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에 대한 생각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특별한 느낌

by 진정성의 숲


'부재중 전화 15건... 문자 한 통..'


'우리 OO병원인데 일어나면 전화해'


오전 10시가 다 돼서야 숙취로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보는 순간,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친구들의 전화와 문자. 보통 우리들은 만난 다음날 연락을 하지 않는다. 연락이 온다는 건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던가 가방이 없어졌다라던가 좋지 않은 일들이 있을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전화와 OO병원에 있다니 뭔가 큰일이 있어 난 것이 분명했다.

핸드폰으로 문자가 온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딸깍'


"애들이 사고가 났... 어..."


"응? 무슨 사고? 어떻게 된 거야?"


"너 먼저 가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애들이... 사고가 났어..."


친구는 울고 있었다.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했지만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2017년 12월 한 해를 보내는 망년회.

여느 때와 같이 일 년에 한 번 대학교 친구들이 모이기로 했다.


압구정역에서 퓨전술집을 하는 친구 남편의 가게에서 우리들은 모이기로 했다. 그날 회사가 일찍 끝난 나는 가장 먼저 도착했다. 내리막길 코너에 위치한 술집은 마치 예술가의 거실처럼 느껴졌다. 히피스러운 담요들과 테이블, 약간 어두운 간접조명, 열 테이블이 채 안 되는 아담한 가게 사이즈. 친구 남편의 가게이지만 친구의 손길이 많이 닿아 있는 듯했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도착하고 남자 다섯, 여자 다섯. 우리들은 완전체가 됐다. 우리는 이내 대학교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학교 앞 곱창전골 집에서 육수도 아닌 물로 재탕에 삼탕까지 하며 건더기가 없어질 때까지 밤새 소주를 마시며 했던 얘기들과 그 시절 불안한 미래와 설익은 사랑은 우리들의 안주였다.


오후 7시쯤 만난 우리들은 직장, 결혼과 육아 등 그동안 못 만난 기간에 있었던 얘기로 시간을 채워갔다. 어느덧 10시가 되었고 친구 남편의 가게에서 나와 우리의 두 명의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2차로 향했다. 똥집이 맛있는 집이라며 어느 한 친구가 소개한 곳에서 우리는 1시간쯤을 더 보냈고 노래방을 향했다. 노래방에서 우리들은 98학번 때 유행했던 노래를 메들리로 부르며 행복해했다. 안재욱의 '친구'라는 곡을 마지막으로 그렇게 행복했던 시간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망년회는 행복하게 끝났다.


인천이 집인 나는 가장 먼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고, 내가 택시를 타고 출발한 지 얼마 후 일이 벌어진 것이다. 왕복 16차선 도로에서 내 친구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그것도 한 차에 남자 친구와 여자 친구 두 명이 동시에 사고를 당한 것이다. 친구가 차에 치인 장면을 고스란히 목격한 친구들은 공포에 싸여 그 순간을 온몸으로 감당했던 것이다. 911 응급차가 도착하고 두 친구는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다른 친구들은 두 친구를 살피고 가족들과 연락을 하며 초초한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대충 옷을 걸치고 바로 나와 차를 몰고 친구들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온몸이 떨렸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행복한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 자체가 실감이 안 났다. 그렇게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병원에 도착했다. 기약 없이 친구들의 가족들과 응급실 밖에서 기다렸다. 두 친구 모두 생사를 오가는 수술을 몇 차례 마쳤고, 다행히 생명에는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얼굴, 다리 등의 골절과 내장기관이 손상되어 앞으로 장애를 갖고 살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1년이 넘은 지금. 남자 친구는 퇴원을 해 직장으로 복귀는 했지만 힘든 일은 하지 못하고 몸 여러 군데에 철심을 박고 지속적으로 관리를 받아야 ㅎ나다. 그런데 여자 친구는 10차례가 넘는 수술을 했고 아직도 병원에서 지내고 있다. 얼마 전 여자 친구가 또다시 큰 수술을 했고 병문안을 갔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한 순간에 인생이 바뀌고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는 친구를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사고 일어난 이 후.

친구들과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그날.

우리가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친구 누군가 일이 생겨 약속을 미뤘으면 어땠을까.


돌이킬 수 없는 생각의 잡념이 가득한 채,

병원에 도착해 큰 수술을 또 한 차례 이겨낸 친구의 얼굴을 천천히 보았다. 지난 1년간의 고통이 친구의 얼굴에 담겨 있었고 난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정말 힘들지?

너의 아픔을 나도 공감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가벼운 농담을 하며 웃었다.

조금이라도 친구가 내 웃음을 보고 힘을 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것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생각했다.


'누군가를 공감한다라는 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 걸까?'

'왜 나는 친구에게 그 말을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을까?'


공감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내 안에서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난 절대 그 친구의 마음과 같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공감하려 노력하는 거지,

공감한다라고 말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共 感’

이 세상에 완벽히 같은 마음이란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공감한다’가 아니라 ‘공감하려 노력한다’가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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