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전화 한 통

에세이

by 진정성의 숲


밤 10시 35분.


이름이 등록되어 있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라서 받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OO야, 나 OOO이야!

정말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앗! 네! 잘 지내셨죠?"


같은 회사에 다녔던 선배의 전화.


선배는 몇 년 전 다른 회사로 옮겨서 연락을 안 한 지 꽤 오래됐었다.


같은 부서에서 일을 함께 한 적은 없었지만,

신입사원 때부터 날 보면 살갑게 아는 척해 주시고

몇 번의 술자리도 가지면서 많이 친해졌던 선배였다.


퇴사하기 전에도 따로 날 불러서 잘 지내라고 어디서든 또 보자고

친근하게 말해줬던 선배이기에 먼저 걸려온 선배의 전화는 날 더 미안하게 했다.


그렇게 약간은 민망한 상태로 통화를 이어 나갔다.


"내가 전 회사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너 생각이 나더라고"


"정말요? 너무 감사해요!"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늦은 시간에 이렇게 받아 준 것만으로도.

낯선 회사로 이직하고 나니깐 전에 있었던 곳에 좋았던 것들이 자꾸 생각나더라고.

그때는 근데 뭐가 그렇게 불만만 많았던지. 하하하"


"뭐 다 그렇죠. 저는 지금 잘 버티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래. 잘하고 있어.

사실 너랑도 같이 있을 때 더 많이 얘기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거 같아서.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랐지만 그냥 안부 전화해 본 거야.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마음이 약해지나 봐. 이상하게 지난날 못 했던 것들이 너무 아쉽더라고.

그래서 이제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용기 내서 살아보려고.

사실 살아보니 거창한 용기보다 이렇게 사소한 용기 한 번이 더 중요한 거 같더라고"


"맞아요. 근데 너무 죄송해요. 전 연락도 한번 못 드렸는데요'"


"괜찮아.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되는 거지.

너한테 부담 주려고 한 게 아니라 내가 아쉬워서 한 거야.

나이가 들면 들수록 소중했던 사람들이 옅어지고 흐려지는 게 너무 아쉽더라고.

그냥 너무 거창하게 연락할 게 있어서 하는 거 말고 그냥 편하게 안부 물어보면서 살고 싶어서.

문득문득 나에게 좋은 인연들이 많았는데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

왜 내가 전화를 못 할까? 내가 못하니깐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 못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고.

그래서 그냥 이렇게 용기 내서 전화 돌리고 있지."


갑자기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졌다.


선배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고,

용기 내어 전화한 사람 중에 내가 있다는 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선배님.

저에게는 이 전화 한 통이 선물이네요."


"고마워.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깐. 하하하.


"네! 당연하죠!"


"아, 그리고 나랑 싸웠던 김 팀장님 알지?

팀장님한테도 이번에 용기 내 전화했는데,

팀장님도 내 생각 가끔 했다고 하면서 반가워하시더라고.

시간이 흐르니깐 그렇게 야속했던 감정들이 다 몽글몽글해지더라. 하하하"

암튼 우리 앞으로도 가끔씩 이렇게 가볍게 안부 물으면서 살자."


"네. 정말 감사해요. 선배님이 선물을 주셨으니

저도 선배님처럼 누군가에게 용기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듭니다.

이런 선물은 전염성이 강한 것 같네요."


"하하하. 그래.

조만간 얼굴 보고 얘기하자. 연락해!"


"네!"


생각지도 못한 전화 한 통에

내 마음이 뜨거워졌다.


-진정성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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