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라의 아지트 & 꼴뚜기 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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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에서 20m 정도 지나 밭둑을 건너면 시멘트벽돌로 둥그스레 만들어진 벽담이 보이고, 그 벽담 넘어 처마 밑에는 줄로 꼬여진 빨랫줄이 이어져 있었다.
그곳에는 간간히 제비들이 날아와 잠시 쉬어가는 줄이기도 했다. 그곳이 바로 퀴라가 살고 있는 군인가족 주인집 옆에 자리 잡은 퀴라네 월세방이었다. 담벼락 가까이에는 두 사람 정도 누울만한 툇마루가 있었고 툇마루 위에는 낡은 장판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툇마루 옆에는 어른 키만 한 나무 한그루가 외롭게 서 있었다. 두 발자국 정도 되는 툇마루와 방입구 사이에는 곱게 다져진 마당 위의 흙이 유일한 퀴리의 땅따먹기 장소가 되어 주었다. 땅따먹기 놀이를 할 때마다 지켜보는 친구가 있었다.
혼자서 땅따먹기 하며 놀고 있는 퀴라를 지켜보는 이는 바로 빨랫줄 위의 멋진 신사 제비들이었다. 그곳은 퀴리의 가족이 살고 있는 방과 기찻길 근처 담벼락 사이였다.
방입구가 미닫이문으로 되어 있어 제비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마다 퀴리의 가족 한 명 한 명의 행동들이 보일락 말락 제비들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방 옆에는 작은 부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구들장으로 만들어진 방을 덥히기 위해 아궁이가 놓여 있었고 그곳에는 나무를 때는 대신 신식 연탄보일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부엌에서 방 안으로 통하는 작은 문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밥상을 들이기에는 참 안성맞춤인 문이었다. 하지만 때때로 연탄가스의 악마들이 그 문을 통해 스멀스멀 침범하는 바람에 가끔 퀴라는 머리가 어지러워서 그리 좋아하지 않는, 먹고 싶지 않은 차가운 동치미를 의무적으로 벌컥벌컥 마셔야만 했다.
그리고 여름부터 가을사이 담벼락과 툇마루사이 주변에 퀴라를 벌벌 떨게 하는 무서운 벌레들이 종종 출현하고 있었다. 퀴라는 툇마루옆 담벼락에 붙어 외로이 땅에서 자라고 있는 이름 모를 나무에서 종종 떨어지는 쐬기라는 벌레들에게 호되게 당하는 날이 많았었다.
월세방에서 한참 떨어진 화장실에 가기 힘들었던 퀴라는 툇마루에 은색 쇠요강을 놓아두고 볼일을 보고는 했었는데, 가끔 급한 마음에 요강을 살펴보지도 않고 그냥 덥석 앉아버리면 그날은 영락없이 “아~~”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며 한동안 따끔따끔 거리는 엉덩이를 치켜들며 아파해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퀴라의 엉덩이를 퀴라의 어머니가 호호불어 주고는 하셨다. 쐐기란 것이 징그러운 가시 달린 초록색의 송충이 같기도 한데, 나중에는 나방이 된다고 한다. 여름에서 가을철 감나무 밑을 지날 때는 쐐기를 조심해야 한다.
쐐기는 특히 감잎 뒤에 많이 붙어 있는데, 사람의 살이 닿으면 그 많은 가시로 순간적으로 쏘아댄다고 한다. 쐐기에 쏘이면 불에 덴 것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프고 따끔거린다. 이렇게 쏘인 자리를 보면 무수히 많은 털들이 붙어 있는데 물을 계속 부어 씻어내어야만 한다. 하지만 쐐기침은 털이 너무 가느다랗고 많아 빼기가 어렵다. 이렇게 물로 계속 씻어내 초기 조치를 한 다음 약을 발라야 하는데 퀴라의 엉덩이는 퀴라의 어머니가 된장을 발라주셨다.
그래서였을까 퀴라의 엉덩이는 항상 붉게 물들어 있었다. 퀴라는 처음 쐐기의 따가운 맛을 본 후 쐬기란 놈이 참 무섭다는 것을 알았고 그 나무조차도 무서워했다. 그래서인지 그 나무가 감나무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로는 감조차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쐐기에 쏘이고 난 후 퀴라에게는 벌레 중에서 아니 세상에 태어나 만난, 이 세상 살아있는 벌레 중 쐐기가 가장 무서운 존재로 인식이 되었다. 쐐기가 퀴라의 요강을 습격할 무렵 퀴라의 부모님과 남동생은 초저녁 일찍부터 잠을 청한다.
덩달아 일찍 잠을 자야 했던 퀴라도 이불속에서 따가운 엉덩이를 뒤척이며 기차소리에 맞춰 숨을 고르고 있다. 잠이 오지 않아 눈을 뜨고 앞을 보니 어둠이 눈앞을 가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에 반해 조그만 움직임 소리조차 앞다퉈 들리는 퀴라의 귓가에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뻐꾹뻐꾹,,,, 뻐뻐꾹 뻐꾹” “뻐꾹뻐꾹 퀴라야?”
“뻐꾹뻐꾹,,,, 퀴라야?” “뻐꾹뻐꾹 퀴라야?
순간 “나!” 라는 소리를 지를 뻔했던 퀴라는 작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입을 막고는 살금살금 일어나 바지를 대충 끼워 입고 윗 러닝은 잠자던 채로 그냥 방을 미끄러지듯 빠져나온다.
주인집 앞마당을 살금살금 가로질러 삐걱거리는 철문을 살짝 열어 둔 채 나온 퀴라는 골목을 휘휘 둘러본다.
“퀴리야~ 여기, 여기야”
희미한 가로등 뒤편으로 구렁이 한 마리 굼실굼실 넘나들듯 검은 그림자가 담벼락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지나가는 모습과 함께 두 남자가 나타난다.
“왜? 왜? 오늘은 무슨 일인데...”
부스스한 얼굴로 두 남자들에게 호기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퀴라는 말을 꺼낸다.
“오늘은 우리 꼴뚜기 대책회의 하려고 해! 괜찮지? 얼른 우리의 아지트로 가자”
“꼴뚜기? 아지트? 그게 뭔데!”
“그냥 따라와 봐”
“응 알았어 오빠”
꼴뚜기 대책회의란 말에 쿼라는 커다란 눈이 어둠 속에 떠있는 둥근달보다 더 휘둥그레 밝아졌고 앵두 같은 입술은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손바닥이 큼지막한 남자들이 퀴라의 양쪽손을 잡고 뛰어간다.
어두컴컴한 밤, 골목길안 퀴라에게는 그 두 남자의 모습이 낯설었다. 낮에는 여자아이들 고무줄놀이의 훼방꾼으로서 늘 칼로 고무줄을 끊어버리고 날쌔게 도망치던 13살 어린아이처럼 보이더니, 밤이 되니 슈퍼문의 위력처럼 두 배나 커진 남성의 그림자의 모습이 마치 멋진 동화 속 신비한 키다리 아저씨처럼 보였다.
퀴라는 믿음직한 키다리아저씨들의 손을 잡고 뛰는 동안 기찻길옆 골목길안 주인공-퀴라의 보물인 동화책 속 주인공인 신데렐라가 되어버린 듯 무척이나 행복했다.
그렇게 윤석과 연기 그리고 퀴라는 5분도 안 되는 아지트에 헐레벌떡 도착해서는 잠시 주변을 살펴본다.
“짜잔~~ 어때? 우리 아지트야”
윤석과 연기는 뿌듯하다는 듯 아지트를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퀴라에게 말을 했다.
“우리가 만든 거야, 정말 근사하지?”
“이 아지트를 오빠들이 만들었다고? 우와~~대단하다”
“그래 이제부터 이곳이 우리 아지트야, 그러니까 우리가 뻐꾸기소리 내면 나와야 해 알았지?”
“응, 알았어”
퀴라는 시멘트벽돌로 만든 아지트를 몇 번이나 둘러보며 “우와~ 우와!” 감탄의 소리를 내었다.
골목길안의 통로는 폐지 주우러 다니는 할머니의 손수레 한대 지나갈만한 골목길로, 양옆으로 시멘트벽돌 담벼락 사이사이 양철대문이 주를 이룬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군데군데 좀 있어 보이는듯한 집 대문은 아주 커다란 양철대문집, 나무대문집, 그리고 대부분은 작은 양철대문이었기에 그들의 삶은 대문에서도 알 수가 있었다.
골목길안은 대부분 작은 양철집대문집들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마치 땅따먹기 놀이를 하던 퀴리의 전성기처럼 조그마한 틈조차도 내 땅 차지하듯 서로가 밀어내는듯해 보였다.
그리고 본토 주인인 개미들의 마을이 새로 지어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그 골목길 안을 자리 잡은 양철대문집들 중 - 그 골목의 마지막에 자리 잡은 가장 대장 같은 커다란 양철대문집.
그곳이 바로 골목 끝부분 부잣집이라 소문난 최 씨 집안 윤석의 집이었다.
반질반질하고 시커먼 머릿결은 윤석의 얼굴을 더욱더 희게 만들어주었고 통통한 몸 또한 부잣집의 표상인 양 잘 먹고 잘자라준 듯해 보였다.
반면 연기는 시커먼 얼굴에 삐쩍 마른 몸매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커먼 얼굴빛 속에 뚜렷한 이목구비가 번쩍번쩍 빛이 났고 얄팍한 입술에서는 똑 소리 나는 말만 만들어 냈다.
윤석과 연기는 같은 골목 안에서 태어나 같이 학교 다니며 함께 골목 안 대장 부대장 놀이를 하던 친구였다. 퀴라는 둘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다보며 뿌듯한 표정으로 흐뭇해한다. 그리고 그 골목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회색빛의 벽면 사이에 작은 양철 대문으로 만들어져 있는 곳에 간판은 없었으나 쌀집이라고 불리는 집이 바로 시커먼 얼굴빛의 잘생기고 공부 잘하는 연기의 집이었다. 그리고 윤석의 집을 기준으로 골목 왼쪽을 따라 퀴라의 월세방이 딸린 주인집 양철대문을 지나고 스무 발자국 정도 걸어가다 보면 연기의 집을 지나가는 골목길. 연기의 집을 지나 또다시 오십 발자국을 걷다 보면 큰 도로로 나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골목 끝부분 골목길안의 골목세상과 시끌벅적한 상가를 차단해 주듯 왼쪽 편에는 모래와 벽돌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간판 없는 시멘트 벽돌공장이 터줏대감인 양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은 퀴라와 같은 학교 다니는 친구 미순이네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시멘트 벽돌공장이다.
1970년대 중후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시작과 함께 시멘트산업은 60년대를 거쳐 다시 도약기를 맞게 된다. 정부의 지속적인 공업화 정책에 따라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을 위한 도로, 항만, 댐 건설 등에 주력하면서 그에 따른 시멘트 수요가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특히 1968년 경부 고속도로의 착공 이후 공장신설과 신규 주택건설 등 각 부분에서 수요가 급속도로 늘어나 시멘트 생산시설의 확충도 급진전 됐다. 그리고 1970년 7월 7일,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이 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 공사'라고 불렸고, 근대화의 성공적 진전을 상징하는 사례로 비쳤다. 또한 1975년에는 연장 201킬로미터, 2차선인 수원-강릉 간 영동고속도로가 완공되어 수도권과 영동지방을 연결하게 되었다. 고속도로가 만들어진 후 철도 위주의 수송 구조가 도로로 바뀌어 가게 됨으로써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연결되었다. 공업 단지도 전국 방방곡곡에 건설되었고, 산업 발전과 산업 생산성도 높아졌다. 고속도로 건설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신화 창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헀다. 그리고 새마을 운동(새마을運動)이 시작되었다. 새마을 운동은 1970년 초 대한민국 농촌의 현대화를 위해 시작되어 범국가적으로 시행되는 운동이었다. 그 덕분에 시골마을 쓰러져가는 초가집들이 번듯한 벽돌로 지어졌고 조기청소라는 명목하에 학생들과 주민들이 아침마다 마을회관에 모여 청소를 하고 정리 정돈을 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지저분했던 시골 마을은 점점 깨끗하게 정돈되어 갔다.
이렇듯 1970년대에는 우리나라가 여러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정리 정돈이 되어 가는 시대였다. 그래서였을까 그곳에는 정말 벽돌들이 참 많았다. 그 시대를 그냥 바라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 시대에 동참하면서 살아가는 미순이의 아버지가 계셨다. 미순이는 아버지 덕분에 그 또래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액세서리라 불리는 귀고리등을 할 수 있었다. 퀴라에게는 그 귀고리가 귀에 매달려 달랑거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신기하게 보였다. 하지만 퀴라는 귀에 구멍을 낸다는 것이 무서워서 부모님에게 부럽다는 말조차 꺼낼 수가 없었다. 그저 예쁘다며 가끔 만지작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미순이네 시멘트공장 안에는 집을 만드는 귀한 시멘트벽돌이 많았는데도 어떤 보호막도 담벼락도 없었다. 그저 여기저기 벽돌들이 차곡차곡 벽돌담처럼 쌓여 있는 것도 있었고, 혹은 여기저기 내던져져 있는 벽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벽돌을 네모반듯하게 찍어주고 만들어주는 녹슨 기구가 마치 회색 오물이라도 마구 토해내는 듯한 회색 괴물이 커다랗게 놓여 있었으며, 그 뒤편으로는 마치 나무 없는 숲 속, 옷 한 벌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 임금님처럼 높은 산모양, 또는 거대한 벌거숭이 임금님의 고깔모자 같은 모래 산들이 여기저기 모래성 피라미드처럼 쌓여있었다.
그곳을 오르고 오르다 모래더미가 손과 발에 미끄러질라치면 퀴라와 미순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깔깔깔 웃는다. 퀴라와 미순이 둘은 경주하듯 모래성으로 올라갔고 목적지인 모래성 꼭대기에 도착하면 그곳은 바로 모래성이 움푹 파인 화산 같은 웅덩이였다.
아마도 포클레인으로 가운데 모래를 파서 시멘트를 만들고 있었기에 가운데만 웅덩이처럼 생겼났었을지도,,,,
이렇게 낯에는 시멘트 벽돌공장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시멘트벽돌 공장에는 미순이와 함께 놀아야만 갈 수 있었다.
“미순아? 미순아~ 노올자~~”
“들어와” 종종 들어오라고 했던 미순이의 말에 기분이 좋아 놀다 오는 날도 있었으나 때로는 “오늘은 안 놀아”라며 퉁명스레 대하는 미순이의 말에 퀴라는 시큰둥하며 그냥 집에 돌아가야만 했던 날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다음 날 아니 몇 시간 후에 또 퀴라는 모든 것을 잊은 채 미순이를 불러댄다.
그럴 때면 미순이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는지 “들어와” 라며 퀴라를 불러들인다.
가장 튼튼한 시멘트벽돌로 만들어진 미순이의 집은 시멘트벽돌이 쌓여있는 곳과 모래성 사이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밖에서는 미순이의 집이 잘 보이지 않았고 집 근처 어디에도 담벼락이 없었다.
다만 미순이네가 종종 마루에 앉아 아줌마들과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시멘트벽돌과 모래성 사이로 얼핏 볼 수가 있었다. 그런 미순이와 미순이의 엄마를 너무도 부러워했던 퀴라, 게다가 미순이네는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한분 계셨는데 무척 친절하셨고 미순이에게는 더욱더 잘해주셨다.
미순이는 마치 시멘트 모래성안에 살고 있는 모래성공주 같았기에 퀴라에게는 더더욱 미순이가 부러움의 대상이었을지도.....
“미순아? 저 모래성에 올라가서 놀자”
“그래~ 우리 거기 가서 인형 가지고 소꿉장난하자”
“그래”
미순이의 허락에 퀴라와 미순이는 모래성을 오르고 올랐다. 모래가 스르르르 미끄러져 내려오면서 퀴라와 미순이의 손발도 미끄러져 내렸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우리 누가먼저 도착하나 시합하자”
미순이의 말이 떨어지지 마자 둘은 마치 야수가 된 듯 두 손과 두 발로 모래성을 할퀴며 씩씩 거리고 올라간다. 미끄러지며 올라가는 내내 헉헉 거렸지만 둘은 앙칼진 암컷의 힘이라도 보여주듯 앞을 향해 더욱더 힘차게 올라갔다. 그리고 모래성 꼭대기에 도착해서는 모래성 웅덩이에 벌러덩 누워 “야호”소리를 친다.
“우와 좋다 여기서 하늘 보니까 하늘이 너무 멋져! 저 구름 봐! 꼭 솜사탕 같아, 저기는 양떼구름이다. 하하하하” 퀴라는 세상을 전부 다 가진 듯 행복했다.
“이거 전부다 우리 거다. 여기 모래성도 저기 저 큰 기계도 다 우리 아빠가 주인이니까 저기 하늘도 우리 거야”
“그래? 그렇구나! 너네 아빠 엄청 부자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데...”
믿어야만 하는 미순이의 말에 퀴라의 부러움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시멘트 골목길 안을 시멘트포장 하기 전에는 땅따먹기 놀이 하느라 미순이네 집은 놀러 갈 생각도 하지 않았던 퀴리였다. 하지만 이제는 흙하나 모래한 줌 어느 곳에서도 만져보기 어려울 정도로 퀴라의 놀이터는 시멘트가 다 점령해 버렸다.
그래서 이제는 미순이의 공장만이 퀴리의 전부였기에 퀴라는 시멘트벽돌 모래성의 공주인 미순이와 놀아야만 했다. 재미있는 놀이터... 두 소녀는 깔깔깔 웃으며 반나절을 모래산에서 보낸다.
3
두 오빠들이 아지트를 만들고 꼴뚜기 대책회의를 하자며 그곳으로 퀴라를 부른 까닭은 무엇일까!
“퀴리야? 항상 조심해, 여기는 달걀귀신 나오는 곳이니까 우리곁에 꼭 붙어있어”
“진짜? 오빠 무서워”
퀴라는 윤석과 연기의 사이에 꼭 달라붙어서 눈을 감고 있었다. 윤석과 연기 그리고 퀴라의 아지트는 시멘트벽돌을 쌓아둔 곳에 가운데만 벽돌 몇 장 쏙 빼낸 그런 곳이었다. 마치 네모반듯한 이글루처럼 되어 있었고 그곳에 다시 벽돌을 쌓아 문처럼 만들었으니 정말 네모 반듯한 작은 집 같아 보였다.
“퀴라야 들어가 봐”
아지트 내부는 세 명이 딱 달라붙게 들어앉을 수 있는 시멘트 벽돌집 같았다.
“오빠! 너무 멋지다. 이 아지트를 오빠들이 다 만든 거야?
“그렇지, 우리 둘이 밤마다 몰래 와서 만들어놨어 어때? 근사하지?”
“응 정말 여기 아무도 모를 것 같아, 우리만 아는 아지트네 호호호호 호호호호”
“그럼... 우리가 누군데.... 이히히히” 윤석과 연기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아무나 못하는 일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오빠? 꼴뚜기 대책이 뭐야?”
“하하하하,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야. 조금만 기다려봐”
“응”
셋은 그렇게 좁디좁은 시멘트벽돌 아지트에서 숨을 골랐다. 퀴라는 이렇게 비밀장소인 아지트가 있다는 것과 밤이 되면 두 오빠들과 아지트에 올 수 있다는 것이 신비스러우면서도 행복했다. 그리고 더욱더 흥미로웠던 것은 벽돌 주인인 미순이가 모르는 비밀 - 퀴리만이 가진 비밀이 있다는 것에 더욱더 행복해했다. 그런 생각에 흐뭇해하며 우와! 우와! 라고 탄성을 내뱉으며 아지트를 둘러보는 사이 윤석과 연기는 벽돌틈 사이로 보이는 밖을 주시하며 “쉬, 쉬”란 말만 내뱉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주변을 지나는 몇 명의 동네 남자아이들이 뭐라 뭐라 중얼거리더니 아지트 근처에 돌을 던지는 듯했다. 퀴라는 좀 이상하고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퀴라의 곁에 듬직한 윤석과 연기가 있었기에 무섭지는 않았다. 하지만 또 “딱”소리와 함께 남자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나와봐, 나는 귀신이 안 무섭다.”
돌을 던지던 남자아이들이 시멘트벽돌 아지트 근처에 대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런 모습들을 벽돌틈으로 지켜보던 윤석과 연기는 주춤거리며 지나가는 아이들을 향해 “그래! 조심들 해라” 라며 비웃듯이 속삭이며 한마디 내뱉고 돌아서서 킥킥 대며 웃었다. 그 모습에 덩달아 퀴라도 조심스레 웃었다. 잠시뒤 남자아이들이 돌아간 듯 주변은 조용해졌다.
“됐다. 우리 이제 꼴뚜기 대책회의 가자”
“응”
셋은 비좁은 시멘트벽돌 아지트에서 나와 마구 뛰어갔다. 마치 달걀귀신에게 쫒기 듯 후다닥 달려가는 모습들이었다.
“퀴라야 꼭 붙어와, 달걀귀신 못 쫓아오게 알았지?”
“응 오빠!”
연기는 저만치 혼자 뛰어가고 있었고 윤석은 퀴라의 손을 꼭 잡고 뛰었다. 큰 도로를 가로질러 5분여 뛰다 걷다 하다 들어간 곳은 시장 안 순대 골목 분식집이었다.
"헉 헉" 숨을 몰아쉬며 윤석은 퀴라에게 말을 건넸다
“힘들지? 다 왔어, 들어가자”
아지트에서 뛰어 5분 정도 걸리는 읍내 시장 안 분식집에 도착한 윤석과 연기는 퀴라에게 앉으라고 자리를 내어주었다.
“오빠? 여기 왜 왔어?”
“꼴뚜기튀김 먹으러 왔지”
“꼴뚜기가 뭐야?”
“꼴뚜기가 무언가 하면? 에이~ 나오면 먹어봐!”
“여기 꼴뚜기튀김 주세요” 윤석은 꼴뚜기튀김을 주문했다.
작은 가게 안에는 테이블이라고는 달랑 두 개 있었고 의자는 휴대용 의자처럼 생긴 둥그런 의자가 여기저기 해져 있었다. 퀴라는 꼴뚜기튀김이 어떻게 생겼고 무슨 맛일까? 궁금해하며 기다리는 동안 윤석과 연기는 퀴라에게 말을 건넸다.
“퀴라야? 우리 아지트가 있다는 거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한테도 얘기하면 안 돼! 알았지?”
“응 알았어... 그런데 거기... 우리 아지트 주변에 정말 달걀귀신 있어?”
“그럼 그렇고말고, 달걀귀신은 해가 뜨면 잠을 자는데 밤에는 작은 소리도 잘 들어 그러니까 밤에 혼자 지나가면 달걀귀신이 으헤헤 헤 하며 달려들 거야, 쿠라야? 혼자 다닐 때는 막대기나 돌멩이는 꼭 가지고 다녀, 아니다 혼자서 다니지 마 알았지?”
“응... 알았어”
9살 키라의 머릿속에는 하얀 피부에 달걀모양을 한 둥그스레 한 얼굴 모양에 눈코입도 없이 긴 머리만을 가진 달걀귀신이 “으헤헤 헤”하며 달려들 것 같은 무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참 그런데 오빠? 아까 지나가던 애들이 왜 우리 아지트에 돌을 던진 거야?”
“응.. 그건.... 나중에 알려줄게,,,”
윤석은 마음속에 들어차 있던 분노의 그 무언가를 지그시 억누르며 키라에게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우와~~ 나왔다. 먹자”
“오빠? 이게 꼴뚜기야?”
“응 맛있어 먹어봐”
“그런데 좀 이상해, 오징어도 아니고... 먹기는 무서워”
“무섭긴 뭐가 무섭냐? 이렇게 맛있구먼 너 안 먹으면 내가 다 먹는다” 앞에서 쩝쩝거리며 맛있게 먹고 있던 연기는 퀴라가 집었던 꼴뚜기를 나무젓가락으로 낚아채 순식간에 먹어버렸다. 마치 큰 입을 가진 배고픈 아귀가 한입거리도 안 되는 꼴뚜기를 꿀꺽 삼켜버리는 듯했다.
“야? 넌 왜 퀴라 것을 뺏어 먹니? 너 자꾸 그러면 다시는 너 안 데리고 온다”
윤석이 연기에게 화를 버럭 내며 퀴라에게 꼴뚜기를 하나 집어 건넨다.
“퀴라야 먹어봐. 다 먹는 거야 한번 먹어보면 아마도 수십 마리 먹을걸 헤헤헤헤”
“알았어”
노란 튀김옷을 입은 꼴뚜기가 퀴라의 입속으로 들어갈 때 퀴라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마치 꼴뚜기가 퀴라의 입속을 꼴뚜기의 작은 발로 마구 두드리는 듯 그 작은 꼴뚜기의 바둥거리는 발의 촉감이 느껴졌다.
“맛있지?”
“응”
“거봐! 얼마나 맛있는데... 내가 그래서 온 건데...” 윤석의 말꼬리가 흐려지면서 셋은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우와 정말 맛있다”
퀴라는 처음 먹어보는 꼴뚜기튀김이 무서워 보였지만 윤석이 먹여주는 꼴뚜기튀김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거친 꼴뚜기의 버둥거림이 점점 잦아들자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의 맛은 아주 부드럽고 또한 담백한 육즙이 퀴라의 온몸을 부르르 하게 만드는 신비한 자극을 만들어 주었다.
“헤헤헤, 다음에 또 사줄게”
“아싸! 좋아 좋아 언제 또 올 건데?”
윤석의 말에 연기는 다음이 또 언제인지 무척이나 궁금한지 보챘다. 하지만 윤석은 연기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퀴라에게 일어나자는 손짓만 하며 계산을 하러 갔다. 윤석, 연기, 퀴라는 꼴뚜기튀김을 맛있게 먹은 다음 꼴뚜기 대책회의 결과물이라며 꼴뚜기튀김 한 마리를 가지고 가서 아지트 근처에 살포시 놓아두었다.
“오빠? 왜 꼴뚜기튀김을 여기다 둬? 아깝잖아”
“하하하하 하하하 꼴뚜기 전투태세 들어간 거야... 지켜만 보고 있어”
윤석은 퀴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무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어루만져주었다.
“..........”
하지만 퀴라는 윤석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다만 연기가 주책없는 한마디를 던질 뿐.
“퀴라 너는 잘 모르면 그냥 보고만 있어, 그래야 다음에 또 먹을 수 있지 헤헤헤헤”
연기는 퀴라의 질문에 비아냥거리며 아까 먹은 꼴뚜기의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었다. 퀴라옆에 서있던 윤석은 연기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퀴라는 윤석과 연기의 알 수 없는 말과 행동에 조금 의아해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각자 헤어져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퀴라야 잘 자”
“응 오빠들도 잘 자”
퀴라는 살짝 열어둔 초록색 양철대문을 살며시 밀고 여주가 빨갛게 익어가는 주인집 앞마당을 지나 철로를 마주 하고 있는 퀴라의 월세방에 도착했다. 다행히 주인집 앞마당은 폭신한 징검다리가 깔려있었기에 발자국 소리가 그리 크게 나지 않았다. 퀴라는 방 미닫이문을 스르륵 열고 들어가 옷을 벗고 살며시 누웠다. 잠을 청하는 내내 퀴라의 눈앞에 자꾸만 어른거리는 꼴뚜기가 눈만 빼꼼히 내밀며 손짓을 해댔다.
“그래! 다음에 또 사준댔어, 또 먹을 수 있을 거야 참 맛있다”
그날밤 솜사탕처럼 달콤한 꿈속을 헤매던 퀴라에게 “학교 가야지” 라며 깨우는 퀴라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고, 달콤한 꿈의 장막은 내려져야만 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입가에는 꼴뚜기들의 반란의 흔적들처럼 보이는 침자국이 허옇게 묻어 있었다.
“현주야? 밤에 화장실 갔었니?”
퀴라의 어머니는 퀴라의 침자국을 닦아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네? 네...”
“변비가 있나 보다, 물 좀 많이 마셔”
“네”
퀴라는 순간 “휴~” 라는 소리를 내며 방문을 나가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대충 세수를 하고 나서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갔다. 작은 골목길안을 지나 학교로 가는 길에 보이는 윤석과 연기 그리고 퀴라의 아지트를 쳐다보며 퀴라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해가 뜨면 달걀귀신은 잔다고 했지? 메롱!”
하지만 퀴라는 그 순간 정신없이 내달렸다. 혹시나 잠에서 깨어나 퀴라를 따라올까 봐 무서워서 땅 위를 나르듯이 뛰어갔다.
“앞에 가는 사람 엉덩이는 뚱돼지~~”
정신없이 달려가는 퀴라의 뒤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에 퀴라는 순간 “아....”소리쳤다.
“앞에 가는 사람은 도둑~~”
이번에는 돌멩이를 집어 퀴라의 가방을 조준했다.
“아싸 맞았다. 이히히히”
“너희들 가만 안 둔다”
퀴라는 아팠다. 가방에 돌이 맞았지만 마치 가슴을 맞은 듯 가슴이 아파왔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그러는 거야, 왜 나한테 그러는 거야?”
“메롱~ 메롱~~” 남자아이들은 퀴라의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놀려대며 퀴라를 앞질러 먼저 학교로 달려갔다. 남자아이들의 알 수 없는 장난에 퀴라는 너무도 초라해져 갔다. 우울한 마음으로 학교에 도착해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오늘 우유당번 누구지?”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퀴라는 번쩍 손을 들었다.
“저요”
오늘은 퀴라가 우유 당번이었다
“현주야? 우유당번 잊어버렸니? 이번시간 끝나고 바로 우유박스 가져와라”
“네 “
학교 오던 중 남자아이들의 놀림 때문에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꼭 그일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퀴라의 가슴은 설렘이라는 방망이로 쿵쿵쿵 두드리는 듯 퀴라의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다. 어제의 그 일 때문일까! 퀴라는 학교생활이 낯설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서 과거로 온 듯 초등학교 저학년인 퀴라에게는 학교가 익숙지가 않았고 우유당번의 의무를 다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또 가져오지 않으면 혼날 것 같아 종소리가 나자마자 우유박스를 가져왔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남아 있는 우유표를 만지작거리며 숫자를 세고 있었다. 퀴라의 학교에서는 한 달 치 우유표를 사야만 우유를 먹을 수 있었다.
“현주야? 그 우유표 나 하나 줄래?”
퀴라의 앞자리에 앉은 잘생기고 공부 잘하는 민석이가 퀴라에게 우유표를 달라고 한다.
“그래... 여기 있어”
“고마워”
“두 장 줄게, 맛있게 먹어”
“그래 고마워”
우유표 한 장 달라는 민석이의 말에 퀴라는 서슴지 않고 두 장을 떼었다. 민석이가 전학 온 지 보름이나 됐는데도 퀴라는 앞에 앉은 민석이의 멋진 뒤통수만 바라보고 지냈었다. 하지만 오늘은 민석이가 얼굴을 약간 돌려 우유표를 달라는 멋진 얼굴의 턱선도 볼 수 있었다. 멋진 민석이가 퀴라에게 우유표를 달라는 말에 퀴라는 그저 행복해하며 스테이플러로 박아놓은 한 달 치 우유표 중 두장을 건네주었다. 민석은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우유표를 받지 못했다. 그런 민석은 당당하게 퀴라에게 우유표를 맡겨 놓은 듯 우유표를 달라고 했다. 그런 민석의 말과 행동에 퀴라도 당연히 줘야 할 것 같아 행복한 미소와 함께 우유표 두 장이나 건네준 것일지도,,,
퀴라에게 우유표는 민석에 대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하루종일 어제의 일들과 민석이 전학 온 후 처음으로 말을 건넸다는 것에 대한 기쁨으로 아침에 놀림을 당한 일들은 모두 잊어버렸다. 학교가 끝나고 난 후에도 퀴라는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도 행복했다.
“우리의 아지트...우리 아지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