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졸업식

출추는 별이 되다

by 진정성의 숲


버스를 내려 횡단보도를 건넜다. 조금만 더 가면 학교 정문이다. 북적거리는 버스도 횡단보도를 건너며 장난치는 친구들의 모습도 분명 평소와 다를 게 없는 아침이다. 근데 내 발은 학교에 가까워질수록 걷기 힘들 정도로 무거워졌다. 공부는 못했지만 6년 개근상을 받을 정도로 출석을 끔찍이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멀쩡한 다리가 있다는 게 원망스러울 정도로 학교 가기가 싫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달력에서 ‘오늘’을 도려내고 싶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내 발은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정문이 눈앞에 보였다.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많은 사람들이 멈춰 있던 나를 피해 스쳐 지나갔다. 제법 세게 내 어깨를 툭툭 치고 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감각기관이 기능을 상실한 듯했고 눈앞에 모든 장면이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웃포커스 기능이 적용된 듯 나는 너무나 선명했고 세상은 흐리게 보였다. 그 상태로 천천히 학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두 손 가득 꽃다발을 든 가족들 사이에서 행복해하는 친구들이 보였다. 140cm 정도밖에 안됐던 나는 수많은 꽃다발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교실로 올라가기 위해 야외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삼삼오오 친구들과 가족들은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며 지나쳐 걸어갔다. 순간 먼 외국에 나 혼자 버려진 기분이 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은 물과 기름처럼 나와 절대 섞이지 않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행복해하는 그 사람들 사이를 아주 조심스럽게 비집고 지나갔다. 그들에게 내 존재를 들키기 싫었다. 아무도 나를 아는 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오늘의 이방인인 나는 그렇게 4층 교실에 도착했다.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은 일찍 들어간 탓에 운 좋게 교탁과 가장 먼 뒷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눈물이 천천히 뺨 위로 흘렀다. 눈 안에 눈물을 담아 놓을 수 있는 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안간힘을 쓰며 꾹꾹 참았지만 눈물은 하염없이 뺨을 타고 흘렀다. 재빨리 화장실로 가서 세수하고 다시 교실로 들어왔다. 시끌벅적한 복도에서 사람들이 한두 명씩 교실로 들어왔다. 앞문으로는 친구들이 뒷문으로는 어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들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뭔가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가슴이 찌릿찌릿하면서 서늘한 느낌. 잠시 후 담임 선생님이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끄러운 소리에 눈이 살짝 떠졌다. 머리끝까지 덮어쓴 이불 때문에 그 소리의 정체를 아직 인지하지 못했다. 점점 정신이 들면서 익숙한 소리라는 걸 알아챘다.

술에 취한 아빠와 엄마가 싸우는 소리.

밤에 싸우는 건 오히려 익숙했다. 그런데 하필 왜 오늘은 아침일까? 이불 속에서 자는 척을 했다. 자는 척하는 건 이미 선수가 되었다. 매일 아빠가 술에 취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엄마는 남동생과 나에게 이불을 덮고 자는 척을 하라고 시켰다. 오늘도 차라리 그렇게 계속 자는 척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조금만 참으면 실제로 잠이 들고 또 다른 내일이 오니깐. 그런데 지금은 아침이고 나는 학교에 가야 했기에 그럴 수 없었다. 이불 밖 소리는 멈출 줄 모르고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기회를 노렸다. 이불을 박차고 아무 옷이나 입고 뛰쳐나갈 준비를 했다.

하나, 둘, 셋!

이불을 젖히고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듣지 않으려고 애쓰며 재빨리 움직였다. 그런데 내 눈이 스치며 보이는 모든 광경을 사진처럼 찍었다.

어제 놓은 가방을 그대로 가지고 뛰어나갔다.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는 건지 싸우는 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났다. 하지만 무시하고 그냥 뛰었다. 대문을 벗어나 이내 버스정류장 앞에 섰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집에 남아 있는 세살 어린 남동생이 걱정됐다. 하지만 이미 난 밖이었고 학교에 가야 했다. 그날따라 버스는 평소보다 왜 이리 빨리 오는 건지 버스에 오르며 애꿎은 버스 기사를 소심하게 째려봤다. 그냥 누구든 원망하고 싶었다. 버스는 30분 정도 달렸고 나는 학교 근처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횡단보도가 보이고 학교로 가는 사람들이 내 눈에 가득 찼다. 학교 정문을 들어서는 길가에 평소에 없었던 꽃 장사들이 간이 매대를 설치하고 한창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의 손을 양손으로 보였다. 세상이 전부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고사리손으로 입학한 자식들에 생애 첫 졸업식 날이니까.

머리가 벗겨진 담임 선생님은 교단에 서서 일장 연설을 했다. 아직도 귀가 먹먹하다. 이명같이 윙~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나둘씩 친구들의 이름이 불렸다. 친구들은 앞으로 나가 선생님이 주시는 졸업장을 받았다. 장군처럼 당당히 받는 친구부터 소심하게 인사하며 받는 친구까지 각자의 성향은 달랐지만 내 뒤쪽을 바라보며 웃는 건 모두 같았다. 교실 뒤쪽에는 부모님들로 가득했다. 자기 자식이 언제 불릴까 초조하게 담임선생님을 주시하는 부모들의 모습이 미어캣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호순으로 봤을 때 슬슬 내 차례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순간 "김은성! 나와!" 내 이름이 호명됐다. 몇 초간 움찔했지만 천천히 일어나 책상과 책상 사이를 걸어 나갔다. 선생님 앞에 서서 인사를 하고 딱딱한 졸업장을 받았다. 뒤돌아 자리로 가는 길에 교실 바닥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앞을 보기가 싫었다.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얼굴.

친구들이 졸업장을 다 받을 때까지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쩌면 아침에 내가 본 광경은 꿈이 아닐까? 아니면 지금 이곳이 꿈속은 아닐까? 헛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마지막 친구가 졸업장을 받자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달려갔다. 부모들은 친구들을 대견해 하며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이제 난 어디로 가지? 어떻게 하지?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친했던 친구들이 나에게 사진을 찍자고 할까 봐 일부러 피했다. 지금은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보다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았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가 1층에 도착했을 때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사실 아침에 학교로 오는 길에도 이미 너무 많이 울었다. 눈이 퉁퉁 부어서 시야가 좁아졌을 정도로 말이다.

굳어있는 아빠의 얼굴.

아빠가 서 있는 그곳으로 갈 수가 없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멈춰있던 나에게 아빠가 다가와 아무렇지 않은 듯 사진을 찍자고 했다. 아빠가 말하는 동안 눈으로 엄마를 찾았다. 오늘 아침에 내가 본 마지막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서 말이다.

엄마는 아빠에게 맞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아빠는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나와 아빠. 이렇게 둘은 어정쩡한 포즈로 사진 한 장을 찍고 학교를 나왔다. 아침에 감정이 남아있는지 아빠도 얼굴이 어두웠다.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탔다. 맨 뒷자리에 앉았고 아빠가 나를 사진기로 찍었다.

‘왜 이런 곳에서 자기 마음대로 사진을 찍냐고…’

갑자기 아까 학교에서 친구가 자기 엄마한테 한 말이 생각났다.

“엄마! 나 끝나고 짜장면 사죠! 탕수육도!"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짜장면을 너무 먹고 싶었다. 아침부터 너무 많이 울어서인지 나른했고 미친 듯이 허기가 졌다. 짜장면이 먹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 아빠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내 생애 첫 졸업식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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