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라의 전성기 5
아지트의 소멸과 수상한 아저씨
7
아지트.
아지트가 없어졌다.
쉬는 시간 퀴라를 찾아온 윤석, 헉헉대며 윤석이 지나가던 현주의 같은반 친구에게 퀴라를 불러낸다.
“현주야? 너 찾아 저 오빠가... 누구니?”
“응? 누가 나를 찾아?”
“저기 저기 봐봐”
영숙이가 복도 유리창을 가리키며 복도 유리창 사이사이로 얼핏 보이는 윤석을 가리켰다.
“어머” 퀴라는 윤석의 모습에 놀라 후다닥 뛰어나갔다.
“어머, 오빠? 여기 왜 왔어?”
“응 나 얼른 가야 해 저기...”윤석은 빨리 말을 하고 교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었지만 급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퀴라야 퀴라야? 큰일 났어 우리의 아지트를 미순이 아버지가 부숴버렸어, 우리 아지트 벽돌들이 다 부서졌어, 이제 우리 아지트 다시 만들어야 될 것 같아”
“오빠 정말? 어떡해?”
“할 수 없지 뭐,퀴라야 괜찮아, 연기랑 나랑 또다시 만들면 되지 뭐... 그래서 집에가다가 놀랄까봐 미리 전해주러 왔어”
“오빠? 나도 같이 만들어”
“아냐, 우리가 밤에 몰래 만들어야 해, 전에 것 보다 더 멋지게 만들어 놓을 테니 나중에 완성되면 그때 같이 보러 가자... 그럼 오빠 갈게”
“알았어”
윤석은 퀴라의 교실과 멀리 떨어진 윤석의 교실에 후다닥 뛰어갔다. 그리고 바로 쉬는 시간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퀴라는 아지트가 없어졌다는 말에 미순이의 아버지가 너무도 미워졌다. 퀴라는 공부시간 내내 아지트 상황을 보러 갈 생각에 공부가 되지 않았다.
결국 퀴라는 그날 수업이 끝나고 가장 먼저 미순이네 집으로 향해 갔다. 미순이네 집 입구 시멘트벽돌들이 정말로 보이지 않았다. 퀴라는 순간 눈물이 날 정도로 마음이 아파왔다. 그리고 씩씩거리며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런 마음으로 미순이를 불렀다.
“미순아? 놀자! 미순아 놀자!”
“미순이 아직 학교에서 안 왔는데, 이따가 다시 와라”
방 안에서 미순이의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참 내가 제일 먼저 뛰어 온 거지, 그럼 기다리자”
퀴라는 아지트가 있던 자리를 서성이며 여기저기 모래성을 바라보았다.
“그래 저 모래로 시멘트 또 만들면 되지 않나? 그러면 그 시멘트로 윤석, 연기오빠가 우리 아지트 다시 만들면 되는 거지, 그래 맞아 히히히”
퀴라는 순간 씩씩거리며 화가 났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모래성들을 한참 둘러보고 있는데 뒤에서 미순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현주지? 너 왜 여기 있어?”
“어, 너랑 놀라고?”
“나랑? 너 엄청 일찍 왔구나! 알았어... 책가방 집에 놓고 올게 기다려”
“응”
퀴라는 미순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순이의 아버지를 상상해 보았다.
“얼굴은 도깨비얼굴? 손은 무지커서 시멘트벽돌을 번쩍번쩍 들고 다니는 무서운 미순이 아빠?”
얼굴을 찡그리며 서있는 퀴라에게 미순이가 다가왔다.
“너 왜 이렇게 빨리 왔니? 그리고 가방도 그냥 메고 있고 너 집에 안 갔었어?”
“미순아? 너네 아빠 많이 무서워?”
“뭐라고? 우리 아빠? 아니 안 무서운데...”
“그래? 다행이다 휴~”
“왜? 우리 아빠가 왜?”
“아냐, 그냥... 우리 저기 모래성에 올라가서 놀자”
“안돼! 우리 아빠가 오늘부터 모래 위에 올라가지 말랬어”
“왜?”
퀴라는 미순이를 만나면 모래성 위 움푹 파인 곳에 올라가기 위해 만나는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이제 올라가지 말라고 했다니, 퀴라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오늘부터 아빠가 저 모래를 전부다 시멘트 만드신대”
“저걸 다?”
“응, 우리 아빠 엄청 부자 될 거래, 부잣집 아저씨들이 많이 오셔서는 벽돌을 많이 만들어 달라고 했나 봐 여기 봐봐 벽돌 만든 거 거의 다 팔려서 없잖아”
“그래? 그럼... 우리 어디서 놀지?”
“그냥 나랑 우리 집에서 인형놀이 하자”
퀴라는 인형에는 관심이 없었던 터라 그냥 집에 가려고 했지만 그다음 일 - 아지트를 만들려면 벽돌이 필요한데, 그 벽돌은 어떻게 구하나 싶어졌다 그래서 더 묻고 싶고 알고 싶은 마음에 미순이와 인형놀이를 했다.
“미순아? 그러면 시멘트벽돌 만들면 그거 전부다 부잣집 사람들이 사가면 다 없어져?”
“아니, 아마도 못생기고 잘못된 벽돌은 남아있을 거야”
“그래? 휴~ 잘됐다”
“왜? 그게 왜 잘됐어? 너는 참 이상하다. 정말 못됐다. 너 그러면 안 되는 거지, 우리 아빠 벽돌은 잘 만들어질 거라서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는 않을 거야”
미순이는 퀴라의 말에 화가 난 듯 톡 쏘아 댔다.
“나 이제 그만 놀래 너 집에 가”
퀴라는 미순이가 그만 놀자며 집에 가라고 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아지트를 만들 수 있는 벽돌이 다시 생길 수 있다는 말에 미소가 지어졌고 한편으로는 부잣집 아저씨들이 벽돌을 전부 사간다는 말에 도대체 그 부잣집 아저씨들이 누굴까? 궁금해졌다.
퀴라는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며 집으로 향해갔다. 퀴라가 흥얼거리며 방문을 열자마자 퀴라의 아버지는 퀴라에게 소리를 치셨다
“계집아이가 어딜 쏘다니고 다녀?”
둥그런 양은밥상 위에 코를 찌를 듯한 알코올냄새와 김치냄새가 풍겨져 나오더니 퀴라의 아버지는 쇠젓가락을 “탁 “내려치며 퀴라를 쏘아보았다.
“아버지? 오늘 왜 일찍 오셨어요?”
“왜? 나는 일찍 오면 안 되냐? 그냥 왔다”
“네...”
“너희 엄마 대낮에 뭐 하니? 자세히 말해봐 거짓말하면 뒤지게 혼날 줄 알아”
하필이면 퀴라의 아버지가 일찍 들이닥친 그날 퀴라의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동생 돌보는데요”
“그거 말고 어디를 쏘댕 기는지 말해봐”
아버지의 쇠젓가락이 양은밥상 위에 내동댕이치는 모습에 퀴라는 겁에 질려 말을 하고 말았다.
“엄마 나무대문집 거기서 춤춰요... 어떤 남자랑 꼭 껴안고..”
“뭐? 그럼 그렇지!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이런”
퀴라의 아버지는 하얀 러닝셔츠바람으로 한쪽발엔 구두를 다른 한쪽 발엔 슬리퍼를 신고 기우뚱거리며 문을 열어 놓고는 달려가셨다. 퀴라는 그 순간 퀴라의 아버지가 던져버린 젓가락을 집어 양은 밥상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날밤 퀴라의 부모님은 퀴라의 말 한마디에 밥상이 찌그러지고 장롱문이 부서질 정도로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엄마? 괜찮아? 여기 멍들었는데...”
“어이구! 너 때문에 엄마가 이렇게 됐잖아! 엄마가 언제 그 아저씨랑 꼭 껴안았니?”
“...............”
“그건 사교춤이라고 다들 배우는 거야 그분은 선생님이고, 내가 말을 말아야지 어이구, 동네창피하고...
하여간 현주 너는 늘 그 입이 문제여 아이고 내 팔자야”
퀴라는 그때서야 말을 잘못했다는 생각에 조용히 방을 나갔다.
골목길 안을 왔다 갔다 서너 번 배회하는 동안 그 골목길에는 어느 누구도 지나가지 않았다. 다만 때맞춰 지나가는 기차소리만 “칙칙폭폭 칙칙폭폭 ” 퀴라의 귀를 따갑게 울려댔다.
퀴라는 윤석오빠라도 왔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윤석은 보이지 않았고 그저 윤석의 초록색 대문만이 말없이 껑 닫혀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다시 집으로 들어갈까! 아니면 순남이 언니네집에라도 갈까? 생각하던 중 누군가 퀴라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 요기 앞집에 세 들어 사는 현주지?”
“네...”
퀴라의 앞집 - 골목길안 마주 보이는 앞집이었지만 유난히 집터가 낮은 집으로 퀴라와 동갑인 귀옥이네 집이었다. 그 아저씨는 귀옥이네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아저씨였다. 푹 꺼진 마당을 들어서기 전에 허드레 나무로 만들어진 대문을 열어야 했다. 그 문을 열고 한발 내딛을라 치면 몸이 앞으로 넘어질듯한 높이로 잘못하다가는 앞으로 고꾸라져 넘어지기 쉬운 곳이었다.
그리고 그 마당을 지나면 오래된 나무집, 그리 이쁘지 않은 검으튀튀한 대청마루가 보였다. 그 집이 귀옥이네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귀옥이네 집 오른편으로 방하나에 불을 땔 수 있는 아궁이가 있는 부엌처럼 생긴 곳에 흙으로 만든 작은 창고 같은 곳이 있었는데 그 방 한편이 바로 그 아저씨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이었다.
직장을 다니는듯한 아저씨는 아닌 듯 운동복만 입고 다녔고 외출하는 모습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그런 아저씨를 본 순간 퀴라는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반가움이 밀려왔다.
이 적막한 골목길안에 퀴라와 같은 외로운 사람이 또 있었고 퀴라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랄까! “내 이름을 어찌 알았지?”라는 의문조차 행복했다.
잠시 기쁨에서 빠져나와 퀴라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삐죽삐죽 밤송이 같은 머리에 약간 희긋한 흰머리가 여기저기 보이고 키는 작고 바지는 무릎 나온 퍼런색 운동복에 윗도리는 그냥 처음 본 특이한 미색의 러닝을 입고 구부정하게 퀴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 러닝이 처음에는 흰색 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쪽 손에는 구멍가게에서 사 온 커다란 소주 한 병이 들려져 있었고 발을 보니 꼬질꼬질한 발가락 위로 끼어 있는 슬리퍼가 애달프게 발목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듯했다.
“너 아저씨 집에 놀러 올래? 만화책도 많아, 우리 주인집 귀옥이가 너랑 같은 친구지?”
“네, 귀옥이랑은 같은 반이 아니고 그냥 나이가 같아요.”
“그래 그럼 친구야, 너도 우리 집에 귀옥이랑 같이 놀러 와”
퀴라는 너무 반가웠다. 아무도 퀴라에게 놀러 오라고 한 적 없었던 골목길안 어른들... 그리 친하지도 않은 아저씨가 놀러 와서 만화책을 보라고 하는 말에 퀴라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고였고 아저씨가 고맙게 느껴졌다. 퀴라는 아저씨가 겅중겅중 귀옥이네 집 한쪽에 딸린 셋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후 흐뭇한 표정으로 귀옥이네 집으로 들어갔다.
“귀옥아? 귀옥아?”
“누구야?”
“나 현주”
“응 들어와”
귀옥이는 아기를 업고 있었다. 집에는 귀옥이와 귀옥이의 동생들 네 명이 옹기종기 모여 온 집안을 헤집고 있었다.
귀옥이는 아직 어린 막내 동생을 업고 있었고 동생들은 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놀고 있었다. 그러다가 서로 부딪혀 싸우고 울고, 그런 동생들을 귀옥이는 말리고, 여기저기 모든 것들이 시끄러웠다. 방안도 어두컴컴한 것이 여기저기 솜이불이 내 뒹굴고 먹다 남은 반찬들이 상위에서 파리들의 배를 불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귀옥아?”
“왜?”
“옆방에 살고 있는 아저씨네 집 가봤어?”
“그럼 가봤지. 재미있는 만화책도 많아서 책 많이 봤어”
“그래? 그럼 나중에 같이 놀러 갈래? 아저씨가 너랑 놀러 오래”
“그래, 그러면 네가 내 동생 업어줄래? 나 너무 힘들다”
“그래! 내가 업어줄게”
퀴라는 보답이라도 하듯 귀옥이의 동생을 업고 왔다 갔다 춤을 추듯 어울렀다.
“아저씨가 너한테 놀러 오래?”
“응, 좀 전에 골목길안에서 만났어, 너랑 같이 놀러 오래”
“그래? 그러면 내가 바쁘지 않은 날 가자”
“그래, 그리고 나 여기 좀 더 여기 있다 가도 되지?”
“응, 그래 내 동생들 잘 돌봐주면 오래 있어도 돼”
퀴라는 다행이다 싶었다. 비록 지저분한 방이었지만 그래도 퀴라가 잠시 부모님을 피해 있을 만한 곳이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랄까! 아버지가 주무시면 가야지, 조금만 있다 들어가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은 좀처럼 빨리 지나가지 않았다.
동생들을 돌보는 일이 너무 힘들었던 탓일까! 어둑어둑 저녁놀이 내려앉을 때 퀴라는 귀옥이의 동생들을 재워두고 귀옥이네 집을 나왔다.
“나 갈게”
“응 고마워 잘 가”
주인집 양철대문을 조심스레 열고는 살금살금 앞마당을 지나쳐갔다.
“현주야?”
“아 깜짝”
“놀랬어? 호호호호 호호호”
주인집 아주머니가 살금살금 들어가는 퀴라를 보며 퀴라를 불러 세웠다.
“집에 무슨 일 있니?”
“네?”
“깨지는 소리도 나고 누가 우는소리도 나고, 내가 가보려다가 안 갔는데...”
“네, 엄마아빠 싸우셨어요”
“그래! 왜?”
주인아주머니는 커다란 눈을 더 휘둥그레 추켜올리며 퀴라에게서 더욱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춤, 춤요”
“뭐? 춤 들켰어? 남자가 쪼잔하게 그런 일로 여자를 패냐? 우리 아저씨 같이 너그러운 사람 없구나 쯧쯧쯧”
주인아주머니는 아저씨를 자랑하듯 퀴라의 아버지에 대해 못마땅한 말과 행동을 여실히 보였다.
“저, 그럼 들어가 볼게요”
“그래, 집에 있기 나쁘면 우리 집에 와 영아랑 놀아 알았지?”
“네”
퀴라는 듣는 둥 마는 둥 집으로 들어갔다.
조용해진 퀴라의 집 미닫이문을 슬며시 열고 퀴라는 잠시 밖에 서 있었다.
“어서 들어와 너희 아버지 없어”
퀴라의 어머니는 누워계셨다.
“엄마! 괜찮아요?”
“괜찮아 보이냐? 여기 여기 멍 좀 봐”
“...........”
퀴라는 죄송한 마음에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부엌으로 나가 날계란을 들고 들어와 엄마의 눈두덩이를 비벼댔다. 일찍 잠을 자야만 지옥 같은 하루가 지나갈 것 같아 좋아하는 동화책도 읽지 않고 초저녁부터 잠을 잤다.
“뻐꾹! 뻐꾹, 퀴라야?” “뻐꾹! 뻐꾹, 퀴라야?”
두 시간이 지났을 무렵 퀴라의 귓가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듣는 오빠의 반가운 목소리에 퀴라는 꿈속이라 생각하며 눈을 뜨지 않았다.
꿈속에서라도 윤석을 더 오래 만나고 싶었기에 퀴라는 허우적대며 윤석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얼굴을 확인하려고 내달렸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 들려오는 “뻐꾹뻐꾹,,, 퀴라,,,,”소리에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서 퀴라는 벌떡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어디가?”
“화... 장... 실”
언제 들어오셨는지 퀴라의 아버지가 취기에 퀴라에게 한마디 던지다 다시 코를 골며 주무셨다.
퀴라는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기며 방안을 미끄러지듯 빠져나왔다.
방문을 지나서는 땅 위를 날으듯 퀴라의 발은 순식간에 양철대문 앞에 서있었다.
“오빠?”
“응, 여기야, 우리 아지트 완성 됐어 가보자”
“우와~ 정말?”
윤석은 퀴라의 손을 잡고 내달렸다. 컴컴한 골목길안에 수십 개의 가로등이 비치듯 윤석의 얼굴과 퀴라의 얼굴은 더욱더 밝게 빛이 났다.
“어때? 더 근사하지? 너한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었어”
“우와 멋지다. 오빠? 그런데 벽돌이 어디서 났어?”
“오늘 낮에 학교에서 오다 봤는데 미순이네 아버지가 벽돌을 만들어 놓았더라고 그래서 저녁 먹자마자 연기랑 같이 와서 지금까지 만들었어. 연기는 너무 피곤하다고 집에 갔고 나는 퀴라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헤헤헤헤”
“정말? 우와 신난다. 그런데 또 부수면 어떻게 해? 지금도 시멘트를 많이 만들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걱정 마 또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그날따라 더욱더 시멘트공장 안이 넓어 보였다.
커다란 괴물들의 가지런한 회색빛 이빨에 충치벌레들의 습격으로 인한 전쟁으로 괴물의 이빨이 여기저기 숭숭 빠져나간 듯 공장 안은 아픈 듯 허전한 듯 썰렁했다.
한참을 둘러보다 윤석은 퀴라에게 조심스레 말을 했다.
“퀴라야 이제 저 벽돌조차 없어지면 우리 아지트도 금방 발견될 것 같아, 어쩌면 또 우리 아지트가 없어질 테고...”
“그래? 그럼 안되는데... 그럼 오빠? 우리 아지트 없어지기 전에 매일 여기 와서 대책회의 하자”
“그래, 그럼 내일도 저녁 먹고 여기서 보자”
“응”
퀴라와 윤석은 약속한 대로 거의 매일같이 저녁을 먹은 후 아지트로 향했다.
하루하루 줄어드는 아지트의 재료들이 사라지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지만 윤석을 매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미소가 지어졌다.
“현주야? 넌 매일같이 어디를 그렇게 가니?”
“응... 귀옥이가 숙제하자고 해서...”
“그래? 공부 열심히 하고 와, 그런데... 그 옆집 거기는 기웃거리지 말고 알았지?”
“네... 옆집! 아, 저, 씨?....”
퀴라는 좀 이상했지만 엄마가 부엌으로 나가시자마자 엄마의 가방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입술에 쓱쓱 발랐다. 그리고 다녀오겠다며 인사를 하고 냅다 뛰어 대문을 나섰다.
“헉헉헉 뻐꾹뻐꾹 퀴라”
숨을 헐떡거리며 아지트 앞에서 윤석과의 암호인 뻐꾹뻐꾹 뻐꾸기 소리를 내며 현주의 별명인 드라퀴라의 “퀴라”라고 말하면 들어갈 수 있다
“들어와 퀴라야”
“어, 오빠 일찍 왔어? 헉헉헉”
퀴라는 가쁜 숨을 내쉬며 아지트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조금 전에 왔어, 어서 와! 퀴라야 그런데 너 입술이 왜 그래?”
“왜? 내 입술이 어때서?”
“뭐 먹고 왔어? 너 나 몰래 뭐 먹었지? 히히히”
“..........”
퀴라는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점점 붉어지는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엄마의 화장품가방에 있던 마술립스틱을 꺼내 바른 것이 화근이 되었을 줄이야.
하늘빛의 립스틱 – 퀴라의 어머니가 군인가족 사모님들에게 홍보하실 때 말씀하신 대로 한번 바르면 약간핑크 두 번바르면 약간 진한핑크 세 번바르면 제대로 이쁜 붉은 입술이 되고 네 번 이상 바르면 섹시한 입술이 된다는 말씀이 생각나 퀴라는 제대로 이쁜 붉은 입술이 되는 세 번. 그 세 번을 바르고 후다닥 아지트에 달려온 것이다.
“오빠? 미안해 오빠 몰래 유주 먹고 왔어 이히히히”
“그래? 유주 먹으면 그런가? 하하하하”
퀴라는 금방 생각해 낸 것이 유주였다. 유주를 먹고 왔다는 말을 하면서도 가슴은 윤석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음번에는 윤석오빠 유주 하나 더 따서 갔다 줘야지”
먹지 않은 유주를 먹었다고 거짓말한 퀴라는 정말 혼자 먹은 것처럼 윤석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오빠? 달걀귀신은 꼴뚜기튀김 무서워해?”
“하하하하 하하하하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꼴뚜기튀김을 재물로 바치는 거지 그러면 달걀귀신은 그 재물을 놓고 간 우리를 보호해 주거든, 뭐 한번 두고 가면 일주일은 보호해 주겠지? 하하하하 하하하하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응, 그래서 우리가 여기 오면 달걀귀신이 나타나지 않는구나!”
“그렇지, 우리 퀴라 정말 똑똑하네 하하하하 하하하하”
순간 윤석의 커다란 손이 퀴라의 머릿결을 쓰다듬고 있었다.
“오빠! 하하하하 하하하하”
“쉿! 조용히 하고 있어 봐 애들이 오는 소리가 들려”
“응, 들려...”
윤석과 퀴라는 두 손을 귀에 대고 아지트벽에 귀를 가져다 댔다.
“너 그걸 믿니? 뻥이야 뻥, 저기 그냥 벽돌이잖아, 무슨 달걀귀신이 있어 웃기는군”
지나가는 남자아이가 거짓말이라며 바닥에 있었던 나뭇가지를 집어 아지트에 던졌다.
“딱”
“봐, 없잖아 그렇지?”
“.......”
네다섯 명쯤 되는 남자아이들이 모여 떠드는 소리가 아지트에 들려왔고 윤석과 퀴라는 아지트 벽돌틈으로 그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정말인데, 지난번에 나 달걀귀신 봤어, 내공책에 경고문도 써놓고, 봐봐”
“기철아? 거짓말하지 마 이 세상에 귀신이 어딨냐? 하하하하 하하하하”
겁을 잔뜩 먹은 기철이가 하는 말에 다른 아이들은 배꼽을 쥐며 웃어댔다. 그리고 남자아이들이 또 무언가를 집어 드는 순간 윤석의 두 손이 입으로 향했고 순간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꾸룩꾸룩 꾸꾸.... 꾸룩꾸룩 꾸꾸,,,,”
“꾸룩꾸룩 꾸꾸.... 꾸룩꾸룩 꾸꾸,,,,”
이상한 소리를 내는 윤석을 바라보던 퀴라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큭큭큭, 큭큭큭”
“쉿”
그사이 남자아이들은 “아... 있잖아, 왔다, 무서워, 도망가자”
서로 제각기 다른 말들을 내뱉고는 후다닥 도망을 쳤다.
“짜식들, 겨우 이소리에 도망가냐?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퀴라도 윤석을 따라 웃었다.
“이제 집에 가자! 오늘 잘 자고 내일 보자”
“응 오빠! 오빠도 잘 자고 내일 봐”
“그래, 그리고 퀴라야? 오늘 입술이 참 이쁘다”
“정말?”
“응”
퀴라는 집에 들어가는 내내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역시 그 마술립스틱이 좋구나! 나도 어른이 되면 꼭 예쁘게 바르고 다녀야지”
퀴라는 퀴라의 어머니 립스틱을 부러워하며, 어른을 부러워하며 그날밤 밤새도록 립스틱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꿈을 꾸었다.
“어서 일어나”
퀴라는 피곤했는지 밥상이 다 차려지도록 몇 번을 깨워도 일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퀴라의 아버지의 한마디 “학교 안 갈래?” 라는 큰소리에 퀴라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퀴라는 아버지와 마주 앉은 밥상이 너무도 어색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
퀴라는 아버지보다 더 먼저 집을 나섰다. 그리고 학교 가는 골목길 반대방향으로 걸어갔다.
“순남이 언니 학교 가자”
퀴라는 순남이네 집에 들어섰고 순남이를 불러댔다.
“응, 조금만 기다려줘, 준비 다됐어”
“응”
퀴라는 순남이와 함께 여유롭게 골목길안을 걷고 있었다.
“언니? 그거 알아?”
“뭐?”
“저기 저 공장에 달걀귀신 있는 거 말이야”
“호호호호 호호호호 얘는 누가 애들 아니랄까 봐 그러니? 세상에 귀신이 어딨어? 호호호호 호호호호”
달걀귀신이 있다는 퀴라의 말에 순남이는 계속 웃기만 했다.
그렇게 웃는 순남이 얼굴이 의아하다는 듯 퀴라는 순남이를 뚫어져라 바라다보았다.
“언니? 그럼 내가 보여줄까?”
“정말? 너 거짓말이면 너 나한테 거짓말쟁이로 찍힌다. 호호호호 호호호호”
“알았어, 내가 꼭 보여줄게... 오늘 저녁에 시멘트공장 알지? 미순이네 공장에 언니 혼자 몰래 와봐”
“그래? 호호호호호호 알았어”
건성으로 대답하는 순남이의 말에 퀴라는 그동안 달걀귀신이 무서워 달걀귀신이 눈앞에 보이지 않기만을 바랐었는데 이제는 꼭 달걀귀신의 모습을 보겠다는 의지가 확실해졌다.
그리고 그 시간에 꼭 달걀귀신이 나오길 빌었다. 하지만 윤석오빠랑 약속한 말들이 생각나서 괜한 말을 했나 싶어 퀴라는 고민에 빠졌다.
퀴라는 어찌할까 고민하다 교실에 앉아 또 멍하니 창밖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순간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들려왔다.
“오늘 우유당번? 우유 안 가져왔네 누구지?”
오늘도 퀴라는 우유당번이었는데 또 잊어버렸다.
“현주, 현주예요”
주위의 친구들이 퀴라를 가리키며 손짓을 했다.
“현주 왜 자꾸 잊어버리지? 우유당번 자꾸 잊어버리면 태도 감점이다”
“네, 다시는 잊지 않을게요... 죄송합니다”
퀴라를 쳐다보다는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가 데굴데굴 동글동글 왔다 갔다 눈코입이 보이지 않는 하얀 피부색의 달걀들처럼 퀴라를 어지렵혔다.
“야... 이거 받아.... 너 가져”
갑자기 민석이가 우유표 네 장과 함께 초콜릿을 퀴라의 책상에 놓았다.
“이게 뭔데?”
“우유표, 지난달에 나 못 받아서 네가 줬잖아, 잘 먹었어 이 초콜릿은 고마워서 주는 거구”
퀴라의 주인집 영아가 먹었던 그 초콜릿이었다.
먹고 싶은 마음에 퀴라는 영아와 무려 3시간이나 놀아주었던 그날 그 때문에 퀴라는 아지트에 가지 못했던 날이었는데, 지금 그 초콜릿을 민석에게서 받았다.
“고.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뭐가? 미안해?”
퀴라는 서슴없이 우유표를 달라고 했던 민석이가 얄미워 속으로 민석을 미워했고 줘버린 우유표를 아까워했던 그날들이 생각나 미안하다고 말해버렸다.
무척이나 행복한 그날 퀴라는 얼른 저녁이 되길 바랐다.
저녁이 되면 윤석과 함께 아지트에 갈 수 있다는 생각과 이 초콜릿을 같이 먹을 수 있다는 행복감에 하루종일 퀴라의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기분이 좋아진 퀴라는 집에 와서도 노래를 부르며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엄마? 오늘은 제가 설거지할게요”
“얘가 웬일이야, 너 할 수 있겠어?”
“그럼요”
퀴라는 엄마의 일도 돕고 퀴라가 가장 싫어하던 칼싸움 놀이도 하며 동생과 재미나게 놀아 주었다.
“엄마? 저 순남이 언니랑 놀다 올게요”
“그래 너무 늦지 말고 와”
“네”
퀴라가 엄마의 일도 도와주고 동생과 재미나게 놀아준 덕분에 퀴라는 쉽게 집을 나올 수가 있었다. 영아네집 앞을 지나칠 무렵, 퀴라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 유주가 다 익었나?”
주황색 돌기가 있는 유주 한 개가 백합꽃잎처럼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 씨를 둘러싼 빨간 알갱이들이 퀴라의 입속의 침샘을 자극했다.
“윤석오빠가 맛있다고 했는데.... 저렇게 많은데 하나만 더 따가도 모르겠지?”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서는 퀴라. 키가 작아서 화단 위에 올라섰지만 그래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기에 퀴라는 잘 익은 여주 옆 줄기를 잡아당겼다.
“후드득”
“아, 안되는데... 어쩌지?”
줄기를 잡아당긴다는 것이 잘못 잡아당겨 줄기와 함께 있었던 넝쿨지지대 끈까지 내려와 결국 서너 개의 여주가 땅에 떨어졌다. 다행히 한 개는 퀴라의 손이 닿아 꼭 집고 있었고 얼른 내려갈 생각에 발을 먼저 내렸다.
그 순간 누가 볼까 불안한 마음에 퀴라는 얼른 화단을 내려온다는 것이 그만 발을 헛디뎌서 넘어지고 말았다.
"누구니?”
“.........”
주인집 아주머니였다.
“.......... 잘못했습니다.”
퀴라는 우선 잘못을 빌었다. 엉덩이와 발목이 너무 아팠지만 퀴라의 어머니에게 알려질까 봐 용서를 먼저 빌었다.
“너, 현주구나! 그거 유주 따려다 넘어진 거니? 얘가 얘가... 너 니네 엄마한테 이른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너무 예뻐서, 너무 맛있어 보여서...”
“그래도 그렇지, 주인 몰래 따는 건 도둑이나 하는 짓이란 거 너 몰라? 더군다나 우리 영아아빠가 제일 좋아하는거라 심어서 귀하게 키우는 중인데 그걸 함부로 따니?”
“............”
퀴라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변명을 늘어놓자니 잔소리가 심하신 주인아주머니의 목청은 더 커질 것 같아 조용히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퀴라네 방안까지 들렸던지 잠시 후 퀴라의 어머니가 나오셨다.
“현주야? 왜 그래? ”
“아니 쟤가 저 유주를...”
“아니, 애가 먹고 싶어서 딴 것을 뭘 도둑까지 들먹이고 난리래요? 그럴 수도 있지”
주인집아주머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퀴라의 어머니는 소리치셨다.
“뭐라고요? 잘못한 애 혼내지는 못하고 왜 저한테 화를 내나요? 이상하게”
“이상하다니요? 그까짓 거 하나 딴다고 도둑으로 몰아 새우는 사람이 더 치사한 거죠, 셋방 산다고 아주 우습게나 보고 말이야! 내가 더러워서 집을 사야지 나원 참... 현주야 얼른 가 순남이 기다린다. "
퀴라는 퀴라의 어머니의 말씀에 엉거주춤 대문을 빠져나갔다.
“뭐요? 그럼 나가시던지... 돈 없어 못 나가면서 뭘 그렇게 잘난척하시나?”
“아니 이 여편네가 나이도 나보다 한참 어린것이 뭐야?”
대문밖에서 듣고 있던 퀴라는 무서웠다.
“또 내가 잘못했나? 어쩌지? 우리 이사 가야 하나!” 불안한 마음이 자꾸만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윤석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주인집아주머니와 어머니의 싸움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아지트로 향했다.
아지트에 도착해서 퀴라는 잠시 머뭇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어딨지? 여기에 놓아둔 것 같았는데, 아 여기 있다.”
퀴라는 혼잣말을 하며 꼴뚜기튀김을 저 멀리 냅다 던져버렸다.
“뻐꾹뻐꾹 퀴라”
“들어와”
“오빠!... 내가 늦었지?”
“괜찮아”
“자, 이거”
“이거 또 그거네... 고마워”
퀴라의 손에 들려져 있던 유주가 일그러져 알맹이가 튀어나와 퀴라의 손 여기저기에 묻어있었다.
“퀴라 너 너무 꽉 잡아서 알맹이가 다 나왔구나 손 이리 내밀어봐”
윤석은 퀴라의 손을 잡고는 손바닥에 달라붙어있는 붉은 여주알맹이를 하나하나 떼어 윤석의 입에 넣었다.
마치 엄마가 아기손에 묻은 밥풀을 아까워하며 뜯어먹듯이 윤석은 퀴라의 작은 손에 달라붙은 여주알맹이를 맛있게 먹었다.
“퀴라야? 그거는 네가 먹어, 나는 이거면 충분해”
“아냐 오빠 주려고 가져온 건데”
“사실 나한테는 맞지 않는 맛인 것 같아, 퀴라 먹어, 그리고 이제 그만 가져와도 돼”
윤석은 마치 좀 전에 퀴라의 사건에 대해 전부 알고 있다는 듯, 윤석은 혼자 먹는 것이 미안한 듯 퀴라에게 먹으라고 내밀었다.
윤석과 함께하며 맛보는 유주의 맛, 하지만 주인집 아주머니와 엄마의 다툼을 생각하니 맛이 없어졌다.
“오빠? 이거 맛도 이상하고 씨도 너무 많아서 먹기 힘들다 그렇지?”
“그래, 우리 이제 먹지 말자”
윤석의 먹지 말자는 말에 퀴라는 좀 전의 그 악몽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아차! 오빠? 이거 초콜릿이야 오빠 먹어”
퀴라는 주머니에 고이 넣어둔 초콜릿을 꺼냈다.
“어 이상하다 아까는 안 그랬는데 왜 찌글찌글해졌지?”
“하하하 하하하 다 녹았잖아. 그래도 퀴라가 주는 거니까 맛있게 먹을게”
“녹은 거구나!”
“퀴라도 한입 먹고 나도 한입 먹고, 달콤하다.”
“응, 맛있다.”
“퀴라야 고마워”
“나도... 오빠가 영화 보여준 거랑 꼴뚜기튀김 사준 거 너무너무 고마워”
퀴라는 그때서야 윤석에게 하고픈 말, 고마움에 대한 이야기를 건넸다. 퀴라와 윤석은 그 후 20여분을 아지트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오빠? 오늘은 애들이 안 오나 봐?”
“그러게, 애들이 달걀귀신이 무서워서 일찍 집에 갔나 봐”
“그러면... 오늘 달걀귀신 못 봐?”
“응, 그럴 것 같아”
“나 꼭 봐야 하는데...”
“왜?”
퀴라는 순남이 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섭지만 꼭 달걀귀신을 봐야만 했다. 순남이에게 달걀귀신을 보여주기 위해 아지트 근처에 놓아두었던 보호용 꼴뚜기튀김을 저만치 던져버리기까지 했는데 볼 수 없다니 걱정이 되었다.
“퀴라야? 오늘은 집에 일찍 가자 나 숙제도 많아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안 될까?”
“벌써 시간이 꽤 지났어, 오늘은 그냥 가자”
“알았어...”
조금만 더 기다리면 달걀귀신이 나올 것만 같은 생각에 퀴라는 조금만 더 있자고 윤석에게 말했으나 소용없었다. 윤석과 퀴라는 아지트에서 나왔다.
먼저 나온 퀴라는 보호용 꼴뚜기 한 마리가 퀴라를 노려보는 듯하여 가까이 다가가서 세차게 더 밟아댔다.
그리고 퀴라는 아지트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퀴라야 왜 그래?”
“아니 그냥”
“무서워서 그래?”
“아니”
퀴라는 순남이언니가 왔을까 봐 두리번거리며 순남이를 찾았다. 하지만 집에 오는 내내 순남이는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퀴라야 잘 자”
“응 오빠도 잘 자”
둘은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다음날도 또 그다음 날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들어갔다.
양철대문을 여는 순간 퀴라의 눈앞에 유주가 들어왔다.
“아참, 엄마... 엄마생각을 못하고 있었네, 어쩌지?”
퀴라는 숨을 죽이며 주인집마당을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엄마 죄송해요.”
“괜찮아 뭐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이제부터 남의 것 탐내지 마 먹고 싶으면 말을 해, 그럼 엄마가 사주던지 얻어주던지 할 것 아니니? 왜 남한테 그런 모욕을 당하게 하니?”
“네, 죄송합니다”
“그래 어서 씻고 자”
“네”
퀴라는 다행이다 싶었다. 눈앞에 보이는 빨래방망이로 맞아도 시원치 않을 일을 저질렀는데 이쯤 해서 끝난 듯 하니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퀴라의 어머니의 가슴에 무언가 맺힌 한이 있는 듯 이를 앙다문 모습 속에 퀴라어머니의 아픔이 마치 툭 터져버린 유주알처럼 녹아 나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