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퀴라는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와 주인집 앞마당에 도착했을 때, 주인아주머니가 퀴라의 발자국소리를 알아채고는 급히 나오셨다.
“현주야? 어제는 아줌마가 좀 심했지?”
학교 가려고 나서는 퀴라에게 주인집 아주머니는 퀴라의 손을 다정히 잡으며 말을 건넸다.
“아줌마가 성격이 나빠서... 이해해 줘 현주야, 이따 학교 끝나고 영아랑 같이 놀아줄래? 영아가 어제부터 언니를 자꾸만 찾는데...”
아주머니는 어제 일들을 진심으로 후회하는 듯했다.
영아랑 놀아줄 단 한 사람이 퀴라라는 것을 잊었다는 것에 대한 후회감이 마구 밀려들었는지 퀴라의 두 손을 꼭 쥐며 퀴라의 손에 500원을 쥐어 주셨다.
“괜찮은데요, 저 이따 학교 끝나고 와서 영아랑 놀게요” “그래 고마워, 이거는 맛있는 거 사 먹고 잘 다녀와”
“감사합니다”
퀴라는 금세 어제의 그 큰일들을 잊어버린 채 마냥 기뻤다. 돈도 생기고 영아랑 놀면 또 맛있는 것도 먹을수있고 그리고 더 기쁜 것은 아주머니가 퀴라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에 대해, 퀴라가 엄마에 대한 죄송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준 듯했다.
“우와, 500원, 이거로 뭐 할까? 아참... 엄마한테 말씀드려야 하나? 이 돈이면 영화도 볼 수 있는데...”
퀴라는 500원 종이돈을 만지작거리며 학교 가는 내내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야~~ 너, 앞에 가는 씰룩 이”
학교 가던 퀴라의 등뒤에서 낯익은 기분 나쁜 소리가 들여왔다.
“너 말이야, 너”
“나?”
“그래”
“왜?”
“너 6학년 형이 너 잘 봐준다며! 그래서 너 그렇게 당당하냐?”
“무슨 소리야?”
“우리가 모를 줄 아니? 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알아?”
“............”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이 퀴라에게 화를 내며 뭐라고 뭐라고 했다.
“아니야 나 그런 일 없고 나 봐주는 사람 없어”
“웃기지 마, 너 그 형이랑 사귀지? 너 그 형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지? 얼레리꼴레리, 너 이 얘기 그 형한테 하기만 해 봐 가만 안나 둔다”
“.............”
남자아이들은 퀴라에게 주먹을 내쥐며 윽박지르듯 했지만 그들의 몸은 벌써 겁에 질린 듯 정신없이 학교로 뛰어가고 있었다.
“6학년 형! 누구지? 왜 그런 말을 나한테 할까?”
퀴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누가 퀴라를 잘 봐준다는 것인지 그리고 그 남자아이들을 혼내주는 건지, 생각에 잠기다 “아, 그럼...” 생각이 났다.
“윤석 오빠가, 정말 그랬을까! 그럼 아지트는? 달걀귀신은?”
혼란스러웠다. 공부시간 내내 선생님의 얼굴에는 윤석 오빠의 얼굴이 겹쳐 보이고 친구들의 작은 머리는 마치 시멘트벽돌로 만들어진 작은 아지트처럼 눈앞에서 왔다 갔다 퀴라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야? 너 뭐 해?”
“응? 뭐 해?”
앞자리 민석이가 퀴라에게 말을 걸었다. 그 말에 깜짝 놀라 퀴라는 민석에게 되묻고 말았다.
“너 지금 뭐 하냐고? 너 오늘 우유당번이야, 너 또 혼날래? 내가 같이 가줄까?”
“아참, 고마워 이히히히”
민석은 퀴라와 함께 우유박스를 가져왔다.
“고마워, 또 혼날뻔했다”
“그래 너 조심해 담임선생님 화나면 무서운데 자꾸 잊어버리면 안 되지”
“그래 알았어 고마워”
“너, 그 초콜릿 맛있었어?”
“어? 응, 너무너무 맛있었어 고마워”
“그래? 그러면 다음에 또 줄게”
퀴라는 민석이가 더욱더 늠름해 보였다. 이제 뒷모습이 아닌 앞모습도 제대로 보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너무나도 기뻤다.
그리고 그 외에는 하루종일 혼미한 정신으로 수업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퀴라는 번뜩 생각이 났다.
“아참. 아주머니가 오라고 했지? 그래 영아랑 놀아야겠다”
퀴라는 가방을 방안에 던져놓고 바로 영아에게 달려갔다.
“영아야? 노~올자”
“응 언니! 언니다. 어서 들어와”
힘에 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영아 어디 아파?”
“응... 자꾸만 힘이 없어서...”
영아는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말을 했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팔다리는 힘이 더 빠져 지탱하기도 힘들어 보였고 반면에 커다란 머리는 무척 무거워 보였다.
영아의 등은 간신히 벽에 기대 있었고 양팔은 묵직한 베개에 의지하고 있었다.
“현주 왔구나!”
주인아주머니는 퀴라를 여느 때 보다 더욱더 반겨주셨다.
“현주 좋아하는 땅콩버터빵 먹을래? 초콜릿도 있는데...”
“네 고맙습니다”
아주머니는 퀴라가 좋아한다며 땅콩잼버터를 식빵에 잔뜩 발라주셨다.
“영아야? 너도 먹어봐 맛있어”
“아니 아니 안 먹어”
영아는 퀴라가 건네주는 빵을 밀어내며 손사래를 쳤다. 퀴라는 혼자서 맛있게 먹는 모습이 미안해 갖은 인상을 써대며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퀴라의 입가는 어느새 달콤하고 고소한 땅콩버터의 입맛을 알고 있었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머, 나 왜 이러지? 자꾸만 내 광대뼈가 튀어나오려고 해, 어쩌지?” 퀴라는 마음속에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가며 퀴라의 광대뼈조차 즐거워하는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숨을 참아야만 했다.
“현주야? 아줌마가 할 말이 있는데...”
주인아주머니는 빵을 맛있게 먹는 퀴라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어갔다.
“오늘 영아랑 많이 놀아줄래? 오늘 저녁도 아줌마가 맛있는 거 해줄게”
“엄마한테 말씀을 안 드렸는데요...”
“걱정 마 내가 가서 말씀드릴게”
“네”
맛있는 저녁을 해주신다는 말씀에 퀴라는 신이 났다.
“영아야? 너 좋아하는 화투놀이 하자”
“응”
퀴라는 화투가 담긴 영아의 보물상자를 열어 화투를 꺼내 영아의 이불 위에 올려놓았다.
“짝이 아주 잘 맞네, 내가 먼저 할게, 우와 똥이다. 이제 너 해”
“...............”
“왜 안 해? 얼른 던져봐”
“언니? 나 힘들어 언니가 가져다줘”
“뭐야 재미없게, 내가 가져다주면 나 혼자 하는 거잖아”
“언니, 나...힘이 자꾸만 없어져”
“왜? 정신 차리고 던져봐 자, 나같이 찰싹 때려봐”
퀴라는 들고 있던 화투장을 치켜들며 바닥에 놓여있던 화투장에 던져 "찰싹" 소리가 나게 시범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영아는 또다시 “언니가 해” 라고 하며 머리를 벽에 기대었다.
퀴라가 영아랑 놀고 있을 때 주인아주머니는 퀴라의 어머니를 찾아갔다.
“현주엄마? 지난번에는 미안했어요. 나이도 어린 제가 정말 죄송했어요”
“갑자기 왜 그러신대? 사모님이?”
주인아주머니는 퀴라의 어머니에게 정중히 사과를 드렸지만 퀴라어머니는 아직 화가 덜 풀린 듯 어이없다는 말투로 비꼬듯 말을 이어갔다.
“정말 죄송해요 이거 약소하지만 드셔보셔요”
“어머, 바나나네요?”
하지만 퀴라어머니는 금세 바나나 한덩어리를 받아 들며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바나나 한 개에 500원, 영화비랑 같은 가격에 달랑 한 개, 그 바나나 향이 어찌나 향기롭던지 그 맛을 잊을 수 없다며 퀴라는 늘 엄마에게 한 개 사달라고 애원을 했었지만 비싸다는 이유로 퀴라는 딱 한번 먹어본 기억밖에는 없었다.
“아니 이 비싼걸 이렇게나 많이 사 오셨어요?”
퀴라어머니의 얼굴에는 다시 해가 떠오르듯 밝아지셨다.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네 뭐든지 말씀하세요”
퀴라어머니는 전형적인 전투적 말투에서 벗어나 아주 부드러운 말투로 말씀을 하셨다.
“저기, 낼 현주 학교 안 가니까 오늘 우리 영아랑 같이 자면 안 될까요? 그게,우리 영아가... 영아가...”
“아니 왜 그러세요?”
영아 어머니는 갑자기 퀴라 어머니의 손을 부여잡고 우셨다. 퀴라의 어머니는 주인아주머니를 부축이며 들마루에 앉게 해 주었다.
“왜 무슨 일 있으세요?”
“우리 영아가 아무래도 이상해요. 자꾸 잠만 자려고 하고...” 영아는 심각한 선천성 소아마비를 앓고 있었다. 그래서 영아는 8살 학교 갈 나이가 되었지만 학교에는 가지 못했고 늘 집에만 있었다. 하지만 영아는 늘 해맑고 예쁜 아이였다.
그런 영아가 요즘 더더욱 부쩍 마르고 힘이 없고 잠만 잔다는 주인아주머니의 간절한 부탁에 퀴라 어머니는 현주가 영아 옆에 있도록 허락을 해주었다.
“언니? 언니 나 요즘 힘이 없어 그냥 누워서 언니랑 나랑 얘기하자”
“그래”
“아! 좋은 생각이 났다 언니? 우리 엄마한테 우리 마당에 있는 마루에다가 이불 펴달라고 할까? 달보고 별 보고 얘기하자,”
“그래주실까?”
“응, 우리 엄마는 내 말은 다 들어주셔”
영아는 엄마에게 마당에 있는 마루에 이불을 펴달라고 했다.
“우리 영아 안 무서워? 겁도 많으면서...”
주인아주머니는 영아를 꼭 껴안으며 눈물을 흘리셨다.
“응 현주언니 있어서 안 무서워”
겁이 많았던 영아는 그날따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퀴라를 쳐다보았다.
“언니? 언니가 나 지켜줄 수 있지?”
“그럼, 다 덤벼~ 호랑이가 나타나도 내가 영아를 지켜줄게”
“흐흐흐흐, 히히히”
영아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기운이 없어서인지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우리 영아 이제 좀 나아졌니?”
“네...”
미소를 짓는 영아를 보며 주인아주머니는 퀴라의 손을 꼭 잡아주셨다. 그리고 영아가 원하는 대로 마당에 있는 마루에 이불을 펴주기로 하셨다
“현주랑 영아랑 저녁 맛있게 먹고 행복한 밤 보내”
“네네...” “네네” 퀴라와 영아는 동시에 큰소리로 합창을 했다.
늦여름밤 초롱초롱 별들이 퀴라와 영아의 눈 속으로 입속으로 가슴으로 차디찬 빛을 내며 마구마구 쏟아져 내렸다.
“아, 좋다, 언니? 너무 좋다 그렇지?”
“그래, 나도 좋다 까만 밤하늘을 우리 둘이 여행하는 것 같다. 히히히 히히히”
“맞아, 우리 저 별도 가보고 저기 저 별도 가보자, 언니? 언니는 어떤 별이 제일 좋아?”
“당연히 거문고자리의 으뜸별인 직녀별... 그리고 은하수 건너에 있는 견우별이 제일 좋아, 너무 멋진 사랑 아니겠니? 호호호”
퀴라는 윤석에게 전해 들은 견우직녀에 대한 사랑이야기를 생각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어, 나도 거문고자리 좋아하는데... 언니 거문고자리 신화 알아?”
“거문고자리 신화? 그런 것도 있어? 나는 모르는데...”
“내가 알려줄게,
거문고자리를 주인 잃은 거문고의 음악 소리라고도 하는데 그리스 신화에서는 헤르메스가 거북 껍데기와 소의 창자로 만들어서 아폴론에게 하프를 선물했대.
아폴론은 그 하프를 음악의 천재인 아들 오르페우스에게 주었고, 오르페우스에게는 에우리디케라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는데 끔찍하게도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 죽고 말았어, 아내를 너무너무 사랑한 오르페우스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지하세계로 에우리디케를 찾아 나섰는데 오르페우스는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와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 앞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며 에우리디케를 돌려줄 것을 간청했대, 결국 오르페우스의 사랑에 감동한 페르세포네는 에우리디케를 데려가도 좋다고 허락하고 단, 땅 위에 도착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조건을 붙였지, 거의 땅 위에 다다를 무렵 아내가 뒤따라오는지 걱정이 되어 뒤를 돌아보는 순간 에우리디케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어, 그 후 오르페우스도 슬픔과 괴로움에 빠져 결국 죽고 말았대, 그 후 주인을 잃은 거문고에서는 슬프고 아름다운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고, 오르페우스의 음악에 빠져들었던 제우스는 그의 거문고를 하늘에 올려 모든 사람들이 영원히 그의 음악을 기억하게 되었던 거지,
언니 어때? “
“영아야 너 대단하다. 그런 것도 다 알아?”
“응 그냥 책에서 본거야, 너무 슬퍼서 내가 좋아하게 됐어”
“그랬구나, 나는 거문고자리에 견우직녀별만 생각했었는데”
“휴.... 이제 별자리 여행도 힘들다.”
“그래? 그럼 잘까? 푹 자고 나면 다시 좋아질 거야 영아야 잘 자”
“응 언니도 잘 자”
영아와 퀴라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밤하늘은 어느새 더욱더 차가운 빛을 내며 반짝이던 별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쪽하늘 외로이 남아있는 별 하나가 영아를 영원히 지켜줄 듯 더욱더 반짝거리며 밝은 빛을 내며 웃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퀴라는 먼저 일어나 영아를 바라보았다.
“잘 자는구나!”
퀴라는 영아가 일어나기도 전에 가장 중요한 숙제가 생각 난 듯 영아에게 이불을 더 잡아당겨 덮어주고 집으로 들어갔다.
“오늘 미순이네 가봐야 하는데, 얼른 세수해야지”
세수를 마치고 미순이네 집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주인집 앞마당에 이르렀을 때 아직도 영아는 자고 있었다. 잠시 영아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다 “영아는 참 예뻐”라고 생각하고는 곤히 자고 있는 영아가 깰까 조심조심 걸어 양철대문을 나왔다.
“미순아? 노올자”
“들어와! 뭐야? 아침부터 무슨 일 있어?”
미순이는 잠옷바람으로 퀴라를 불러들였다.
“히히히히 미안해 아침부터 놀고 싶어서... 미순아? 너네 아빠 이제 벽돌 안 만들어?”
“응, 이제 우리 아빠는 안 만들어, 우리 큰 도시로 이사 갈 거야 돈 많이 벌어서 큰 아파트에서 살 거거든 부럽지?” 미순이는 마치 미순이가 부자가 된 듯 우쭐해하며 말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그래? 그럼 여기는...”
퀴라는 미순이네가 도시 아파트로 이사 간다는 부러움 보다는 윤석과 퀴라의 아지트가 더욱더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아지트가 없어지면 윤석 오빠도 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에 우울해졌다.
“음... 글쎄 아직 모르겠는데 아마도 여기는 다른 사람이 하거나 뭐 다른 집을 짓던지 하겠지, 우린 상관없어 이거 팔았거든...”
“정말? 그럼 얼마 있으면 여기도 다 허물어지겠네? 벽돌도 없어지겠지?” “뭘 허물어? 우리 집? 뭐 허물 것도 없는데”
“아, 아니... 그럼 남은 벽돌들은 어떻게 되는데?”
“몰라, 너 왜 나랑 놀자면서 그런 것만 물어보니? 우리 아빠 시멘트공장 사고 싶어?”
“아.... 아니, 그냥 궁금해서...”
“그렇지 않아도 우리 아빠가 요즘 짜증나신대”
“왜?”
“누가 자꾸만 벽돌을 쌓아 올리고 부시고 그러나 봐”
“그래?” “아마 우리 학교애들 같은데... 너 그런 나쁜 애들 보면 나한테 알려줘”
“설마.... 아니겠지만, 알았어”
순간 퀴라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날 아지트에 갈 생각에 저녁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얼른 윤석에게 말을 전하고 싶어졌다.
“미순아 나... 갈게”
“뭐? 놀자고 하더니 왜 벌써 가?”
“아침 안 먹고 왔거든 갈게”
“되게 웃긴다... 잘 가”
퀴라는 미순이랑 더 놀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기에 집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양철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영아야? 영아야?” 다급히 영아를 부르는 주인아주머니의 목소리에 퀴라는 머리카락에 전기가 흐르듯 찌릿함이 밀려오고 온몸이 경직되는 듯 겁이 났다.
“아줌마? 무슨 일 있어요?”
“영아가... 영아가....”
그 순간 퀴라의 눈앞이 어두컴컴해지더니 머리가 어지럽게 빙글빙글 돌고 있는 듯했다.
“영아가 하늘나라로 가버렸어, 흑흑흑”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영아를 안고는 계속 울고 계셨다.
“죄송해요, 영아가 잘 자는 줄 알고... 제가 확인도 안 하고 먼저 일어나서 나갔어요”
“................”
퀴라는 영아의 죽음이 퀴라 자신의 잘못인 것 같아 고개를 숙여버렸다.
퀴라도 엉엉 울었다.
영아는 이제 저 하늘의 별이 되어 아마도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영아의 손을 꼭 잡고 “잘 가” 라고 인사를 해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퀴라는 저녁이 다되도록 공책에 일기를 쓰고 있었다.
영아가 하늘나라로 갔다. 거문고자리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리고 퀴라는 거문고자리에 대한 자료를 찾아 열심히 공책에 적었다.
잘 보이는 계절 8월경
자오선 통과 시기(20시) 8월 29일
거문고자리는 은하수 부근, 거의 천정점에 떠 있으며, 전갈자리와 함께 대표적인 여름 별자리다. 별자리 형태는 작고 거꾸로 된 L자 형태를 띠고 있다. 별자리 형태와는 약간 다르지만, 성도에서는 자주 악기 리라, 즉 U자 형의 틀에 현을 붙인 하프로 그려진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의 분묘에서는 L자 형태의 하프가 발굴된 것으로 추정해 볼 때 별자리가 만들어졌을 무렵의 고대 오리엔트에서는 이 L자 형의 하프가 일반적이었던 것 같다. 이 별자리의 α성 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칠월칠석 때 볼 수 있는 직녀(직녀성)로 유명한데, 이 별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 베가라는 이름은 아라비아 이름인 '알·나수르·알·와키(떨어지는 독수리)'에서 변한 것인데, 이는 베가의 이웃에 있는 ε, ζ 두 별을 이으면 V자 형태가 되고, 날개를 접고 하강하는 독수리의 모습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리고 베가는 약 1만 2천 년 후에 새로운 북극성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신화에서 거문고자리는 전설적인 음유시인인 오르페우스가 갖고 있던 하프였다고 한다. 견우와 직녀의 사랑 이야기는 유명한데, 그리스 신화에서도 이 별자리에는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음유시인 오르페우스트라키아 왕 오이아그로스와 음악의 신 뮤즈(모두 아홉 명이다) 중 하나인 칼리오페 사이에 오르페우스라는 아이가 있었다(태양신 아폴론과 칼리오페 사이의 아이라는 설도 있다).
아폴론은 거북 등에 일곱 줄의 현을 붙여 만든 하프를 갖고 있었다. 이것은 재기가 넘쳤던 전령신 헤르메스가 태어나 곧바로 만들었던 하프로, 아폴론은 자신의 가축과 하프를 바꾸었던 것이다. 아폴론은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오르페우스에게 하프를 주었는데, 오르페우스는 아홉 명의 뮤즈를 칭송한다는 의미로 기존 하프에 두 줄의 현을 더해 모두 아홉 줄의 현을 가진 새로운 하프를 만들었다고 한다. 음악에 재능이 뛰어났던 오르페우스는 곧 그리스에서 가장 훌륭한 음유시인이 되었다. 그가 한 번 하프를 울리면 동물들조차 넋을 잃은 채 귀를 기울이고, 강풍에 흔들리는 나무들이나 거친 바다조차 진정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오르페우스는 이올코스의 왕자 이아손이 거느리는 아르고호 탐험대에도 참가했다. 오르페우스는 아르고호의 앞길을 방해하는 태풍을 하프 소리로 잠재우고, 시칠리아 섬 근처에서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선원을 미혹하는 세이렌들의 마력을 오르페우스 자신의 노랫소리로 물리치기도 했다. 비록 동료 중 하나인 비테스는 세이렌에게 가고 말았지만, 오르페우스의 활약 덕분에 남은 영웅들의 목숨은 구할 수 있었다.
오르페우스에게는 나무의 정령 에우리디케라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 부부는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는데, 아폴론의 아들 중 하나인 아리스타이오스가 에우리디케를 짝사랑하는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 아리스타이오스는 에우리디케가 혼자서 들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녀를 손에 넣으려고 쫓아갔다. 에우리디케는 그를 피해 도망치다가 독뱀을 밟고 그만 물려 죽고 말았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되찾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타이나로스에 있는 동굴에서 저승으로 내려간 오르페우스는 스틱스 강(저승과 현세 사이에 있는 강)의 뱃사공인 카론과 지옥의 문을 지키는 머리가 셋 달린 파수견 케르베로스를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달래 빠져나갔다.
이윽고 명계의 왕 하데스 앞에 도착한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돌려달라고 간절히 애원했다. 그러나 하데스가 허락할 리 없었다. 그래서 오르페우스는 모든 정성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하프를 연주했다. 그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하데스마저도 감동시켜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돌아가라는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두 가지 조건이 있었다. 지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에우리디케는 반드시 오르페우스의 뒤를 따라 걸으며 한마디도 해서는 안 되며, 오르페우스는 결코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데리고 지상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둘은 하데스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걸었다. 그런데 출구가 보이자 오르페우스는 뒤가 너무나 조용해서 하데스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에 사로잡혀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슬픈 얼굴을 한 에우리디케가 서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에우리디케는 명계로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저주하며 여러 곳을 방황했다. 그는 죽은 아내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결코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주려 하지 않았다(일설에는 소년밖에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최후에는 오르페우스에게 거절당한 것에 화가 난 여자들이 그의 온몸을 갈가리 찢어 헤브로스 강에 뿌렸다.
그가 갖고 있던 하프는 그의 찢긴 몸과 함께 헤브로스 강에 던져졌으나, 오르페우스의 음악적 재능을 아까워한 제우스가 하늘에 올려보네 별로 만들었다. 이것이 거문고자리다.
오르페우스의 시체는 레스보스 섬으로 흘러가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장사를 지내주었다고 하는데, 그의 무덤에서는 오랫동안 슬픈 노랫소리와 하프 소리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성좌의 신들-
어느새 저녁이 되어 영아에 대한 슬픔도 공책도 접어두고 윤석을 만나러 아지트로 달려갔다.
“오빠? 있잖아, 헉헉헉 헉헉헉”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또 애들이 괴롭혀?”
“...........”
윤석의 다급한 말에 퀴라는 잠시 숨이 멎은 듯 가슴이 미어져왔다.
“아, 오빠였구나! 오빠가 바로 그 6학년 오빠?”
“뭐? 뭐라고?” 퀴라의 작은 목소리에 윤석은 알아듣지 못했다. 퀴라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호들갑을 떨며 말을 이어갔다.
“오빠 큰일 났어~ 글쎄 여기 우리 아지트가 없어질지도 몰라 아니 곧 없어져 내가 미순이한테 물어봤는데”
“그래, 너도 아는구나! 오빠도 알고 있었어”
“정말?” “응, 아쉽지만 뭐, 할 수 없지...”
“그럼, 우리 아지트 어쩌지? 그리고 달걀귀신은? 나 한 번도 못 봤는데...”
"ㅋㅋㅋㅋㅋ 아직도 믿고 있어? “
“........”
“달걀귀신은 없어, 지난번에 윗동네 문석이랑 기철이가 너한테 못된 짓 하는 것 보고 내가 만들어낸 거야...
그 후로는 귀찮게 안 하지? 그리고 이제 돌도 안 던지고 무지무지 착해졌잖아... 하하하”
퀴라는 윤석의 말을 그때서야 알아채고 미소를 지었다.
매번 학교에서 집을 오갈 때마다 문석이와 기철이가 던지는 돌멩이에 아파하고 화가 나고는 했었는데 어느 때부터인지 문석이와 기철이는 퀴라를 따라오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른 남자아이들도 윤석이가 퀴라의 보호막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시는 퀴라에게 못된 짓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빠? 그런데 좀 아쉽다. 나 달걀귀신 보고 싶었는데, 그리고 이 아지트도 너무 좋았는데... 그리고 꼴뚜기튀김도...”
“그래? 그럼 우리 오늘 꼴뚜기 대책회의 하러 갈까?”
“정말? 하하하하 하하하” 윤석과 퀴라는 시장 안 튀김집으로 들어가 꼴뚜기 튀김을 주문했고 둘은 맛있게 먹었다.
“자! 이거 먹어봐, 예쁜 꼴뚜기 먹어야 예쁘게 잘 자라지 퀴라처럼...”
“정말? 알았어 오빠도 이거 먹어봐, 멋지고 건강한 꼴뚜기 먹어야 오빠처럼 멋진 오빠 되지 호호호호 호호호호”
“무슨 말이 그러니?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그런가? 이히히히”
윤석과 퀴라는 행복했다.
다정히 서로 먹어보라며 꼴뚜기를 건네주고 있을 무렵 튀김집 아주머니가 다가오셨다.
“어쩜 남매가 그렇게 다정하니? 둘이 이렇게 자주 튀김도 먹으러 다니고 부럽다”
웃고 있던 윤석과 퀴라에게 주인집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어묵국물을 덤으로 주셨다.
“아~~ 우리는”퀴라는 남매가 아니라고 손짓을 하며 말을 하려고 했으나,
“네 감사합니다. 우리 많이 닮았죠?”
윤석은 퀴라의 말을 가로채며 아주머니에게 퀴라의 볼에 윤석의 볼을 가져다 대어 보이며 말을 했다.
“그래 정말 닮았구나! 참말로 멋지고 이쁘고 너희 부모님은 참말로 행복하시겠다 이렇게 사이도 좋으니 말여, 우리 애들은 붙었다 하면 쌈박질인데 말이야” “하하하하 하하하하 호호호호”
“하하하하 하하하하 호호호호”
튀김집 주인아주머니 덕분에 윤석과 퀴라는 마음껏 먹고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퀴라는 다시 우울해졌다.
“퀴라야? 왜 기분이 나빠졌어?”
윤석은 우울해진 퀴라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빠? 오늘 오늘 영아가, 영아 알지? 우리 주인집 딸”
“응, 늘 집에서만 있는 애? 그런데?”
“오늘 하늘나라로 갔어”
“뭐? 아직 어린데....”
“응... 어젯밤에 나랑 함께 마루에서 자면서 밤하늘 바라보다가 검은고자리 얘기하며 같이 잤는데 그 하늘로 가버렸나 봐, 영아도 검은자리가 가장 좋다고 했거든, 그리고 그 신화 얘기해 주고, 정말 이제 다시는 못 보겠지? 흑흑흑”
퀴라의 입속에서는 꼴뚜기튀김들이 울부짖는 퀴라의 입속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퀴라야 울지 마, 영아를 이제 이 땅에서는 볼 수 없지만 밤마다 보이는 별들처럼 하늘을 보면 영아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윤석은 울먹이는 퀴라를 다독여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윤석과 퀴라는 집으로 향했다.
길을 걷는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과 함께 윤석은 또 하나의 차가운 침묵을 깼다.
“퀴라야 이제 우리도 앞으로 자주 못 볼 거야, 이제 아지트에 오지 마 내가 담뒤에서 뻐꾸기 소리 낼 때만 나와 알았지?”
“..........”
윤석은 아쉬운 마음을 전하듯 퀴라의 손을 꼭 잡았다. 퀴라에게는 윤석의 따뜻한 마음이 깊이 전해졌고 뜨거운 연민의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퀴라는 점점 윤석의 손이 힘이 가해질 때마다 이제껏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또 다른 전율들이 느껴졌다.
“오빠? 우리 아지트 없어지면 정말 만날 수 없는 거야? 그리고 오빠는 이제 중학교 가면...”
“그렇지! 중학교가 좀 멀고 늦게 끝나니까”
“아....”
“우리 얼른 커서 자주 만나자”
“응... 이제 영아도 못 보고 오빠도 자주 못 보고, 그럼 나는 뭐 해?”
“뭐 하긴? 열심히 공부해서 중학교도 가고 고등학교도 가고 그리고 대학교 가서 우리 더 자주 만나면 되지”
“아직도 졸업하려면 4년이나 남았고 중학교도 가야 하고 고등학교도 가야 하고 너무 오래 걸리는데...”
“하하하하 하하하하 금방 지나갈 거야~ 앞으로 우리가 살아온 날 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다는 것 너도 잘 알지?”
“그런가? 헤헤헤헤”
퀴라와 윤석은 천천히 시장을 걸어 나왔고 아쉬운 마음에 아지트 옆을 서성이다가 삼십여분쯤 지나서야 헤어졌다.
퀴라는 그날밤 잠이 오지 않았다. 영아를 이제 다시 볼 수 없다는 슬픔과 윤석이 중학교를 가게 되면 지금처럼 자주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더욱더 퀴라를 잠 못 들게 한 이유는 아마도 윤석이 전해준 마음 또 다른 전율 때문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