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쓰고 싶은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특별한 느낌
"쓰고 싶다는 건 아픔이 있다는 겁니다"
글쓰기 수업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픔이 있다고?'
그랬다.
난 내가 아픔이 있는지 몰랐었다.
2013년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억지로 읽었다.
습관을 만들기 위해
왕복 3시간
출퇴근길
졸린 눈을 억지로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책을 읽었다.
감동을 해서?
아니
당연히 하품이 나와
눈물을 흘리며 책을 읽었다.
시간이 지나
하품을 하며 억지로 붙잡았던 눈꺼풀의 무게만큼
단어가 눈으로 들어왔고
문장이 마음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부터 글이 쓰고 싶어 졌다.
서점에 가면
무수히 많은 책들이 있다.
몇백 년이 지난 사람들도
이렇게 할 얘기가 많아서
동시대에 말하다 못해
후세에 까지 자신의 얘기를 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글을 남긴 건가?
사실
나도 할 말이 많았다.
심파에 가까운
어린 시절 불우했던 이야기도 있었고
너무 소심해서
나서서 말하지 못했던 현실의 이야기도 있었다.
근데
이게 내가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아니었다.
아니
글을 쓰고 싶었지만 글을 쓰지 못하고
동경만 했던 이유는 아니었다.
두려웠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왠지 울 것 같았다.
마흔까지의 내 삶을 돌아보고
내 생각을 쓰게 되면 울 것 같았다.
나를 위로하는 것 자체가
세상에 백기를 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느 때는
"내가 쓰는 글의 찌꺼기를 누가 읽겠어?'라고
생각했고 다시 글쓰기가 두려웠다.
내 이야기가 업신여겨지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런데 얼마 전
5년 전 글쓰기 수업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다시 불현듯 떠올랐다.
"쓰고 싶다는 건 아픔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
쓰고 싶다는 건 아프다는 거였다.
아픈 사람은 자신이 낫기 위해 몸부림친다.
나에게 글쓰기는 일종의 몸부림이었다.
내 안에서
발현된 아픔이
가슴을 쓰리게 했고
크고 작은 마음의 병이 생겨
곪아 있었던 것이다.
난 아픈 사람이었다.
이제야 내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살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지금껏 여러 곳에 내 아픔의 흔적을 두서없이 남겼다.
이제는 조금씩 정리해보려 한다.
이제는 조금씩 나아지려 한다.
이제는 조금씩 나아지고 싶다.
아픔이란
별에서는
행복도 절망도
자유도 구속도
상처도 치유도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