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똑같은 일상을 살며 주말까지도 일에 대한 생각과 잡념으로 머리가 아팠다. 기술영업으로 입사해 일주일에 5일은 영업과 고객 컴플레인으로 시달렸고 주말에는 시체가 되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지만 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반복된 일상을 살다 보니 내가 나의 인생에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살아지는 대로 살고 있는 듯했다. 인간으로서의 욕망은 없어지고 동물적인 본능만이 내 몸을 지배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회사 갈 준비를 하고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TV 리모컨을 쥐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다.
책을 좋아했던 친구들이 선물해 주었던 책으로
테트리스를 해 갈 때쯤 하나의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인생을 잘 살아 보고자 아등바등하는
내 안에 그 녀석에게 일주일 동안 고생많았다고 선물을 해주면 어떨까.
일단 돈이 안 드는 걸로다가. 한 장의 구김도 없이 나의 손길을 기다려 온 책들부터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걱정이 앞서긴 했다.
책은 지금까지 교과서나 전공 책정도만 인식될 정도로
다른 분야의 책은 머리말도 읽어 본 기억이 없다.
뿐만 아니라 대학교 시절 전공책을 읽는 것 마저도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활자를 싫어했다. 아니 그냥 글 자체를 너무 싫어했다.
책을 펼치는 순간 난 내가 이렇게 생각이 풍부한 사람인지 깨달았을 정도다. 당연히 책에 스토리에 빠져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공간들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었다.
책장을 넘기는 그 짧은 시간에도 갑자기 일주일 전 중국집에서 짬뽕을 시키지 않고 짜장면을먹은 것이 후회되었고, 어제 친구들과의 잡담에서 웃길 수 있었던 일화를 떠 올리지 못했던 일도 생각났다.
책을 선물하고자 한 건 어쩌면 내 일생에서 큰 도전이었다. 그래도 나름 인내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했기에 결심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내라는 단어를 동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때는 그랬다. 2013년 1월에는 그랬다.
먼저 가장 얇은 책을 찾았다. 보통 일반적으로 책은 250페이지 정도지만 나의 페이스로 그 정도 분량의 책을 다 읽을 수 없다고 아주 현명한? 판단을 했다.
그래서 나의 첫 번째 선물은
Arthur Miller의 'Death of Salesman'로 선정했다.
총 269 페이지 었지만 영한대역문고였기에 실제 한글로 된 페이지는 269페이지의 딱 반인 135 페이 정도가 되었다.
인천 동암역에서 서울 삼성역까지 약 1시간 30분 동안의 출근길에 난 책을 읽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책을 공공장소에서읽었을 때의 기분을 상상하지 못했었다. 일단 사람들의 시선들이 느껴졌고 굉장히 민망했다. 뭔가 유난을 떠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사람들은 나 자체에 관심도 없고 신경도 않썼지만 난 그들이 나만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혼자 민망해하는 상황이었지만 한번 책을 펼치니 또다시 가방에 넣는 게 더 민망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 상황을 견뎌내며 한 페이지씩 책을 읽어 나갔다. 하지만 그렇게 야심 차게 시작한 결심은 금요일이 지날 때쯤 절반도 못 읽은 나와 마주하게 되면서 의기소침해졌다.
'아놔... 역시.....'
할 수 없이 시체놀이를 했던 주말에 그 이름만으로도 어색한 도서관이란 곳에 갔다. 얼마 만에 와보는 도서관인가. 참 사람들이 많았다. 근데 뭔가 기분은 좋았다. 예전에는 기한을 두고 무언가를 억지로 머릿속에 넣으려 왔었다는 기분이 들었다면 사실 그런 부담감은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도서관에서 각자의 인생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동안 나의 주말을 아주 살짝 반성하기도 했다. 그렇게 전투? 독서를 시작했다. 꼭 이겨야 했다. 그래야 나의 진정성이 내 안에 멋진 녀석에게 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두 시간이 흐르고 몸은 꼬여 갔지만 진도는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첫 번째 책을 힘겹게 읽었고 나에게 첫 번째 선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첫 선물을 하고 나서 현타가 왔다.
'이게 선물일까? 벌칙일까?...'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에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두기로 마음먹고 생각한 것이 바로.
독. 서. 노. 트
'아... 일이 점점 커지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인천 구월동에 있는 교보문고에 갔다. 아주 단단해 보이는 검은색 독서노트를 샀다. 이 독서노트는 책을 읽고 이미지화하고 또 주요 문장을 적고 마지막으로 책을 통해 삶에 적용할 것과 이에 대한 성과를 쓸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 독서노트는 책 한 권을 읽고 써야 할 페이지가 많았기에 페이지를 사등분하여 쓰기로 했다.
이제는 출근 퇴근 시간과 주말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여 나에게 준 선물을 읽고 쓰고 적용할 준비가 된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마음의 준비는 전혀 아주 1도 되지 않았었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무언가를 시작했다는 뿌듯함은 나의 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가고 6년의 시간이 흘렀다.
많은 것들이 변했다. 어딜 가도 가방을 들고 다녔고 그 안에는 자투리 시간에 읽은 수 있는 책을 담았다.
그 이후로 누군가가 약속 시간을 한두 시간 늦는 것쯤은 짜증 낼 상황이 아니었다. 가방 속 이야기보따리를 풀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점차 나의 시간을 밀도 있게 쓴다고 생각이 되면서 마음도안정되고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책 속에 주옥같은 문장들은 목석같았던 나를 살아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조금씩 삶이 변해갔다. 오랜 시간 생각만 했던 것이나 이전에는 엄두도 못 냈을 것들을 해봤다. 그냥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