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별이 되다(빨간 창문)

춤추는 별이 되다

by 진정성의 숲


아싸! 잡았다!"


짙은 녹색 머리가 한곳을 응시하다 순간적으로 나를 바라본다. 푸른색과 밝은 연두색이 섞여 오묘한 색을 띠고 있는 눈은 보면 볼수록 묘하게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단단해 보이는 양 날개 중앙에는 살짝 갈색빛이 돌았다. 역시 특별한 놈이었다.


오늘은 운이 정말 좋은 날이다. 드디어 내가 그토록 잡고 싶었던 왕잠자리를 잡았다. 얼마 전 상철이 녀석이 운 좋게 잡은 왕잠자리를 한 번만 보여 달라고 해도 보여주지도 않고 거들먹거렸는데 이제 그 꼴을 안 봐도 돼서 속이 다 시원했다. 상철이는 운이 좋았지만 난 순전히 내 실력으로 잡은 거다.


왕잠자리는 우리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공원에서 자주 출몰했다. 그런데 이 공원은 사실 사람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고속도로 초입이기도 하고 근처 부두로 가는 화물차가 많아서 동네는 늘 자동차 매연으로 공기가 안 좋았다. 그래서 이런 환경을 개선하고자 몇 년 전 구청에서 한 달 만에 뚝딱하고 만든 작은 공원이었다. 평소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공원 안에 심어진 나무와 화초에 잎에는 항상 먼지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왕잠자리는 이곳에만 나타났다.

원래 곤충들은 공기가 좋고 수풀이 우거진 곳을 좋아하지 않나?


아니다. 왕잠자리는 다르다. 다를 것이다.

그냥 곤충이 아니지 않은가? 그냥 잠자리가 아니지 않은가?


특별한 존재들은 특별한 곳에만 나타나는 법이다.


이상한 논리로 나 혼자 속으로 오늘 왕잠자리를 발견했던 이유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내가 오늘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특별한 곳에 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몇 주 동안 일반 잠자리를 잡으며 혹독한 훈련을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왕잠자리를 잡기 위한 연습으로 희생당한 잠자리만 해도 백 마리가 넘을 것이다.


훈련의 과정은 이렇다. 먼저 살금살금 소리 없이 접근해야 한다. 작은 소리에도 예민한 잠자리 때문에 앞발을 디디는 곳에 장애물은 없는지 소리가 날 만한 것들은 없는지 유심히 살펴야 한다. 그리고 잠자리가 사정거리에 들어오는 순간 잠자리채를 공중으로 살며시 올려 잠자리채 입구와 각을 재빠르게 맞춘다. 그러고는 단숨에 아래로 내렸다가 잠자리를 낚아채야 한다. 그렇게 잠자리를 낚아챈 순간 다시 공중에서 몇 번을 휘둘러 잠자리에 정신을 빼놓은 다음 바로 아래로 내려 꽂아 땅으로 잠자리채 입구를 막아야 한다. 이런 훈련을 보름 넘게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숙달이 되고 자신감이 충만했다. 하지만 내 자신감이 왕잠자리를 불러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당연히 왕잠자리가 나에게 찾아오는 때를 기다렸던 것이다.


"와! 머리가 이렇게 커? 눈 색깔도 정말 신기해~~! 장난 아니다~!"


은수가 호들갑을 떤다. 이런 반응을 바랐던 거였지만 일부러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야! 뭘 이 정도 가지고 난리냐!"


마치 개선장군처럼 위풍당당하게 동네 골목으로 들어섰다. 은수 녀석이 연신 큰 소리로 "왕잠자리다!"라고 외치는 바람에 동네 아이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내 의도대로 되고 있었다. 근데 좁은 잠자리 통 사이로 날개를 파닥거리는 왕잠자리의 소리는 나도 좀 놀랄 정도로 컸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잠자리 통을 손으로 꽉 잡고 골목 중앙에 섰다. 아이들이 내 주위를 감싸고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무리 중에는 상철이 녀석도 있었는데 먼발치에서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난 왠지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한참 동안 왕잠자리 전시회를 하고는 은수한테 눈짓으로 집에 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은수는 곧 애들을 잠자리 통에서 떨어지라고 말했고 난 최대한 멋진 뒷모습을 보이며 집으로 갔다.


2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더 좁아 보이는지 방금 전까지의 나의 위엄이 사라지는 듯했다. 계단을 다 올라 정면으로 보이는 다른 방에 잠깐 시선을 두었다가 바로 왼쪽으로 돌아 골목 같은 복도를 걸었다. 곧 복도의 왼쪽으로 슬라이드로 된 하얀 문이 보였다. 문을 보자마자 걱정이 되었다. 아침에 나올 때도 안에서 몇 번을 열려고 했는데 덜컹거리기만 하고 무언가에 걸린 듯 문이 잘 안 열렸다. 오래된 슬라이드 문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집에 이런 문제가 생기면 해결할 사람이 없었다.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났기 때문에.


이곳으로 강제 이사를 온 다음부터는 힘을 쓰거나 남자의 힘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아랫집 세탁소 아저씨를 불러야 했다. 할머니가 혼사 먼저 살면서 몇 번을 도움을 받은 듯했다. 세탁소 아저씨는 얼굴도 삐쭉하게 생겨서 말이 많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가려면 1층 세탁소를 지나쳐야 하는데 그때마다 세탁소 유리 창 안에서 나를 보는 세탁소 아저씨의 눈빛이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기분 나빴다. 마치 우리를 감시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할머니가 집에 일이 생겨 아저씨를 불러와도 난 탐탁지 않았다. 아빠가 집을 나간 후 왠지 모르게 내가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강해졌고 내가 모르는 사람은 모두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그런 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문 안쪽으로 TV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방 안에 있다는 거다. 몸이 아파서 일을 할 수 없는 엄마가 누워서 할 수 있는 거라곤 할머니가 얻어온 브라운관 TV를 보는 일뿐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TV소리가 안정감을 주었다. 왠지 TV소리마저 없어서 조용한 날이면 갑자기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은 듯했다. 엄마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하고. 힘을 한 번에 팍 주어 슬라이드 문을 열었다. 다행히 걸림 없이 한 번에 열렸다. 운이 좋았다. 오늘 왕잠자리를 잡은 것처럼.


문을 열자 두 걸음 정도 앞에 놓인 낡은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머리카락이 뻗쳐있었다. 엄마가 아픈 이후로 차분한 엄마의 머리카락을 본 적이 없다. 오늘도 여전히 누워 있는 엄마는 베개에 머리가 눌려 뒤쪽 머리카락이 하늘로 치솟아 있었다. 엄마가 머리를 살짝 올리고는 나에게 말했다.


"은성이 왔어?"


"응"


무뚝뚝하게 한 마디하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엄마는 늘 문쪽 자리에 누워 있었기에 나와 은호는 안쪽 창가 쪽에서 잤다. 왕잠자리 전시회를 성황리에 마치고 같이 집에 오는데 은호가 또래 친구를 만나서 잠깐 놀다 온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그래서 아직 창가 쪽 침대 자리가 여유로웠다. 평소 아무리 나와 은호가 체구가 작아도 침대는 세 사람이 함께 자기에는 비좁았다. 근데 이상하게 서로의 어깨가 맞닿아야 마음이 편했다. 이제 따뜻한 온기를 줄 사람은 우리 세 사람밖에 없다는 생각에 불편함은 안정감으로 변해 있었다.


이사 오고 몇 개월 동안 우리 세 식구는 이 침대 위에서 함께 먹고 잤다. 방이라고 하기엔 너무 좁았지만 그래도 여기가 아니면 갈 곳이 없었다. 얼마 전 수술한 엄마는 계속 누워있어야 했고 할머니는 아들의 무책임에 자신의 도리를 다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할머니도 지금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가게에서 얻어준 방에서 생활을 했는데 우리까지 이곳으로 오게 되면서 자신은 7평 정도 되는 옆방을 하나 더 얻어서 생활하게 되었다.


누워 있는 엄마한테 내가 오늘 잡은 왕잠자리를 자랑하고 싶었지만 무서워할까 봐 참았다. 그런데 잠자리 통 안에서 워낙 크게 날개를 퍼덕거려서 인지 엄마는 그 소리에 먼저 놀랬다. 난 일단 오늘만 방에 놓고 내일은 놓아 주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다행히 엄마가 왕잠자리와의 동거를 허락했다. 난 침대와 붙어 있는 안쪽 벽 창문 틀에 잠자리 통을 올려 놓았다. 불투명한 창문은 여전히 붉은색을 띠었다.


빨간 창문.


이사 온 날 저녁에 할머니와 엄마는 나와 은수에게 절대 창문은 열지 말라고 했다. 특히 저녁에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몇 개월이 지난 지금 왜 그랬는지 알게 되었지만 난 모르는 척했다. 나와 은수가 모른척해야지 할머니와 엄마가 마음이 편하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난 어른들의 마음을 잘 간파했지만 모르는 척한 적이 많았다. 일종의 생존 본능이랄까? 이상하게 내 촉은 매번 틀리지 않았고 이번에도 할머니와 엄마가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뭐 알아도 상황이 바뀌지는 않으니 상관은 없는데도 말이다.


"엄마! 형!"


창문 틀에 올려놓은 잠자리 통 입구로 왕잠자리의 움직이는 머리를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은수가 문밖에서 열리지 않는 문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잘 열리지 않는지 엄마와 나를 큰 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나는 침대 안쪽에서 바깥쪽에 있는 엄마를 재빠르게 뛰어넘어 문 앞으로 갔다. 안에서 살짝 문을 들면서 힘을 주니 스르륵하고 문이 열렸다. 은수가 콧물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갑자기 나도 웃음이 났다.


"우리 은수 왔아?"


엄마가 침대로 바로 달려드는 은수를 꼭 안아 주었다. 녀석이 이곳에 와서는 더 엄마한테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았다. 자기도 뭔가 위기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사실 나도 그랬다. 아빠가 떠나간 후 엄마까지 우리를 떠날까 봐 불안했지만 은수와 나는 절대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다. 왠지 말하면 진짜 그렇게 될 것 같았다.


난 문을 열어주고 바로 다시 엄마를 뛰어넘어 침대 안쪽으로 돌아와 창틀에 있는 잠자리 통을 보기 시작했다. 엄마한테 한동안 안겨 있던 은수가 다시 일어나 창틀 쪽을 보며 오늘 내가 어떻게 왕잠자리를 어떻게 잡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관심도 없는 엄마한테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방은 오늘도 너무 추웠다.


원래 1층 자리 건물에 2층을 판자로 올린 곳이라 난방은 거의 바람만 피할 정도였다. 우리에게 작게나마 따뜻함을 주는 건 전선이 뿔룩 튀어나온 전기장판과 열선 세 개가 빨갛게 달아올라 나름 열심히 열을 내고 있는 전기 히터뿐이었다. 저녁이 되면 엄마와 나 그리고 은수의 얼굴만 이불 위로 나와있었고 우리는 하얀 입김을 뿜으며 각자의 오늘을 얘기했다.


이제 잘 준비를 했다. 엄마가 걸어서 1분 정도 걸리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문밖으로 나갔고 나는 엄마가 점심에 먹었던 사리곰탕면 봉지를 쓰레기통에 담고 있었다. 라면은 우리의 주식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엄마는 늘 사리곰탕면만 먹었다. 언젠가 은수가 이상했는지 나한테 물었다.


"형! 왜 엄마는 사리곰탕면만 먹어?"


"야! 사리곰탕면은 몸에 좋잖아!"


낮 동안 어질러진 방을 자기 전에 잠시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뒤쪽이 밝아지더니 은수가 악! 하고 소리를 질렸다. 바로 뒤를 돌아보니 히터에 휴지가 붙어 불이 나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엄마와 할머니를 연신 다급하게 불렀다. 휴지에 붙은 불은 금세 침대에 옮겨붙었다. 할머니가 어디서 구해준 빨간색 밍크 이불이 불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가슴이 터질 듯 뛰었다. 침대 안쪽에 은수가 불길 사이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움직이지 못하는 듯한 은수에게 소리쳤다.


"야! 정신 차리고 빨리 나와!"


은호에 귀에는 내 말이 들리지 않은 듯했다. 순간적으로 난 재빠르게 불이 좀 덜 붙었던 침대 밑쪽으로 뛰어 은수가 있는 침대 안쪽으로 넘어갔다. 그러고는 은호의 손을 낚아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은수의 손을 꽉 잡고 다시 침대 바깥으로 불길을 뛰어넘는 순간 밖에서 문이 열렸다.


엄마였다.


은수의 손을 잡고 뛴 몸에 중심을 잃고 어깨로 떨어졌다. 아프지 않았다. 은수도 나와 함께 쓰러졌다. 순간 엄마의 눈에서 빛이 나더니 나와 은수를 온몸으로 감싸 안았다. 뒤이어 온 할머니와 세탁소 아저씨가 엄마와 우리들의 어깨를 잡고 간신히 방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나와 은수, 엄마와 할머니, 세탁소 아저씨와 구경 온 몇 사람들이 타고 있는 방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 타고 있었다.

우리에게 허락되었던 삶의 터전이.


침대와 이불이 타면서 불이 미친 듯이 타올랐다. 싸구려 밍크 이불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잠시 후 전기장판이 타면서 검은 연기가 방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악!"


엄마가 정적을 깨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잠시 멈춤을 플레이로 바꾸었고 그때부터 밖에서 서 있던 사람들이 세숫대야부터 주전자까지 온갖 것에 물을 담아 불을 끄려고 난리가 났다. 2층은 판자로 만들어진 가건물이다 보니 불은 치명적이었다. 몇 년 전에도 바로 옆 건물에서 화재가 나서 인명피해까지 났다고 했다.


"야! 빨리 소화기 좀 가져와!"


세탁소 아저씨가 1층 세탁소에 있던 소화기를 가져와 우리 방에 뿌리기 시작했다. 방이 붉은색 불꽃과 하얀 소화기 가루로 온통 뿌옇게 흐려졌다. 은수는 뒤돌아서서 엄마한테 안겨 있었고 난 또렷이 우리 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 왕잠자리'


잠시 후 소방차가 왔고 긴 호수를 2층까지 가지고 올라와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소방관이 오고 10분 정도 지나자 불이 잡히기 시작했다. 문쪽으로 엄마가 누워있던 침대 부분은 거의 다 타버렸고 창가 쪽은 그나마 살짝 형체를 보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복구하기에는 암담한 정도였다. 방안은 물과 소화기 가루가 뒤섞여 난장판이 되었다. 건물 1층 밖에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구경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래도 정말 다행이라고 엄마와 할머니한테 말했다. 난 전혀 다행히 아니었는데 말이다. 불이 진화되고 어른들이 어느 정도 방에서 물을 빼내고 그을린 곳을 닦고 나서야 방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할머니가 엄마한테 말했다. 일단 오늘은 근처 여관에서 잠을 자자고.


여관으로 가기 전에 난 신발을 신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녹색 잠자리 통은 다행히 검은 그을림만 있었고 녹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안에 내 왕잠자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왕잠자리도 위기를 느꼈는지 날개가 부러져 있었고 머리는 꺾여 있었다. 난 한참을 왕잠자리의 사체를 바라보다 저녁에는 절대 열지 말라고 했던 빨간 창문을 열었다.


창문 밖으로는 젊은 여자들이 한복을 입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고 통 유리창에 안에 앉아 있는 여자들을 남자들이 유심히 보며 포주 할머니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창문 밖은 온통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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