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시계

by 소소예찬

2025년 달력 2장을 남겨놓고 한 해를 마무리하며 누군가에게 실적 관련 포상이 주어진다.

포상을 하기 위해서는 공적조서라는 문서를 작성해야만 한다. 신기하게도 기회가 계약직인 나에게도 주어졌다. 이런일이 처음은 아닌데 왜그리 마음이 이상한건지,,, 30여년전 기쁨이 아닌 아픔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30여 년 전 20대 열정적으로 일을 했던 정규직으로서의 나는 많은 공적조서를 쓰게 되었다.

그리고 모범직원이라는 표창을 받으면서 부상으로 로렉스 손목시계를 받았다.

예물시계도 그보다 좋지는 않았기에 그 부상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이거 내가 차고 다닐까" "아니지 우리 엄마 주면 좋겠다. 그러면 시어머님은?"

그 단한개의 여자손목시계는 3 여자들의 손목을 골라야만 했다.

고민을 잠시 했지만 나는 결국 시어머님께 드렸다.

"어머니? 이거 제가 일 잘해서 상 탄 거예요 엄청 좋은 거예요"

아주 귀하다며 자랑과 함께 손목에 채워드렸다.

"이거 우리 며느리가 상탄 거랴 엄청 좋은 거야 봐봐, 아니 만지지는 말고 고장 나"

어머님은 경로당에 가셔서는 시계자랑 아니 둘째 며느리자랑을 하셨다.

그 자랑이 끝나면 얼른 벗어서 케이스에 고이 넣어두신다.

"어머니? 왜 안 차셔요?"

"아까워서 그러지, 어디 갈 때만 찰 테니 내버려두어"

그렇게 어머님은 장롱 깊숙이 넣어두셨다. 그리고 가끔 결혼식 잔치나 경로당에 라이벌 할머니가 오신다고 하면 바로 꺼내서 손목에 차고 나가셨다.

나는 어머님의 그 모습이 너무도 가슴저리게[ 벅차올랐다. 왜일까?

늘 농사만 짓느라 손가락 10개는 다 굽어 반지도 하나 못 끼시는 어머님이 시계하나로 이렇게 행복해하시며 며느리가 자랑스러워하시는 모습에 어떠한 말로도 형언할 수 없이 그저 찌릿함과 쩌릿함과 벅차오름으로만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더 열심히 일을 했다. 나름 완벽해지려는 성격 탓인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열심히 일해서 또 표창장을 받아서 여성손목시계를 엄마에게 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마음속으로 많이도 빌어서였을까 몇 년 후 나는 또 그 여성 손목시계를 부상으로 받았다.

"엄마? 이거 내가 상 탄 건데 로렉스 알지? 그거야 엄마 가져요"

"그래? 정말 좋아 보이네"

엄마도 너무 좋아하셨다. 물론 엄마도 친구들에게 지인들에게 딸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너무도 뿌듯했다.

세월이 흐르고 시계가 낡아지고 고장이 났다.

하지만 나는 그 세월 속에 많은 풍파와 함께 고난을 헤치며 다시 바닥에서 일어나 지지대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머님의 낡은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어머님의 얼굴을 바라본다.

"어머님? 지금 몇 시예요?"

"응 3시 30분.... 이거 상 탄 거 만지지 마"

어머님과 나는 주말 3시 30분 버스를 타고 시장에 장을 보러 간다.

"지금 3시 30분 차 탔으니 우리 4시면 읍내에 도착할 거야 이 시계 아주 정확혀"

어머님은 그 시계를 보시며 주말에 며느리와 함께 장에 가서 구경도 하고 반찬거리 사 오시는 것, 그 모습이 가장 행복한 모습이셨다.

하지만 말씀도 줄어드시고 식사도 하지 않으시고 결국 요양원에 들어가셨는데 결국 재작년 12월 25일 어머님은 폐렴으로 결국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셨다.

어머님의 손목에는 멈춰진 시곗바늘들이 "잘 지내"라는 인사를 하듯 휘청거렸다.



고난의 세월을 보낸 후 나는 계약직일을 하면서 포상을 받게 되었다.

이제는 부상이 없어져서 표창장뿐이지만 나보다 더 기뻐해줄 자랑스럽게 여겨줄 어머님이 안 계시니 그저 슬픈 미소만이 나의 뜨거운 눈물을 만든다.


보고 싶은 어머님 생각에 오늘도 고개 들어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기도드립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5.9.29.)떨어졌다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