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별이 되다(참치캔)

춤추는 별이 되다

by 진정성의 숲


"기뱀이형! 하하하"


"야! 이 자식이! 하하하"


기범이 형을 난 기뱀이형이라고 불렀다. 친근감의 표시였다. 형과 큰 외삼촌 가족들은 큰 외삼촌이 술 때문에 간암으로 돌아가시고부터 자월도에 외할머니 집에서 살았다. 몇 년 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자리를 형편이 어려웠던 큰 외삼촌 식구들이 채우게 된 거다. 기범이 형 위로 두 명의 형과 아래로 한 명의 여동생이 있지만 우리는 기범이 형이랑 가장 친했다. 형은 우리와 형편이 비슷했기에 왠지 더 편하게 느껴졌다. 미혜랑 미선이는 우리랑은 안 친했고 작은 외삼촌 네 기운이랑 기태, 그리고 둘째 이모네 성환이 형이랑 놀았다.


잘 사는 집 사람들은 어른도 아이도 왠지 싫었다. 그들은 입는 옷이 달랐고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달랐다. 그래서 그냥 옆에만 있어도 주눅이 들었다. 나와 은수는 늘 둘째 이모네 성환이 형이 입던 옷을 물려받아서 입었는데 기범이 형도 우리와 같은 처지였다. 그래서 기범이 형이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형은 나와 다르게 당당하고 해맑았다.


그래서 기범이 형이 난 좋았다.


기범이 형은 우리가 온다고 해서 외할머니 집에서 밑창이 떨어질 것 같은 슬리퍼를 신고 40분을 걸어서 왔다고 한다. 이모와 두 딸은 짐을 내려놓고 그늘에 앉아 있었고 나와 은수는 기범이 형이 오면서 잡아온 사마귀를 무섭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20분 정도 기다리다 보니 자월도에 살고 있는 큰 이모부가 용달차를 타고 우리 앞에 섰다. 이모와 두 딸은 앞좌석에 탔고 나와 은수 그리고 기범이 형은 뒤쪽 짐칸에 올라가 박스를 깔고 나란히 앉았다. 외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은 섬의 외곽을 따라 한참 이어졌고 우리는 바닷바람을 느끼며 끝말잇기를 했다. 그렇게 섬 외곽의 길에서 섬 안쪽으로 좁은 길을 지났다. 양쪽으로 푸릇한 벼가 심어진 논이 나왔고 더 이상 차가 올라갈 수 없는 언덕이 보였을 때 용달차는 섰다. 이모와 두 딸, 그리고 우리는 위쪽으로 보이는 기와집을 향해 걸었다. 집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코를 강렬하게 찌르는 냄새에 머리까지 아팠다. 왜 하필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돼지우리를 만들었는지 정말 냄새가 지독했다.


"엄마! 나 왔어!"


정숙이 이모가 마당에서 빨간 고추를 말리는 외할머니의 뒤통수를 대고 말했다. 외할머니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고는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작고 아담한 키에 처진 눈과 동글동글한 코는 내가 좋아하는 호호 아줌마랑 똑같았다. 우리 쪽으로 오기 위해 일어섰지만 허리가 이미 휘어서 우리에게 기역 자로 걸어오셨다.


"아고! 우리 또깽이들 왔어?"


"할머니~!"


나와 은수를 할머니한테 달려가 안겼다. 외할머니한테는 좋은 냄새가 났다. 외할머니는 유일하게 우리 집에 오는 사람이었다.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는 날에는 나와 은수에게는 파티날이었다. 올 때마다 섬에서 딴 굴이며 쌀이며 음식을 보따리로 한가득을 가지고 오셨고 늘 우리가 좋아했던 과자선물세트를 사 오셨다. 사실 엄마랑 나누는 얘기는 아빠에 대한 얘기라 표정이 안 좋았지만 우리를 볼 때는 늘 작은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웃어주셨다.


"야! 은성아! 은수 데리고 바다 가자!"


"오케이! 이모! 바다 좀 다녀올게요!"


"어. 그래. 좀 있으면 밥 먹어야 하니깐 너무 늦지 않게 와야 해!"


옷도 갈아입지 않고 우리 셋은 미친 듯이 집과 가까운 쪽 바다로 뛰어갔다. 섬에 하늘은 너무나 넓고 길어서 세상이 다 하늘로 꽉 찬 것 같았다. 뛰어가는 길에 뒤에서 메뚜기를 보고 따라갔던 은수를 다시 잡아 왔다. 우리 셋은 일단 바다로 뛰어들었다. 나와 은수는 수영을 못했지만 기범이 형은 자월도와 가까운 섬까지 수영으로 갔다 올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꽤 오랜 시간 수영을 하고 갯벌에서 돌개를 잡으며 놀았다. 도착하자마자 웃통을 벗었더니 등이 벌써 따끔거렸다. 매년 방학에 섬에 다녀오면 나와 은수는 뱀 허물 벗듯이 등에 껍질이 벗겨졌다. 섬에 살고 있는 기범이 형은 이미 벗겨지는 단계를 넘어서 이제 그냥 정말 까맣기만 했다. 그러게 미친 듯이 놀다 보니 저녁놀이 보이기 시작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돌아온 집 굴뚝에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외할머니에 호박 국을 난 가장 좋아했다. 한 시간을 넘게 가마솥에 끊인 호박 국은 카스테라 같이 부드러웠고 꿀을 넣은 것처럼 달달했다. 우리는 대청마루에 상을 2개 붙여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두 형들과 누나는 도시로 나갔고 큰 외숙모는 큰 외삼촌이 돌아가시고 집을 나가서 없었기에 오늘의 밥상은 외할머니와 그리고 미혜와 미선이 나와 은수, 기범이 형이 전부였다. 몇 시간을 땡볕에서 놀았더니 미친 듯이 배가 고팠다.


호박 국, 찐 호박잎, 김치 그리고 참치캔?


밥 상 위로 예상하지 못했던 참치캔이 보였다. 집에서는 자주 사 먹지 못했던 거라 은수의 눈이 반짝거리는 게 느껴졌다. 난 이미 친척들과 같이 있으면 눈치 보는 게 습관이 돼서 외할머니와 같이 부엌에 있는 이모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은수가 먼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이에 뒤질세라 기범이 형도 대접에 담긴 흰쌀밥을 숟가락으로 크게 퍼먹기 시작했다. 미혜와 미선이는 새가 모이 먹듯이 젓가락으로 밥알을 몇 개씩 집어먹었다. 그래도 난 외할머니와 이모가 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부엌에서 이모가 씻은 굴을 가지고 상 쪽으로 왔다.


"야! 아이! 너 이거 먹으면 어떡해!"


갑자기 이모가 밥상을 보더니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치듯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이모를 바라봤다. 이모는 눈썹이 잔뜩 올라가 있었고 시선은 미혜의 밥그릇 쪽으로 향해 있었다. 가슴이 심한 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기범이 형도 한참 먹던 밥숟가락을 조용히 놓았다. 이모는 그렇게 한참을 인상을 쓰며 밥상을 바라보다가 침묵을 깨며 말했다.


"야! 너 미혜 반찬을 다 먹어 버리면 어떡해!"


아. 참치캔.


미혜 앞에 놓여 있던 참치캔은 이미 투명한 기름만 바닥에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미혜 옆으로 앉아 있던 은수가 잔뜩 겁을 먹고 고개를 푹 숙이고 마룻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몇 초간 그렇게 가만히 얼음이 되어 있던 은수가 눈이 빨개지면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놀라서 뛰어나온 외할머니는 정숙이 이모한테 소리쳤다.


"야! 애가 먹은 걸 가지고 그렇게 뭐라 그러면 어쩌니!"


"아니~! 엄마, 이거 미혜가 밥 안 먹어서 가져온 거란 말이야!"


참치캔은 미혜 거였다.


은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모, 죄송합니다."


순간 기름만 남은 참치캔을 집어서 이모한테 던지고 싶었다. 은수에 입에서 나오는 존댓말에도 화가 났다. 하지만 마음대로 행동하면 안 된다는 걸 이미 난 알고 있었다. 매번 서럽거나 억울할 때 내 마음에 있는 얘기를 하면 돌아오는 말은 뻔했다.


어디 어른한테 대드냐고. 교육을 못 받아서 그런다고.

아빠가 여자에 미쳐서 혼내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그래서 난 이럴 때 그냥 침묵한다.


그 순간만 참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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