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뻐꾹뻐꾹, 퀴라야~~” “뻐꾹뻐꾹, 퀴라야~~”
잠시 잠이 들었던 퀴라는 “아차! 9시다” 라며 벌떡 일어나 슬며시 옷을 입는다.
그리고 잠시 엄마, 아버지, 동생을 번갈아 둘러보았다.
낮에 빙글빙글 돌고 도는 춤을 추셔서 그러신 지 퀴라의 어머니는 코까지 골며 주무시고 퀴라의 아버지는 “나가! 필요 없어” 라며 허공에 대고 손가락질을 하시며 잠꼬대를 한다. 퀴라는 아버지의 무서운 잠꼬대에 얼른 방을 나간다. 퀴라는 살금살금 까치발을 하며 주인집 앞마당에 도착했을 때, 주인집 앞마당 위에 주렁주렁 열린 빨간 여주가 퀴라의 머리로 빙글빙글 왔다 갔다 하는 모습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머, 벌써 익었구나! 참 맛있겠는데...” 퀴라는 입맛을 다시며 그냥 지나치려 하는데 갑자기 윤석이 생각났다.
“저 유주를 하나 따주면 좋겠는데.... 딸까? 말까? 안돼! 우리 것도 아닌데... 그래도, 빨갛게 익은 게 몇 개 되는데 하나만 따도 될거야, 아무도 모르겠지?”
퀴라는 빨갛게 익어 터지려는 유주를 마당돌담 화단 위로 올라가 한 개 뚝! 잡아당겼다.
“아이 이뻐!”
하지만 가슴은 쿵쾅거리며 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그런 가슴을 달래기 위해, 또 주변사람들이 퀴라의 얼굴을 알아볼까 싶어 내달렸다. 그리고 주고 싶은 기쁜 마음으로 또 달렸다. 달리는 동안 주인집아주머니와 아저씨의 무서운 얼굴이 떠올랐다.
“이놈이”
“흑흑흑 흑흑흑”
주인아저씨- 퀴리의 시선에는 주인아저씨의 모습이 무서운 할아버지로 보였다.
그 할아버지 같은 아저씨 - 직업군인으로 근무하시다가 정년이 되어 제대하셨다. 그런 할아버지 같은 아저씨가 퀴라의 어머니보다 더 젊고 예쁜 주인아주머니 하고 살고 계신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아저씨가 주인집아주머니를 혼낼 때마다 “이놈이” 라고 하면 주인집아주머니는 “흑흑흑”하며 우시는 모습을 퀴라는 두세 번 보았다.
또한 주인집 아주머니는 외모만큼이나 멋쟁이시다. 매일같이 고데기로 머리를 치켜올리시고 보랏빛 양장 옷을 입고 나가신다. 그 주인집아주머니도 그 부잣집 나무 대문 안으로 자주 드나드시는 것을 보니 춤을 좋아하시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주인집 아주머니는 종종 퀴라를 불러 집으로 들어오게 했다.
“현주야? 우리 영아랑 놀아줘 아줌마가 식빵에 땅콩잼 발라주고 핫초코도 타 줄게”
“네”
숙제가 많은 날도 퀴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네” 하며 주인집 막내딸인 영아방으로 간다.
“영아야? 오늘은 뭐 하고 놀까?”
“언니? 오늘은 화투해”
“그래”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는 영아는 걷지도 못한다. 팔목도 너무나 가늘어서 손목조차도 힘이 없었다. 화투 칠 힘조차 없는데도 영아는 퀴라와 놀고 싶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아는 친구가 없었다. 퀴라만이 영아와 놀아줄 뿐.
“아이고, 힘들어, 언니? 저거 가져다줘봐”
영아는 영아의 힘이 닿지 않는 곳, 영아의 힘 거리밖의 물건들을 퀴라에게 가져 다 달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퀴라는 처음에는 가져다주며 다시 영아에게 맞춰서 놀아주었다. 하지만 몇 번 그런 일이 반복되면 귀라도 짜증이 났다.
“재미없다, 우리 그냥 하지 말자”
“난 재미있는데...그럼 뭐 해?” 퀴라가 재미없다고 말할 때마다 영아는 아쉬운 듯 퀴라의 눈치를 본다
“그냥 빵이나 핫초코 먹자”
“난 싫은데...”
영아는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놀고 싶을 뿐이다.
“그럼, 내가 놀아줄게,,, 우리 저거 땅콩잼 놀이하자”
“땅콩잼? 먹는 거로 무슨 놀이를 해?”
퀴라는 선반 위에 놓인 땅콩잼을 가져와서는 뚜껑을 열었다.
“영아야? 내가 아픈 환자 할게, 그럼 영아가 의사 선생님이 되어서 이 약을 먹여 주는 거야 알겠지? 영아 의사선생님 하면 좋잖아?”
“응, 그런데 이거 약 아닌데....”
“그냥 약이라고 하는 거야”
“알았어”
퀴라는 누워서 “아야야 아야야” 하며 아픈 시늉을 했다. 그럴 때마다 영아는 휘청거리는 손목으로 땅콩잼을 힘겹게 아주 약간 떠서 퀴라의 입에 넣어줬다.
“우리 아기 약 먹었으니 이제 괜찮지? 에구구구”
“아니, 아니 더 먹어야 해 아야야야, 아야야야”
“알았어”
영아는 힘겨워하는 손가락으로 땅콩잼을 떠서 퀴라의 입속에 또 넣어주었다.
“아우, 영아야? 아픈 환자가 이래서 낫겠어? 약이 너무 적어, 이리 줘봐 내가 시범으로 보여줄게 봐봐”
“응”
퀴라는 밥숟가락으로 한껏 듬뿍 땅콩잼을 떠서 입속에 넣었다. 퀴라의 입속은 달콤하면서 고소한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영아는 시무룩한 표정과 함께 온몸에 힘이 빠져버린 듯 힘겨움이 역력했다.
“언니 나 자야겠어... 힘들어”
“그래? 조금만 더 놀자~”
“싫어 재미없고, 나 힘들어”
영아는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노는 것도 힘에 겨워 조금만 놀다가도 늘 잠을 자야만 했다.
그럴 때면 퀴라는 달콤한 행복을 접어둔 채 집으로 가야만 했다. 주인아주머니도 영아가 피곤해하면 퀴라에게 “이제 그만 집에 가” 라며 볼일 다 봤다는 듯 퀴라를 가라고 했다. 퀴라는 그 붉은 유주의 모습에서 그 주인집 아주머니의 붉은 욕심의 표상인 볼터치가 활활 익어가는 듯해 보였다. 그 순간 퀴라는 유주열매도 아주머니의 볼도 마구 잡아당기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뚝!(유주를 땃다)
“퀴라야? 여기야”
“응 오빠!”
윤석은 미리 나와서 머리를 가다듬고 옷의 먼지를 털며 퀴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른 아지트로 가자”
“응”
윤석과 퀴라는 미순이네 시멘트벽돌공장으로 향했다. 어둠 속에서도 그들의 아지트는 값비싼 회색빛 시멘트들은 캄캄한 밤 달빛아래 그것들만의 특별한 은빛을 토해내며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해 보였다.
“퀴라야 들어와”
“응”
오늘은 퀴라와 윤석 단둘이라 그런지 비좁았던 시멘트벽돌 아지트가 꽤나 넓어 보였다.
“오빠? 이거 먹어!”
퀴라는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유주를 살며시 꺼내 윤석의 코앞에 내밀었다.
“이게 뭐야?”
“유주... 오빠 먹어보라고 가져왔어, 잘 익었지?”
“나 이거 처음 보는데... 신기하게 생겼다. 꼭 공룡 몸에 붙어있는 뾰족뾰족한 지느러미 같은 돌기처럼 생겼네”
윤석은 유주 속 안 알맹이를 한입베어 물고는 다른 한쪽 부분을 퀴라의 입술에 가져다주었다.
“퀴라야 너도 먹어봐 처음 먹어 보는 맛이야 신기한데...”
처음 먹어 보는 유주의 맛을 보며 퀴라도 윤석의 휘둥그레진 눈을 복사라도 하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어디서 났어?”
“응? 이거, 나 먹으라고 우리 엄마가 사 오셨어”
퀴라는 거짓말을 했다. 윤석에게 처음이라고 하는 모든 것들을 모두 주고 싶었다. 그리고 윤석에게 더 큰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을 했다.
“그래? 나는 이런 과일 처음 먹어 보는 것 같아, 하하하 고마워”
“응, 다음에 또 줄게”
“응, 고마워 그 보답으로 ... 퀴라야? 내일 토요일이니까 우리 영화 보러 갈래?”
“영화? 난 영화 본 적 없는데...”
“그래? 그럼 잘됐다. 내가 처음으로 보여줄게. 내일 학교 끝나고 집 앞에 있어 내가 나오면 나 따라와 알았지?”
“응”
퀴라는 뛸 듯이 기분이 좋았다. 처음 보는 영화, 게다가 단둘이 영화를 본다고 하는데 이제껏 영화를 본 적 없었던 퀴라에게는 신기한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윤석이 퀴라에게 처음 겪게 해주는 일 - 둘만의 비밀 같은 신비한 모든 것들을 하게 해 준다니 너무도 기뻐서 내일이 더 빨리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오빠?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여기 정말 달걀귀신 있어? 남자애들이 거짓말이래!”
퀴라는 너무도 궁금해서 정답을 말해 줄 것 같은 윤석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윤석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야! 나와봐! 나오라고, 댤걀귀신? 안 나오면 진짜 없는 거다.” 딱!
지나가던 동네 남자아이들이 돌을 던졌다. 하필 퀴라와 윤석의 아지트에 맞았다.
“안 나온다 이거지? 어디 맛 좀 봐”
아이들은 갑자기 주변에 있는 시멘트벽돌 조각들을 들어 올려 퀴라와 윤석이 있는 아지트에 던져졌다.
그리고 “퍽, 딱 “ 하는 소리와 함께 퀴라와 윤석의 아지트 한쪽 벽 모퉁이가 부서졌다.
“오빠? 어떻게 해? 분명히 나 괴롭히던 애들 같은데, 이러다가는 우리 아지트도 무너질 것 같아!”
“그래 그 못된 애들인 것 같다. 우리 아직은 괜찮아, 조금만 기다려보자”
하지만 아이들은 그만두지 않았고 계속 던져지는 시멘트벽돌 때문에 윤석과 퀴라의 아지트는 위험해져 갔다.
“이 히히히히히”, ”이히히히히 “, ”으헤헤헤헤 “
퀴라는 고개를 숙이고 윤석의 어깨에 기대어 있는 동안 윤석은 괴상한 소리를 냈다.
“오빠? 무서워요!”
“괜찮아, 달걀귀신이 납신 거라 그래”
“이히히히히, 이히히히히, 꾸룩 꾸룩”
“으헤헤헤헤, 이히히히히, 꾸룩 꾸룩”
윤석은 코와 입을 잡고는 자꾸만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그런데 그 순간 윤석의 소리를 들은 아이들이 “아~ 나타났다 도망가자” 라고 소리치며 정신없이 도망을 쳤다. 퀴라와 윤석은 아지트 벽돌 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아지트 근처에는 급하게 도망치느라 신발도 하나 벗겨져 있었고 가방도 하나 나뒹굴고 있었다. 윤석은 살며시 아지트에서 나와 아이들이 있었던 자리에서 신발 한 짝과 가방을 들고 와서는 가방에 들어 있는 공책들을 펼쳐 보았다.
“이거 기철이 가방이구나! 이놈 어디 혼나봐라”
윤석은 공책 한 면에 연필로 무언가를 적었다.
“기철아? 앞으로 또 벽돌 던지면 혼날 줄 알아! 기철이 그리고 같이 있었던 아이들 모두 매일 여기를 지나갈 때마다 내가 쫓아다닐까? 앞으로 여자애들 괴롭히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면 다시는 너희들한테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또 그런 짓을 하면 더 큰 벌을 줄 것이다. 기철이는 명심하거라”
윤석은 신기하다는 듯 지켜보는 퀴라에게 “이제 됐어, 오늘 할 일 끝!” 라며 기지개를 켰다.
“오빠? 애들이 여기 올 줄 알고 있었어?”
“그럼”
“대단하다 오빠”
“히히히히 뭘.... 이제 집에 가서 푹 자고 낼 보자”
퀴라는 연실 하품을 하는 윤석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쉽지만 내일을 위해 아지트를 나와 집으로 향해 갔다.
윤석은 퀴라의 집 앞에서 퀴라에게 인사를 했다.
“퀴라야? 오늘 그거, 뭐지? 그 과일 고마웠어... 내일 보자!”
“응 오빠 나도 고마웠어, 오빠도 잘 자”
퀴라는 한참을 지켜보는 윤석을 뒤로한 채 약간 열어둔 철문을 살짝 열고 들어갔다.
윤석은 퀴라가 보이지 않자 들고 온 가방과 신발을 기철이네 집 대문 안쪽에 두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래서였을까! 얼마동안 정말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다시는 아지트에 벽돌을 던지지 않았고 그곳을 지날 때마다 조심조심 기도하면서 아지트를 지나갔다.
퀴라에게도 예전처럼 짓궂은 장난은 하지 않았다. 단지 퀴라가 학교에 등교하거나 하굣길에 뒷따라 오면서 남자아이들이 조용히 뭐라 뭐라 하는 듯해 보였다.
6
다음날 민석이가 퀴라가 앉아있는 뒤를 돌아다보며 말을 건넸다.
“우유표 하나 더 줄래?”
“우유표?”
“응 아직 신청을 못해서 그래, 우유는 먹고 싶은데...”
“그래? 알았어.... 여기 두장”
“아싸”
퀴라에게 우유표를 달라는 민석은 퀴라가 주는 우유표 두 장을 받자마자 교무실로 우유를 가지러 가는지 우쭐대며 나가버렸다.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퀴라의 눈빛도 마주치지 않은 채 후다닥 나가는 민석의 모습에 퀴라는 잠시 우울해졌다. 그리고 퀴라는 “나 왜 이러지? 이 우유표 돈 주고 산 건데... 엄마가 아시면 혼날 텐데... 그리고 한 달 치인데, 나 앞으로 며칠은 우유를 먹지 못하잖아”
퀴라는 처음 민석에게 우유표를 주었을 때 그저 말을 걸어준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걱정이 되어갔다. 하지만 어느새 퀴라의 손에는 우유표 두 장이 민석에게 주어버렸고 다시 되돌려달라고 하기 전에 벌써 민석은 나가버렸다.
우유표를 건네주고 있었던 그 순간 이성과 감정이 제대로 분리가 되지 않았던 퀴라에게 민석의 얼굴에 비친 빠알간 하트풍선 모습이 보였고 우유표가 마치 큐피트의 화살이 되는듯 마구마구 퀴라의 심장을 찔러댔을지도.
후회.
퀴라에게 남아있던 멋지고 씩씩한 민석의 모습은 이제 돌돌 말은 화살촉 같은 우유표 속으로 날아가버리고 가볍고 얄팍한 속임수.
“용용 죽겠지~ 우유표 하나가 얼마인데 그걸 두 장이나 주냐? 바보” 퀴라의 귓전에 울리는 바보 소리가 민석의 떠나간 자리만치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진동수처럼 윙윙 앵앵 울려 퍼지는 듯했다.
스테이플러로 묶어 놓은 몇 장의 남은 우유표를 만지작 거리며 퀴라는 가방을 챙긴다.
담임선생님의 종례가 끝나고 퀴라는 터덜터덜 시멘트 바닥을 구멍이라도 내듯 걷어차며 힘없이 걸어간다.
퀴라는 큰 도로 옆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만한 인도를 걷다가 무뚝뚝한 표정의 딱딱한 시멘트 인도가 맘에 들지 않은 듯 풀숲 우거진 샛길로 들어섰다.
풀밭 그곳에 개망초꽃들이 하늘하늘 피어있는 모습에 “아 계란꽃? 이거 많이 따다가 미순이랑 소꿉놀이 하고 싶다. 정말 계란 같다” 한 주먹 따서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아참 오늘 윤석오빠랑 영화 보러 가기로 했지? 잊을 뻔했잖아, 히히” 퀴라는 윤석과 영화 보러 갈 생각에 흐뭇해하며 다시 폴짝폴짝 발짝 뛰기를 하며 집을 향해 갔다.
집에 도착해 책가방을 던져두고는 대문 앞에서 윤석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주머니 속 뭉개진 계란꽃을 만지작거리며 대문 앞에 한참을 서 있었을 무렵 조용히 퀴라의 귓가에 들려오는 윤석의 목소리에 퀴라는 고개를 돌렸다.
“퀴~라~야?” 조용히 부르는 소리였지만 퀴라는 냅다 알아듣고는 퀴라도 조용히 대답을 했다.
“응 알았어”
윤석의 손짓과 눈짓에 퀴라는 조금 떨어진 발걸음으로 윤석을 뒤 따라갔다. 좁은 골목길안 동네를 빠져나와 시장 안으로 들어섰을 때 미리 앞서가던 윤석은 퀴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 왔어, 저기 저기 보이지 제일극장?”
“응”
“들어가자”
영화관 작은 입구 양옆으로 오른쪽에는 과일 좌판대와 왼쪽에는 속옷가게 좌판대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퀴라는 그곳이 영화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엄마와 종종 시장을 다녔었던 퀴라는 그곳을 여러 번 지나쳐 갔었는데도, 과일도 속옷도 -그 양옆 좌판대에서 고르고 흥정하는 엄마를 보았으면서도 그 가운데가 어두컴컴한 그곳이 영화관이었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퀴라야 여기가 극장이야”
“아, 여기구나! 나 여기 과일 가게랑 옷가게는 와봤는데 여기가 극장인 줄 몰랐어, 우와 미로 같다”
목을 치켜 올려다보니 제일극장이라는 간판이 비스듬하게 퀴라를 환영하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윤석은 영화관 입구에서 이순신장군 얼굴이 그려진 500원 지폐 두장 - 이순신 장군은 1970년 11월 100원짜리 동전에 처음 등장한 이후 1973년 9월 500원짜리 지폐의 초상 인물이 됐다.- 을 내고 나서 퀴라의 손을 꼭 잡고 들어갔다. 좁은 입구 어두컴컴한 곳에 저승사자 같은 남자 한분이 표를 받아 들며 암막커튼을 열어주었다. 윤석은 퀴라의 손을 꼭 잡고 자리를 찾아갔다. 영화관 안을 둘러본 퀴라의 시선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윤석과 퀴라는 앞에서 세 번째 줄 가운데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어둠이 익숙해질 무렵 윤석과 퀴라의 뒤에 남녀 두 커플 정도가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오빠? 여기 너무 컴컴해”
“하하하하 원래 그런 거야 컴컴해야 영화가 잘 보이지”
“그렇구나!”
잠시 후 영화가 시작되었고 윤석은 꼿꼿이 앉아 영화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퀴라는 안절부절, 시선을 여기저기 옮기며 영화관 주변을 구경하기에 바빴다. 그도 그럴것이 윤석이 선택한 영화는 그 당시 유행하던 쿵후영화였다.
윤석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쿵후영화를 처음 보는 퀴라에게는 이해하지 못할 내용들이 많았고 왜 저렇게 우스운 모습으로 싸워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왜? 재미없어? ”
두리번거리며 움직이는 퀴라의 모습을 눈치챘는지 윤석은 조용히 퀴라의 귓가에 대고 말을 했다.
“아니, 그냥... 처음이라서....”
퀴라는 윤석에게 미안해하며 미소를 지었다. 윤석이 좋아하는 영화를 방해한 듯하여 퀴라는 윤석이 잘 볼 수 있도록 다시 집중하며 스크린을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그 순간 윤석은 퀴라에게 미소를 지으며 퀴라의 손을 잡았다.
“이게 뭐야?”
“응?”
윤석은 퀴라의 손을 잡았을 때 느껴지는 거칠함과 손등 위에 만져지는 무언가를 조심히 매만지며 퀴라에게 조용히 물었다.
“응 그건 사마귀 히히히”
“그래? 나쁜 사마귀네, 내가 없애줄게.... 없어져라 얏”
“하하하하”
“쉿!”
퀴라는 스크린에 비친 쿵후영화보다 윤석의 재미난 장난에 깔깔깔 소리 내며 웃었다.
그 소리에 윤석은 뒤를 돌아다보며 검지 손가락을 쉿! 소리와 함께 퀴라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 순간 퀴라는 윤석의 커다란 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잠시 영화를 보는 척하다가 윤석의 코도 만지작거리고 손도 만지작거리며 “쿡쿡쿡” 혼자서 웃기도 했다.
하지만 윤석은 쿵후 영화에 넋이 나간 듯 시선은 스크린을 향해있었고 커다란 손은 퀴라의 손등 사마귀를 만지작거리며 쿵후영화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1970년 후반 그 당시 학생들이 영화를 보러 다닐 정도라면, 시골에서 종종 용돈을 받고 사는 윤석의 집안정도 살만했어야 했다. 윤석도 계급이 높은 군인아버지와 선생님인 어머니 덕분에 형편이 좋아 영화를 볼 수 있었겠지만 500원 지폐의 가치로 보자면 어떤 영화이든 열심히 봐줘야만 했었고 영화 역시 남성들의 매력을 끄는 무술이 담긴- 여느 또래 남자들도 좋아하는 무술영화였기에 윤석도 당연히 좋아하고 열심히 보고 있었다.
하지만 스크린 속 장면을 보는 퀴라의 머릿속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마치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이 장난치며 싸우는 장면만 그려졌을 뿐 그 영화관에서는 윤석의 따뜻한 손길과 어두컴컴한 곳에서 더욱더 빛나던 윤석의 하얀 얼굴만 뇌리에 기억되었다.
한동안 퀴라에게는 그렇게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영화가 끝이 났다. 끝나자마자 윤석과 퀴라는 또다시 꼴뚜기튀김을 먹기 위해 시장 안을 다정히 걸었다.
“퀴라야? 대단하지 않니? 휙휙~ 어때? 나도 쿵후 영화 속 주인공 같지 않아?”
“호호호호호 오빠? 너무 웃겨”
“내가 장풍으로 너의 사마귀도 날려주마~~ 휙~~~”
“에이, 안되잖아”
“히히히히, 좀 더 열심히 훈련하고 해 줄게~ ”
윤석과 퀴라는 시장 안 튀김집에 도착했고 안으로 들어가 그날 앉았던 그 자리에 다시 앉았다.
“꼴뚜기 튀김 주세요”
“어머, 또 왔구나!”
“네. 히히히 “
반겨주시는 주인아주머니말씀에 윤석은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둘이 마주 앉아있으려니 좀 어색한 듯 식탁 위에 자리 잡은 나무젓가락 통만 만지작거리더니 윤석은 퀴라에게 나무젓가락을 반듯하게 쪼개어 주었다. 잠시 뒤 주인아주머니가 꼴뚜기튀김을 가지고 오셨다.
“맛있게 먹어”
“네 감사합니다”
“퀴라야 맛있게 먹어”
“응 오빠도...”
퀴라는 꼴뚜기 튀김을 한 마리, 두 마리, 열심히 먹었다.
처음 본 영화, 게다가 이성과 처음 단둘이 보았던 영화였기에 퀴라에게는 잊지 못할, 잊을 수 없는 영화임에는 틀림없었다.
“다음에 또 보여줄게, 다음에는 퀴라가 좋아하는 영화로 보자”
“응, 좋아 호호호호”
윤석은 퀴라의 흥미를 끌지 못한 영화라는 것을 느꼈던지 미안한 마음에 꼴뚜기튀김을 퀴라 앞에 많이 쌓아주었다.
“그 대신 꼴뚜기튀김 먹고 싶은 대로 많이 먹어”
“응, 많이 먹고 있어”
퀴라와 윤석의 입술은 마치 벌떼들이 열심히 꿀을 발라놓은 듯 반질반질 빛이 났다.
“배부르다. 벌써 어두워졌네.. 집에 가자”
“응 오빠”
금세 어두워진 밤하늘을 바라다보며 윤석과 퀴라는 천천히 시장 안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퀴라야? 저기 저 별 좀 봐, 저게 무슨 별인줄 알아?”
“몰라, 근데 참 이쁘다, 오빠? 저게 무슨 별인데?”
“여름철 밤하늘에 가장 빛나는 별 저 별 이름을 퀴라가 알까?”
“음.... 몰라”
“지금쯤 가장 밝게 빛나는 하얀 별이 바로 거문고자리의 으뜸별 직녀별이야, 다른 이름으로 베가라고도 해, 거문고자리를 보면 직녀별을 꼭짓점으로 작은 삼각형이 있고, 그 남쪽으로 평행사변형이 이어져 있어, 봐봐 저기, 보여?”
“어디?”
“내손 끝을 따라 봐 봐, 그리고 직녀별의 남쪽으로 은하수 건너편에 역시 1등성인 견우가 보이지?”
“아... 저 별들이 그럼 그 유명한 직녀와 견우야?”
“그렇지, 북동쪽으로는 두 별과 직각삼각형을 이루는 고니자리의 1등성 데네브가 보이고, 이별들을 가리켜 '여름철의 대삼각형' 이라고 해, 그러면 여름철 별을 찾는 길잡이가 되지 난 별자리를 찾을 때마다 내가 마치 밤하늘의 주인이 된 것 같아 너무 행복해. 가끔 마당에 나와서 돗자리 펴놓고 누워서 밤하늘의 별과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 어때? 신기하지?”
“응 오빠! 나도 그러고 싶다”
퀴라는 고개만 올려다보느라 목이 아팠다. 그리고 그 순간 윤석이 마당에 누워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바라다보는 모습이 퀴리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며, 윤석의 옆에 누워 같은 별자리 여행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견우와 직녀! 오빠? 둘이 헤어지잖아? 일 년에 한 번만 만나잖아, 그럼 슬픈 별이네”
“하하하하 하하하하 그래도 만나잖아, 무척 사랑하는데....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사는 것도 행복 아닐까?”
“그런가?”
퀴라는 윤석의 말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마치 동화된 듯 둘은 어둠 속 별을 바라보며 시장 안을 서서히 빠져나왔다.
나란히 걸으며 간간히 부딪히는 손등이 또한 견우직녀의 별빛처럼 반짝이며 빛을 내고 있었다.
우연히라도 아니 그냥 퀴라의 손을 잡아주면 추억의 액자 속으로 길이 남아 버릴 것 같은 기분이 퀴라의 심장을 마구마구 요동치게 하며 방망이질을 해댔다.
하지만 둘은 손을 잡을 수 없었다. 단지 서로 고개를 돌려 서로의 반대편 주변 상가들만 바라보며 낯선 듯 갸우뚱거리며 지나칠 뿐.
“퀴라야? 잘 가”
“응 오빠도 잘가”
퀴라가 양철대문을 열며 집으로 들어간 후 윤석도 한달음에 집으로 들어갔다.
퀴라는 다시 양철대문을 열고는 빼꼼히 윤석이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다보았다. 금세 열렸다 닫히는 윤석의 집 대문이 “이제 그만 집으로 들어가” 라며 인사라도 하는듯했다. 그 말을 알아들은 듯 퀴라도 조용히 주인집 앞마당을 지나쳐 미닫이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현주야? 어디를 갔다 이제 오니?”
“놀다가 그만...”
“너희 아버지 아직 안 오셨으니 망정이지 이렇게 늦도록 쏘댕기는 거 알면 큰일 날 것 같아, 앞으로 일찍 댕겨 알겠지?”
“네...”
그날 퀴라의 아버지는 늦으셨다.
“저녁은?”
“먹었어요”
“너는 맨날 누가 밥을 주냐? 거짓말이면 밥 줄 테니 먹고 자”
“아닌데... 먹었어요, 맛있는 거”
“그래? 그럼 어서 이 닦고 세수하고 발 닦고 잘준비햐”
“네...”
그날 밤 퀴라는 잠이 오지 않았다. 방바닥에 누워 있으려니 작은 창문 속으로 쏟아지는 별빛들이 놀려대는 듯했다.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깜박거리며 놀려대는 소리가 퀴라의 행복한 생각들 속에서 자꾸만 해방을 놓았다.
“좋다, 오빠가 좋다...”
그리고 스르르 스르르, 울렁울렁 출렁이던 은하수도 어느새 잔잔해지며 시기하는 별들조차도 퀴라와 함께 잠이 들었다.
윤석과 영화를 보고 난 후 한 달쯤 지났을까, 퀴라는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았다.
“엄마 없는 하늘아래”
퀴라 또래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퀴라는 영화 속 장면 내용들이 가슴에 콕콕 와닿았다. 지난 영화 쿵후영화의 기억은 지우개가 되어버렸고 스크린 속에는 윤석과 퀴라가 주인공이었다는 사실만 남았을 뿐.
이제는 퀴라가 주인공이 되어버린 듯 엄마 없는 하늘아래라는 영화의 줄거리만 남아있다.
엄마 없는 하늘아래.... 줄거리
13세의 소년 김영출, 엄마가 막내 동생 철호를 낳자마자 병으로 죽고,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뇌를 다친 것이 재발되어 정신 착란증을 일으켜 집안은 엉망진창이 된다. 이렇게 되자 김영출은 동생 철호를 업고 다니며 학교에 나가고 동생들도 자기 힘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동네 사람들은 이들의 딱한 처지에 영출이네 형제를 고아원으로 보낼 것을 합의하고 동장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고아원으로 보내기 위해 영출 형제와 기차를 타고 떠나지만 아버지와 어린 동생과 떨어져 살 수 없다고 느낀 영출과 영철은 다시 동네로 돌아온다.
그 읍내영화관 - 윤석과 처음 영화를 보았던 영화관에서 퀴라는 “엄마 없는 하늘아래”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고 집에 가서도 가슴 아픈 내용을 이야기하느라 그날 하루 종일 슬픈 영화 속 주인공이 되었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영화관에 처음 가본 것이 아니라고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