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꼰대가 되고 싶어요
글 | 찰리
나는 방탄소년단이 왜 인기 있는지 모르겠는데?
뒷북도 너무 뒷북이지만, 방탄소년단은 신드롬 그 자체다. 아미(Army, 방탄소년단의 팬덤명)인 사촌동생부터 해서 우리 부모님까지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듣는다. 그러나 난 얼마 전까지도 방탄소년단의 인기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비꼬는 것이 아니라 정말 궁금했다.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겠는데, 전 세계를 제패할 정도인가? 그냥 한국에 흔한 남돌 아닌가.
지난 8월 21일 방탄소년단의 디지털 싱글 'Dynamite(다이너마이트)'가 공개됐다. 이번 신곡 'Dynamite'는 디스코 팝 장르로,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만든 곡이라고 한다. 늘 한글로 가사를 냈던 이전 곡들과는 달리 가사 전체를 영어로 한 덕분인지 해외 반응도 유독 폭발적이었다. 공개된 후 2주간 빌보드 핫100 싱글차트 1위, 그다음 2주간 2위를 기록하며 방탄소년단뿐만 아니라 K-POP의 역사를 다시 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평소 뮤직비디오를 좋아하는 나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안내한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를 관성적으로 보게 됐다. 도입부를 듣는 순간 자리를 고쳐 앉았다. 뭐야 엄청 좋잖아? 가사는 영어라 다 못 알아듣는대도 멜로디 자체가 상당히 신났다. 아니 근데 원래 춤도 이렇게 잘 췄어?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를 본 후, 나는 방탄소년단에 급 관심이 생겼다. 내 안의 BTS가 관심도 없던 한국의 흔한 남돌에서 빌보드가 인정한 월드 스타가 된 것이 노래 한 곡 때문이었을까? 다이너마이트 노래가 너무 훌륭해서? 역시 내 취향은 빌보드급인 걸까. 난 음악을 소비하는 사람이지 전문가는 아니다. 이번 노래가 특히 내 취향이긴 하지만, 전의 노래들도 종종 즐겨 들을 만큼 좋았다. 갑자기 나는 왜 방탄소년단에 스며들었을까.
이제부터는 2000년대 초반부터 대중가요를 들었던 20대 후반 아무개씨의 '라떼'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 기억 속에 가장 처음 좋아했던 가수는 이정현이었고, 가장 먼저 알았던 그룹 가수(지금의 아이돌)는 핑클과 지오디였다. 당시에는 솔로나 듀엣도 많았고 2000년대 후반에는 알앤비나 밴드 음악도 지상파 음악방송 1위를 하곤 했다. 구 댄스그룹 현 아이돌의 역사는 HOT, 젝스키스, SES, 핑클을 지나 지오디, 신화 등을 거쳐 동방신기, 빅뱅, 소녀시대, 원더걸스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때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주로 일본 무대에 진출했고, 오리콘 차트 입성 도쿄돔 투어 등이 해외에 이름을 알렸다는 방증이었다.
나 또한 이 당시 수많은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를 들었고, 덕질했다. 덕질에는 나이가 없다고 하지만 나의 아이돌 덕질은 안타깝게도 수험생활과 대학생활을 거치며 2010년대 초반 끝이 났다. 내가 방탄소년단의 인기를 인정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에게는 아직도, "아이돌은 '라떼'가 최고"라는 생각이 내심 있었던 것이다.
"요즘 애들은 너무 많아, 다들 비슷하게 생겼어, 이름도 어려워, 저게 노래야? 역시 구관이 명관이지." 이 말은 아이돌을 좋아하던 내게 우리 아빠가 하신 말이지만, 내가 요즘 아이돌 가수들에 갖고 있던 생각이기도 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던 것이다.
처음부터 문을 열어줄 생각이 없어 열쇠 구멍도, 문고리도 만들어놓지 않은 문을 열 방법이 있을까.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나갈 마음을 가지고 문을 열어주는 것이나 밖에서 큰 충격을 가해 문을 부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길거리 캐스팅과 우연한 데뷔도 흔했던 예전과는 달리, 2세대와 3세대를 거치면서 점차 아이돌 가수들은 전문 트레이닝을 받은 연습생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노래나 춤뿐만이 아니라 연기나 개인기도 따로 연습한다는 이들은 유튜브나 브이앱 등 동영상 플랫폼을 타고 국경을 넘나들며 'K-POP'이라는 새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과거보다 더 발전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시대에 발맞추어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나는 아이돌 산업에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하지만 종사자인 아이돌의 노력과 그들을 사랑하는 팬을 폄훼하고 싶지도 않다. 열심히 사는 것과, 그에 대한 응원과 지지를 어떻게 비난할 수 있는가.
다시 방탄소년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사실 나는 '다이너마이트' 이전에도 방탄소년단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었다.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 영어 회화학원에서 만난 스무 살 요르단 소녀는 한국에 공부하러 온 계기로 'BTS'를 꼽았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 서먹했던 사촌동생은 방탄소년단 콘서트를 보러 서울에 온다며 내게 연락을 해왔다. 방탄을 좋아한다는 대학 동기의 취직 선물로 이태원 라인 프렌즈샵에서 방탄소년단과 콜라보한 BT21 캐릭터 문구용품을 선물했고, 즐겨보던 엘렌쇼에도 방탄소년단이 나왔다. 방탄소년단의 인기에 의문이 있었던 것은, 애초에 별로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단 방탄소년단뿐만 아니라 아예 '요즘' 아이돌 자체에 무지했다.
속성으로 공부해보니 방탄소년단 신드롬은 '준비된 사람들이 기회를 잡은’ 것 같다. 이들이 데뷔한 2013년은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막바지였다. 나도 2013년 처음 스마트폰이 생겼다. 사람들은 점점 텔레비전보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졌고, 스마트폰을 통해 열린 인터넷 세계는 국경을 초월해 문화를 공유하는 시대를 열었다. 방탄소년단은 데뷔한 2013년부터 꾸준히 유튜브 오리지널 콘텐츠를 업로드해왔다. 해외에서 주목받기 전부터 이른바 '칼군무'로 실력을 입증했고, 멤버들이 작사나 작곡, 프로듀싱 등에 참여하며 아티스트의 면모를 다져왔다. 이들의 음악은 1020 청춘들의 생각, 고민, 삶, 사랑 등을 주제로 해 K-POP 주 소비자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리더 RM의 출중한 영어 실력까지 덧붙여져 100% 한국 소년들로 이루어진 아이돌 그룹은 기다렸다는 듯이 세계의 주목에 답했다. 역으로 복기해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꼰대란, 이미 답이 정해진 사람이다. 이미 답이 정해진 사람은 설득하기 힘들다. 변화하기 어렵다. 남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하기 때문이다. 사회생활하면서 제일 마주하기 싫은 상사나 선배가 답정너이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아니 대답도 하지 말라는 사람들. 근데 그런 나라고 답정너가 아니었을까. 꼰대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는데. 뭘 그렇게 애써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걸까. 꼰대가 되지 않는게 어렵다면, 제발 천천히 꼰대가 되고 싶다. 새로운 것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사람은 못되더라도, 그 흐름을 가로막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앞으로 점점 더 발전보다는 도태가 더 쉬워질 것이다. 난 변화에 응답하기 위해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라떼에 취할 것인가.
Bring a friend join the crowd
Whoever wanna come along
Word up talk the talk just move like we off the wall
Day or night the sky’s alight
So we dance to the break of dawn
Ladies and gentlemen, I got the medicine
so you should keep ya eyes on the ball, huh
친구들 불러 여기 모두 모여봐, 오고 싶은 사람 누구든
말은 됐고 이제 정신없이 흔들어
낮에도 밤에도 하늘은 눈부셔
그러니 우리는 아침이 올 때까지 춤을춰
신사숙녀 여러분, 고민은 제게 맡기고
여기에 집중하시죠
-Dynamite 중에서
*한국어 가사 출처,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