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6 평범한 아내의 삶
오늘은 특별히 한 게 없는 그저 평범한 일기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날이 좋아지는가 싶더니 왜 점점 추워지는 것 같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지내는 플랫이 외벽으로 되어있는 데다 나무 창문이라 방이 너무 춥다. 내일은 온열기나 히터 같은 거 알아보러 마트를 다녀와야 될 것 같다. 돈을 너무 막 쓰는 것 같지만, 감기 걸려서 병원비 나가느니 이게 나을 것 같다.
신랑이 출근 준비하는 동안, 별거 아닌 간단한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괜히 아내가 된 기분. 설레는 느낌이 들었다. 신랑이 좋아하는 베이글도 데우고, 커피도 타고. 맛있게 먹어주니 괜히 기분도 좋았다. 오늘부터 드디어 차 가지고 출근하는 신랑, 그저 조심히 잘 다녀오길 바랄 뿐이다. 신랑을 출근시키고 나니 괜히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나도 일할 가게가 생겼는데 왜 이런 기분이 들지? 오늘은 그냥 찬양 듣고 말씀 읽는 것에 집중하는 하루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뉴질랜드에 온 다음부터 제대로 성경책을 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왠지 우선순위가 뒤바뀌는 것 같아서 오늘은 성경책도 좀 읽고, 찬양도 들으며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전 시간을 그렇게 홀로 조용히 보내고 점심을 라면으로 해결했다. 어째 한국에 있을 때보다 라면을 더 먹는 느낌이다. 점심을 먹고 아직 다 마무리하지 못한 방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방은 하나요, 짐은 여러 개니 청소를 해도 해도 끝없이 뭐가 나오는 것 같다. 이제야 부모님 마음을 알 것만 같은 느낌이다. 어제 마트에서 사 온 밥솥도 개봉했다.
뉴질랜드 사람들의 주식이 밥이 아니다 보니 플랫에 밥솥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사게 되는 가전. 어제 다녀온 웨어하우스에서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다. 밥이 잘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오늘 날씨가 좋으면 운동삼아 신랑 일하는 곳까지 걸어가려 했는데, 오늘은 영 날씨가 꽝이다. 흐리고 바람 불고 난리도 아니다. 집에서도 너무 추워서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다. 신랑이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동안 신랑이 퇴근을 했다. 양손 가득 스시를 가지고 돌아왔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스시. 앞으로 나도 만들어야 할 스시.
너무 푸짐한 스시덕에 플랫 식구들과 나눠먹을 수 있었다. 날씨가 흐려서 가게에 사람이 많이 없었는지, 남은 스시를 챙겨 올 수 있었나 보다. 배부르게 먹고 나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날이 너무 추워 오들오들 떨고 있는 우리를 따뜻한 커피로 녹여줬다. 지극히 평범한 하루, 어쩌면 우리가 평생 살아갈 하루하루인 것 같다. 그래도 일기를 쓰니 오늘 하루가 정리된다.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