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 예식장

춤추는 별이 되다

by 진정성의 숲


백조예식장.png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식당 입구를 들어가기 전부터 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테이블 하나를 타깃으로 정했다. 하얀색 천으로 전체가 덮혀진 의자에 재빠르게 앉자마자 갑자기 쉰내가 확 풍겼다. 나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손 틈 사이로 냄새가 파고들어 내 코를 마비시켰다. 분명히 내 옆에 앉아 있는 어른이 풍기는 냄새였다. 얼마나 냄새가 고약한지 옆으로 얼굴을 돌릴 생각조차 못 하고 있는데 갑자기 거무튀튀하고 거친 손 하나가 내 앞을 순식간에 지나갔다. 내 앞에 있던 접시 하나를 낚아채 자기 앞으로 가져가서는 주변 사람은 의식도 하지 않을 채 게걸스럽게 닭강정을 손으로 먹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속에서 열불이 나기 시작했다. 너무 순식간이라 방어할 시간도 없이 당했다.

'내 닭강정...'

닭강정이 사라지는 순간을 멍하니 바라만 보던 나는 그가 풍기는 고약한 냄새가 어쩌면 그가 가진 최고의 무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냄새로 교란하여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들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하는 그런 무기. 그는 백조 예식장과 가까운 인주역에서 있던 노숙자였다. 몇 달 전 서울에 있는 할아버지 집을 다녀오면서 인주역에 내려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탄 적이 있다. 2층 승강장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출구로 나오면 바로 왼쪽으로 흡연장이 있다. 담배 냄새가 가득한 그곳에 작은 벤치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는 그 벤치에 누워있었다. 엄마 손을 잡고 멀리서 바라본 게 다지만 그만큼 행색이 도달 아져 보여서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필 이런 데서 그와 다시 만나다니 기분이 참 묘했다.

"야. 너네들끼리 왔냐?"

순간 은호와 나는 움찔했다. 머리카락은 머리 가닥이라고 할 만큼 두껍게 뭉쳐 있었고 여름인데도 몇 겹을 껴입어서 근육맨처럼 된 그의 상의는 충분히 위압감이 느껴졌다. 나와 내 맞은편에 앉은 은호에게 눈을 흘기며 말하는 걸 보니 분명 그는 우리를 얕잡아 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냥 귀찮은 대상쯤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고개를 돌려 나를 보는 눈빛이 느껴졌지만 옆으로 보지 않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몇 초간 그가 무슨 말을 할까 긴장하고 있는데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테이블에 있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나와 은호도 이내 가자미눈을 풀고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직관적으로 그도 알고 있었던 걸까? 우리가 자신과 같은 목적으로 여기 왔다는 것을? 이상하게 같은 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식당에 들어오자마자 너무 긴장을 해서인지 배가 더 고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닭강정은 사수하지 못했지만 동그랑땡, 잡채, 보쌈고기 등 눈앞에 놓인 진수성찬을 천천히 즐기기 시작했다. 미리 세팅되어 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 데 직원이 쟁반에 국수를 가져오는 게 보였다. 아까 오면서 성철이가 말해준 주의사항을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음식 리필은 한 번만. 두 번은 안됨'

직원이 우리 테이블 모서리 쪽에 쟁반을 걸치고 국수를 하나씩 자리에 놓아주었다. 국수를 건네받으며 최대한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벌써 세 번째 이곳에 왔는데도 아직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나랑 세 살 차이 나는 동생 은호는 올해 국민학교에 들어갔지만 오히려 나보다 더 태연해 보였다. 형이 괜찮다고 하니깐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직원은 우리한테 먼저 국수를 주고 이제 내 옆에 노숙자 아저씨한테 그릇을 건넸다. 국수 그릇을 자기 앞쪽으로 가져다주는데도 그는 다른 음식을 먹느냐고 정신이 팔려 있었다. 직원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더니 국수 그릇을 놓고는 식당 입구 쪽으로 돌아가서는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직원에게 뭔가를 얘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이 많은 직원이 무슨 말을 하자 서빙을 했던 직원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왜 이쪽으로 걸어오는 걸까?'

뭔가를 따지러 오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지금 우리 테이블에는 노숙자 한 명과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 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어색한 광경이긴 했을 거다. 좀 빠른 걸음으로 테이블로 앞까지 도착한 직원은 노숙자 아저씨한테 물었다.

"아저씨. 누구 쪽으로 이 오신 거예요?"

질문의 의도는 신랑 측인지 신부 측인지를 물어보는 거였다. 노숙자 아저씨가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멀뚱멀뚱 직원을 쳐다봤다.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직원이 이내 인상이 구겨지더니 아저씨한테 뭔가를 얘기하려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저희는 신랑이요!"

노숙자 아저씨한테 쏠렸던 시선이 한순간 나에게 옮겨졌다. 예식장을 들어오기 전에 우리 동네 싸움짱인 혁준이가 말해 준 '백조 예식장 방문 철칙'을 계속 되뇌고 있었는데 긴장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와 버린 거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지만 말은 태연하게 했다.

거짓말은 최대한 태연하게 해야 한다는 걸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몸에 배어 있었다.

솔직함이 매 순간 최선을 아니라는 걸 난 이미 알고 있었다.

한 시간 전 백조 예식장에서 30미터 떨어진 곳에서 혁준이, 나와 은호 그리고 동네 아이들 세 명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 혁준이는 예식장에 들어가서 주의할 것들과 꼭 해야 할 것들을 천천히 말해주었다. 사실 혁준이와 다른 아이들은 벌써 6개월이 넘게 백조 예식장에 왔기 때문에 여유가 있어 보였고 혁준이 얘기를 긴장하며 듣는 건 이번이 세 번째인 나와 은호뿐이었다.

"내 말 잘 들어~! 식당 들어가기 전에 예식장 쪽으로 가서 반드시 신랑 이름이나 신부 이름 중 하나는 꼭 외워!

예식장 직원이 혹시 물어보면 어물쩡거리지 말고 바로 얘기해야 돼! 그게 출입증 같은 거니깐."

나는 혁준이가 말한 대로 직원의 질문에 출입증을 내민 것이다. 비록 그 질문이 나에게 한 게 아니라 노숙자 아저씨한테 한 거라는 게 달랐던 것뿐 이이지만. 내가 갑작스럽게 대답을 한 후 직원은 잠시 멈칫하더니 나를 보며 다시 물었다.

"신랑이 누군데?"

"김민철이요."

"응... 그래?"

직원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되돌아서 식당 입구 쪽으로 갔다. 사실 손님이 밀려드는 상황이어서 다른 직원이 오라는 손짓을 했고 결혼식이라는 좋은 날에 소란을 일으키는 걸 원치 않는 눈치이기도 했다. 이건 혁준이가 말해준 부분이 있기에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 우리가 식당에 들어간 순간 내쫓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신랑이나 신부 이름만 외우면 말이다. 어차피 식당은 별도로 체크하는 사람이 없으니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90%는 성공이라고 말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부모가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니 함부로 뭐라고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 대신 애들끼리 몰려서 한 테이블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되도록 어른이 있는 테이블에 끼어서 앉으라고 했다. 역시 경험은 무시 못 했다.

직원이 돌아가든 말든 노숙자 아저씨는 음식을 먹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긴박하게 직원을 돌려보냈는데 저렇게 태평하게 음식을 먹는 노숙자 아저씨가 왠지 얄미웠다. 그래도 금세 마음이 풀렸다.

우리 편이었으니깐.

긴장된 시간이 지나고 여유롭게 나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 노숙자 아저씨한테 뺏긴 닭강정도 한번 리필해 먹을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먹는 닭강정은 앞서 괜히 왔나 하고 후회했던 시간을 무색하게 할 만큼 맛있었다. 은호도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이제 친구들이 통닭을 먹었다는 자랑에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었고 아픈 엄마를 보며 차마 사달라고 하지 못하고 참아야 했던 시간을 참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행복했다.

6개월에 한번 먹을까 말까 한 음식들을 이렇게 공짜로 먹을 수 있다니 혁준이는 정말 천재라고 생각했다. 그 후 내가 다른 곳으로 이사 가지 전까지 거의 1년을 2주에 한 번씩 우리는 백조 예식장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직원들이 우리의 얼굴을 익히기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계속 백조 예식장에 갔다. 그때는 결혼은 잔치라는 인식이 강했고 알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와서 밥 먹는 걸 대놓고 막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정도는 공짜로 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암묵적으로 허용해 주었다. 그게 인심이고 인정이라고 생각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졸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