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의 시작
타고난 성격은 고칠 수 없다고 한다. 다만 매일매일 노력하면 그 하루하루는 고쳐질 수가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되돌아오는 오뚝이, 고무줄의 탄성처럼 성격도 노력하지 않으면 다시 되돌아온다.
그 성격 중 오지랖이라는 부분은 참 좋다고 생각했기에 늘 시선은 타인에게 향해간다.
-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부족하신가요? 더드릴 까요?
- 힘드실까 봐 제가 미리 해놨어요.
- 아프신데 단백질을 먹어야 해요 치킨 보냈어요.
매일아침 동료에게 "굿모닝"인사하며 "오늘도 행복 가득한 날 보내"
메시지를 보낸다.
모두 기분 좋아한다.
그럼 나도 기분이 좋다.
"내 시간이 내 손가락이 조금 더 사용되고 수고롭지만 그 보다 더 큰 행복을 주잖아, 그럼 계속해야지"
"내가 먼저 보내주는 인사말 덕분에 나도 되받는다. 행복한 언어는 누구에게나 행복을 가져다준다"
개인주의가 만연해진 이 사회에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누군가에게 행복한 언어를 받으면 누군가의 소외감을 덜어주며 누군가의 굳은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해 준다.
그래! 그게 바로 나였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당사자들 간에서 서로의 처지,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의 목적이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함으로써 갈등을 줄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역지사지의 태도는 공감 능력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시작된 오지랖
오지랖이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것이 오지랖인 줄 몰랐다.
‘오지랖이 넓다’ 웃으면서 많이들 사용하지만 그런데 이 말이 그다지 좋은 뜻은 아니라고 한다.
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몸이나 다른 옷을 넓게 겹으로 감싸게 되는데, 간섭할 필요도 없는 일에 주제넘게 간섭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에게 ‘오지랖이 몇 폭이냐?’고 비아냥거리며 묻기도 한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하면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마음이 넓다는 말이다. 즉 남을 배려하고 생각해 주는 마음의 폭이 넓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오지랖이 넓은 것이 미덕일 텐데. 하지만 오지랖이 지나쳐서 남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귀찮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때, 이를 경계하여 ‘오지랖이 넓다’고 하는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자신과 관계없는 사람에게는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눈길도 주지 않는 상황이 불편하고 힘든 사람들(우울증, 공황장애, 소외감)을 만든다.
지금 나는 오지랖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