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별이 되다
"엄마~!"
길었던 여름방학이 끝나기 일주일 전 나와 은수는 자월도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조금은 긴 시간 동안 우리가 없었기에 엄마가 좀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랜만에 본 엄마의 얼굴이 어두웠고 모습은 초췌해 보였다. 왠지 걱정이 돼서 엄마한테 괜찮냐고 물었는데 엄마는 그냥 피곤해서 그런다고 담담히 말했다. 나도 그냥 그렇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몇 개월 후 수술을 했다.
나랑 은수는 병원에 배려로 엄마 옆 침상에서 잘 수 있게 해주었다. 엄마랑 같이 일하는 회사 사람들 몇 명이 찾아왔다. 왜 엄마가 아팠는지 엄마와 회사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알 수 있었다. 출판사 방문 판매는 하루에도 몇십 개 집에 초인종을 눌러야 했고 문전 박대 당하거나 사나운 개라도 만나면 봉변을 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왜 그렇게 쉬지 않느냐며 사람들은 걱정하며 말했지만 엄마는 하루도 쉬지 않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무거운 책 샘플을 가지고 도시 전 지역을 걸어서 다녔다. 결국 엄마 몸이 버티지 못하고 고장이 난 거다.
갑상선.
이름을 들어도 어디가 아픈 건지 알지 못했지만 점점 변해갔던 엄마의 목을 보고 아픈 곳이 그쯤이라고 생각했다. 몇 달 전 엄마가 피곤해 할 때만 해도 몸에는 이상이 없어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 목이 개구리처럼 부풀어 올랐다. 엄마 목에 주머니가 생겼다고 은수가 장난을 쳤지만 나와 엄마는 웃을 수 없었다. 그렇게 엄마 목에 있던 주머니는 사라졌고 그 위로 길고 깊은 흉터가 생겼다.
엄마가 수술하고 돌아오던 날 밤.
나와 은수는 엄마의 양쪽에 누어서 엄마를 꼭 안았다.
"엄마. 많이 아파?"
"아니. 수술해서 다 낫지! 끄떡없지!"
이 말을 하면서 엄마는 또 울었다.
우리도 엄마 가슴에 얼굴을 묻고 같이 울었다.
수술을 하고 엄마는 최소 몇 달은 쉬어야 한다는 의사 말을 듣지 않았다. 일주일도 안돼서 집 한편에 쌓여 있는 책 샘플을 바퀴가 달린 가방에 잔뜩 넣어서 밖으로 나갔다. 엄마는 늘 우리와 떨어져 있지 않으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다.
이게 다 아빠 때문이었다.
엄마가 이렇게 아픈데도 우리들이 이렇게 울면서 사는데도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아빠라는 사람을 저주했다. 내가 더 어렸을 때는 엄마가 아빠를 잡으러 다녔다고 하는데 이젠 엄마도 아빠를 포기했다.
그리고 나도 아빠를 포기했다.
언제부턴가 친구들이 아빠에 대해 물으면 그냥 죽었다고 했다. 아빠가 있는데 집에 안 온다고 하면 왜 안 오냐는 둥 범죄자 아니냐는 둥 이상한 말들이 돌아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없다고 했다. 그게 편했다.
엄마는 일을 바로 다시 시작했지만 떨어진 체력에 무리를 해서인지 얼마 못 가서 집에 누워 있어야 했다. 엄마는 조금만 쉬면 된다고 했지만 그로부터 6개월이 넘게 전기장판에 의지하며 누워있어야 했다. 출판사 동료인 미숙이 이모만 퇴근하고 잠깐 와서 집안일을 해줬다. 이렇게 남의 도움을 받았지만 친인척들은 절대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외할머니조차도. 나중에 알았지만 엄마가 외할머니한테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몇 개월을 더 버티다가
우리는 다시 이삿짐을 싸야 했다.
엄마는 친할머니가 사는 곳으로 간다고 했다.
이사 간 곳에서는 더 이상 걸어 다닐 수 없고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야 한다고 말해줬다. 자꾸 우리 가족이 세상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엄마와 은수가 같이 있으면 난 괜찮았다. 어디로 가든지.
이삿짐을 실은 용달은 주황색 큰 빌딩 사이로 난 큰 골목에서 차를 세웠다. 엄마 말로는 할머니가 살던 곳에 우리가 살고 할머니는 다른 남는 방 하나를 쓴다고 했다. 1층에 세탁소가 있었고 너무 이쁜 한복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용달차가 세워진 걸 보고는 세탁소에 있는 한 남자가 왼쪽 다리를 살짝 절뚝거리며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하얀색 축 늘어진 러닝만 입고 나온 아저씨는 세탁소 왼쪽으로 나 있는 작은 계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계단으로 올라가서 왼쪽으로 돌면 나무로 된 문이 있을 거예요. 거기에요."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엄마가 창백한 얼굴로 대답했고 딱 한 사람 정도만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계단으로 우리는 올라갔다. 짐은 몇 개 안됐지만 세탁소 아저씨가 무거운 것들을 올려줘서 옮길 수 있었다. 주황색 빌딩들 사이로 작은 가건물에 2층이 우리가 살 곳이었다. 2층은 시멘트 바닥으로 된 복도가 길게 있었고 옆으로 밀어서 열리는 문이 몇 개가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 방이었다.
그렇게 그곳에서의 생활이 또 시작됐다.
우리는 어디에서든 살아야 했다.
#소설 #춤추는 #별 #입원 #갑상선 #엄마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