 때문이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술 게임을 하거나 농담을 주고받는 건 어색하지 않은데 그 후에 진행되는 진솔한 자기 고백의 타임을 유독 못 견뎌했다.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영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사람을 사귈 때 오래 지켜보며 마음을 열어가는 걸 선호했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만난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일이라니. 정말이지 불편하고 어색했다. 상대방이 술에 취해 진심을 털어놓을 때 역시 부담스러웠다. 그땐 위로하는 법도 몰랐고 잘하지도 못했다. 그들이 내 이야기를 궁금해할 때면 나는 선을 그었다. 다들 그렇게 친해지는 거라고 했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은 동기들과 술을 마시고 만취 상태로 친구 등에 업혀서 집에 간 적이 있다. 나는 집에 갔다고 생각했는데 눈 떠보니 친구의 자취방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였다. 전날 소주에 홍초를 섞어마신 게 원인이었다. 이상하게 눈도 퉁퉁 부어있었다. 친구와 해장국을 먹으며 속을 달래고 있는데 친구가 어제 내가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고 말했다.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내가 울었다고?”

달콤한 맛에 현혹돼 사리 분별 못하게 만드는 위험한 조합. 비율은 소주1:홍초1. (사진은 해먹남녀)


친구는 내게 전날 찍었던 영상을 보여주었다. 영상 속 나는 울면서 친구들에게 하소연 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부터 가족 이야기, 고민까지 속에 있는 이야기를 탈탈 털어놓고 있었다. 그렇게 싫어하던 진솔한 고백을 그것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하는 내 모습을 차마 끝까지 볼 수 없어서 중간에 영상을 꺼버렸다. 그 영상을 보고 꽤 충격을 받았다. 친구는 해장국을 먹다 말고 나를 놀리기 바빴다. 창피하고 후회스러운 감정이 두통과 뒤엉켜 토가 나올 것 같았다. 인간은 왜 한 치 앞을 내다볼 줄 못하는 것인가. 괴로워하고 있는데 친구가 놀리는 것을 멈추고 말했다.


들어주기 힘들었는데, 네가  이야기를 털어놔서  좋았어.”


친구는 속 이야기를 잘하지 않던 내가 나의 이야기를 술술 털어놔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묘한 감정이 들었다. 술자리 고백 시간을 갖는 사람들을 겉으로만 위로해주던 내 모습도 생각났다. 영상 속 나의 친구들은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관계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해왔을 수도 있겠구나.‘


내가 마음의 벽이 두꺼운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이후로 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전보다 훨씬 여유로운 마음으로 시작한다. 꼭 깊은 관계가 될 필요는 없지라고 생각하면서. 결국 잘 맞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옆에 남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반대로 안 맞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처음부터 널널하게 다가가니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줄었다. 그때 그 주정은 내게 꽤 많은 걸 가르쳐줬다.


사실 나는 지금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지속하는 일이 어렵다. 가장 큰 스트레스이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그때 그 주정을 생각한다. 그러면 “Why so serious?”라는 답을 얻게 된다. 그래, 그렇게 술 흐르듯 살자. 문제 될 일도 아니니까.


*커버 사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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