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달리기 시작했다

지하철독서-2133

by 진정성의 숲


나는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원칙적으로는

공백 속을 달리고 있다.

거꾸로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서

달리고 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36p-

(무라카미 하루키/문학사상)


----------------------


내 안에

가득 찬 생각은

날 단 한 발짝도

못 움직이게 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건

'몸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문제'였다.


작년 9월.


쓰나미 같았던 '생각의 내압'이

내 몸을 굳어버리게 했던 순간.


난 달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공터가 나올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뛰어 보기로 다짐했다.


아직 습관이 되지 않았던 터라

어느 날은 5km, 어느 날은 10km.


시간도

거리도

주기도

달랐다.


하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아니 어제도 뛰었다.


이젠 어느 순간

'뛰고 싶다'라는 마음이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처음엔 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버리겠다고

내 안의 공백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달리다 보니

그 생각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 몇 백 미터는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1km가 되고 2km가 되면서

내 심장이 생각을 강제로 멈추게 했다.


그렇게 거리가 늘어갈수록

'생각에 대한 생각'은 사치가 되었다.


깨달았다.


생각을 멈출 수 있는 건

생각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었다.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는

'숨가쁨'이었다.


내 심장에 요동이었고

내 다리에 뻐근함이었고

내 몸 밖으로

기를 쓰고 나오는 땀이었다.


난 그렇게

내 머릿속 공터에 다 달았고

그 공터에 매일은 아니더라도

꽤 자주 올 거라 확신한다.


----------------------


#지하철독서인증 #지하철도서관

#교통카드열람표 #짧은글긴생각

#1호선311546열람실 #언스플래쉬

#책 #글쓰기 #독서 #진정성 #생각

#하루키 #무라카미 #달리기 #러닝

매거진의 이전글고통은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