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라의 전성기 7

괴물아저씨와 이사

by 소소예찬

9

퀴라네 주인집과 앞마당은 너무도 조용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는 듯 고요했다. 그리고 정말 아무도 없었다. 단지 너무 익어 터져서 뚝뚝 떨어지는 유주송이들이 마당에 나뒹굴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오고 차조심해”

“네”

“영아가 학교라도 다녔더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빨리 갔네... 이쁜 꽃봉오리 한번 펴보지도 못해 보고 지다니, 휴~~”

“영아 불쌍하다... 그리고 아줌마도 아저씨도...”

“그래”

퀴라의 어머니도 영아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지 학교 가는 퀴라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셨다.

그리고 퀴라가 골목길안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퀴라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서 계셨다.

“에구, 주인 없는 것이 표시가 나네... 잘 익고 있던 여주도 이제 쓸모가 없게 되는구나!”

퀴라어머니는 마당에 널브러진 유주송이들을 주워 쓰레기통에 담고 마당을 정리하셨다.

주인아주머니가 집에 돌아왔을 때 떨어진 유주송이들을 보았을 때, 영아를 생각하며 가슴 아파할 생각을 하니 퀴라의 어머니는 모든 슬픔의 원인이 되는 것들을 모두 치우고 싶어졌다.

집 주변에 나뒹구는 자갈돌조차도 한쪽으로 치워두고 영아가 마지막으로 퀴라와 누워있던 들마루도 깨끗이 닦아서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한쪽으로 치워두었다.

“가엾어라, 가엾어라, 영아가 좋아하는 머나먼 하늘나라 별에 가서는 꼭 건강하고 행복하게 학교도 다니며 꽃 한 송이 예쁘게 피워보렴”

퀴라의 어머니는 잠시 들마루에 앉아 영아의 모습을 떠올렸다. 퀴라도 학교수업 내내 영아의 모습이 떠올라 공책에 영아,영아, 잘 가...라는 글자만 쓰고 있었다.

그런 모습들이 선생님의 표적에 걸려들었다. 퀴라의 속마음을 모르시는 선생님으로부터 퀴라는 결국 벌을 받아야만 했다.

“현주 수업시간에 딴생각하고 공책에 낙서하고 뒤에 나가 손들고 있어”

퀴라는 수업시간에 벌을 받았다. 교실 맨뒤로 나가 손을 들고 펑펑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선생님은 퀴라의 모습이 안쓰러운 듯 다시 자리로 돌아오라고 했다. 하지만 퀴라는 조금 더 벌을 받고 싶었다. 더 울고 싶었다.

영아에 대한 슬픔이 이렇게라도 표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더욱더 서글피 울고싶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하루는 선생님과 반친구 모두 퀴라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퀴라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향했고 방안에 가방만 던져두고 곧바로 귀옥이네 집으로 향했다.

영아가 없어서인지 퀴라는 텅 빈 주인집 앞마당을 지나치고 싶지 않았지만 늘 그 앞마당을 지나쳐야만 밖으로 나갈 수가 있었기에 후다닥 뛰어 지나쳐갔다.

양철문을 열고 건너편 귀옥이네 집문을 열고 들어가 귀옥이를 불렀다.

“귀옥아 노올자~ 귀옥아 노올자~”

“누구야?”

“응 나 현주야”

“들어와”

오늘은 귀옥이가 학교에 가지 않은 듯해 보였다.

“귀옥아? 오늘 너 학교 안 갔어?”

귀옥이는 백일 갓 지난 막내 동생을 업어 재우며 귀옥이는 자기의 엄지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마치 사탕이라도 쪽쪽 빨아대듯 침을 질질 흘리며 시커먼 때국물이 묻은 손가락을 입속에 넣고 있었는데, 퀴라는 그 모습이 그냥 귀옥이의 모습이라 여겼으며 조금 더 친근하다고 느껴졌을 뿐이었다.

“응. 우리 엄마가 오늘은 가지 말래, 동생 돌봐줄 사람 없다고...”

“그래? 좋겠다”

“좋기는 뭐가 좋냐? 내 동생들 봐라! 얼마나 힘든데, 나는 학교 가는 게 더 좋아”

“그렇구나! 그럼 내가 놀러 올 때마다 도와줄 테니까... 오늘은 아저씨네 놀러 갈까?”

“글쎄, 그래... 가자”

귀옥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해결책을 찾은 듯 바로 아래 동생들은 집에 두고 막내 동생만 업고 퀴라와 함께 아저씨네 집으로 갔다.

“아저씨? 아저씨?”

“누구니?”

“귀옥이에요”

“어서 와, 어~ 앞집 현주도 왔구나!”

따뜻하게 맞아주는 아저씨 행동에 퀴라는 어떠한 부담도 없이 귀옥이를 따라 들어갔다.

쪽문을 열고 들어간 어두컴컴한 방안 아랫목에는 아저씨가 벽에 기대어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 벽에 기대어 쌓여있는 것은 역시 또 만화책이었다.

“우와 만화책이 왜 이렇게 많을까? 아저씨 부자인가? 그런데 왜 이런 데서 살지?”

퀴라는 혼자 이상하다는 듯 생각을 했지만 금세 그 방에 적응하고 방한쪽에 앉았다.

“만화책 읽을래? 여기 많아, 골라 읽어”

“네!”

아저씨도 귀옥이도 퀴라도 아무 말 없이 만화책을 넘기며 책을 읽었다. 간간히 귀옥이의 훌쩍거리는 코 먹는 소리-누런 코를 항상 달고 다녔던 귀옥이가 훌쩍거리다 들이마시다 책을 읽으며 등에 업힌 동생을 어울렀다. 그리고 얼마 후 또 다른 남자애들 3명이 들어왔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우리 왔어요”

“그래 들어와” 그 남자애들 중에는 문석이도 있었다. 마치 퀴라를 흘겨보는 듯 문석이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문석은 이상하다는 듯 퀴라를 한번 쳐다보더니 아저씨네 집이 그들의 아지트인 앞다퉈가며 책을 읽어댔다.

그러다가 문석이는 퀴라가 읽고 있는 만화책을 낚아채며,

“야, 그 책 내가 어제 읽다가 오늘 읽으려고 거기 나둔거야 내놔”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지”

윤석이한테 호되게 당했을 텐데도 문석은 다른 쪽으로 퀴라에게 앙갚음이라도 하듯 책을 낚아채버렸다.

“얘들아? 싸우면서 보면 안 되지? 착하게 잘 읽는 사람에게는 아저씨가 쭈쭈바 사줄게”

“아싸! 좋아요”

아이들은 서로 먹겠다며 각자 책을 조용히 읽고 있었다. 그렇게 30여분이 지났을까 아저씨는 남자아이들에게 50원짜리 5개를 주며 쭈쭈바를 사 오라고 했다.

그리고 귀옥이는 동생들 잘 있나 확인하러 집에 갔다 온다며 나가버렸다.

그 방에는 아저씨와 퀴라 단둘만 남아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현주야?”

“네?”

“이리 가까이와 봐”

“네?”

퀴라는 다정한 아저씨의 말과 행동에 스르르 녹아들 듯 자연스레 다가갔다.

“아저씨 어때?”

“참 좋아요”

“그래? 그러면 아저씨네 집에 자주 올래?”

“네”

“다음에 올 때는 혼자 올래? 귀옥이 쟤는 동생들 돌봐야 해서 여기 오면 귀옥이네 엄마한테 혼나, 아저씨도 귀옥이 엄마한테 혼나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 그렇군요, 알았어요”

퀴라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무렵 남자아이들의 발자국 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쭈쭈바 사 왔어요”

문밖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리자마자 아저씨는 퀴라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아저씨는 벌떡 일어나서 문을 열어주었다.

퀴라에게는 남자아이들이 왼손으로 쭈쭈바를 하나씩 잡고 오른손으로 만화책을 넘기며 책을 보는 모습들이 마치 골목대장들의 또 다른 모습-열정적으로 책을 읽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퀴라도 쭈쭈바를 맛있게 먹고 어두워질 무렵이 되었을 때 아저씨네 집에서 나왔다.

퀴라는 집으로 가야 하는데 영아가 없는 주인집마당을 지나쳐야 한다는 생각과 집에 가면 무서운 아버지가 계시니 더욱더 집에 들어가기 싫어졌다.

그 아저씨네 집에 다녀온 후 퀴라는 더욱더 아버지가 계신 집에는 가기 싫어졌다.

하지만 딱히 갈 곳도 없으니 그냥 집으로 가야만 했다.


역시나 퀴라의 아버지는 퀴라를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셨다.

“계집아이가 어딜 쏘다니냐? 너희 엄마 닮아가?”

“저 인간은 늘 못 된 건 나 닮아간다고 하냐? 아이고 내 팔자야”

또 시끌벅적한 방 안에서 아무 말 없이 방 한편에 앉아 퀴라는 아버지 몰래 엄마의 장롱 속 콩쥐팥쥐 동화책을 꺼내 읽었다.

그 동화책 속 구박받는 팥쥐가 되어 살아 보는 것도 행복하다고 느꼈던가!

팥쥐에게 언젠가는 기쁨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퀴라는 행복하게 읽고 또 읽어댔다.

그리고 그날 밤에는 뻐꾸기 소리도 드라퀴라 부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퀴라에게는 술 취한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에 잠 못 드는 밤이었을 뿐이었다.

잠시 잠이 들었다가 뻐꾸기 소리와 퀴라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떠보았으나 그것은 퀴라에게만 들리는 환청이었고 꿈속이었다.

잠 못 이룬 밤을 지나 어제 그제와 같은 아침이 되었을 퀴라는 기계적인 듯 가방을 열어보고 준비물을 챙기고 밥을 먹고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현주야? 오늘은 학교 갔다 일찍 와”

“왜요?”

“엄마가 오늘 멀리 좀 갔다 와야 하는데 집에 아무도 없잖아 그러니 너라도 일찍 집에 와 있어 알았지?”

퀴라의 어머니는 멀리 다녀오셔야 한다며 아무도 없는 주인집과 집을 비워두는 것이 마음에 걸려 퀴라에게 일찍 집에 오라고 하셨다.

퀴라는 알았다고 고개만 끄덕인 채 학교로 향했다.

순남이언니네 들려 학교를 같이 가고 싶었으나 달걀귀신을 보여주지 못했으니 퀴라는 거짓말쟁이가 되었다는 생각에 순남이 언니에게 미안해서 다시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개숙인채 퀴라가 혼자서 터덜터덜 걷고 있을 무렵,

“현주야? 같이 가자~”

퀴라의 뒤에서 문석이와 그 또래 남자아이들이 다정히 불러댔다.

“왜?”

“너 오늘 아저씨네 집에 또 갈래? 오늘 맛있는 거 사주신대”

“그래? 언제 갈 건데?”

늘 귀찮게 괴롭히던 남자아이들이 웬일로 다정하게 아저씨네 집에 가자며 말을 걸어왔다.

“학교 끝나고 조금 어두워지면...”

“그래? 알았어 그럼 같이 가자”

퀴라는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다정히 말을 건네주며 같이 가자는 말에 금세 친구가 되어버린 듯 기뻤다.

교실에 도착해서 한참 동요를 흥얼거리며 자리에 앉아있을 무렵 앞에 앉아있던 민석이가 말을 걸어왔다.

“현주야? 너 오늘 뭐 해?”

“나 오늘 집에 일찍 가야 해 엄마가 일찍 오라고 했어”

“그래? 그럼 다음에 가자”

“어디를 가는데?”

“응, 오늘 튀김집에 같이 가자고...”

“그래?”

퀴라는 순간 윤석이 생각났다. 튀김집을 가면 윤석을 만날 것 같은 기분, 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

엄마가 일찍 오라는 말도 생각나고 또 아저씨네 집에도 가야 하기에 민석이랑 갈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퀴라는 민석에게 미소를 지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퀴라는 집에 도착해 영아네집을 둘러보았다.

“정말 영아가 없네...”

그리고 퀴라는 방에 들어가 백설공주 동화책을 읽었다.

“우와, 나도 예쁜 백설공주가 되고 싶다... 멋진 왕자님이 나타나서 나를 말에 태우고 가면 얼마나 멋질까?”

백설공주 동화책을 읽고 또 읽으며 상상 속의 왕자님을 만나고 있을 무렵 엄마가 오셨다.

“아이고 힘들다.”

“엄마? 어디 다녀오셨어요?”

“응 멀리 갔다 왔어, 대성이도 피곤한지 잠이 들어서 업고 오느라 더 힘들었어, 아이고 피곤햐”

퀴라의 어머니는 잠이든 대성이를 눕히고 그 옆에 나란히 누우셨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 퀴라는 엄마에게 거짓말 – 순남이네 집에서 공부한다며 집을 나왔다.


그 골목길안, 퀴라와 남자아이들은 해가 질 무렵 비상대책회의라도 하듯 골목길안에서 만났다.

그리고 아저씨네 방으로 들어가 만화책을 읽었고 퀴라는 아저씨의 다정한 모습에 행복해했다.

조금 이상하다면 그동안 정신없이 떠들썩했던 남자아이들이 너무도 조용하게 책을 읽고 있었고, 눈빛은 책은 읽는 둥 마는 둥 그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오줌이 마려운 듯 일어설 듯 말 듯 주저하는 듯해 보였다.

그리고 얼마 후 아저씨는 남자아이들에게 동전 몇 개를 주면서 시장에 다녀오라고 말씀하셨다.

남자아이들은 마치 그 시간에 약속이라도 한 듯 “네” 라는 한마디에 동전을 받아 들고 부리나케 나가버렸다. 남자아이들이 나가자마자 아저씨는 퀴라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을 했다.

“현주야? 이리 와봐”

“네 “

아저씨는 퀴라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아저씨의 가슴에 손을 가져다 놓았다.

“어때? 아저씨는 현주가 참 맘에 들어서...”

순간 아저씨는 창가를 바라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귀옥이네... 쟤는 여기 오면 안 되니까... 아무도 없는 것처럼 우리 불 끄자!”

“네”

순간 아저씨의 방은 불이 꺼졌고 문고리까지 잠가 버렸다.

퀴라는 귀옥이가 오면 안 되니까 그런가 싶어서 아무도 없는 것처럼 숨죽이며 아저씨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현주야 이리 와”

아저씨는 갑자기 달려들며 퀴라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아저씨... 왜 그러세요?”

“쉿! 조용히 해 안 그러면 큰일 난다”

퀴라는 순간 무서워졌다,

“아저씨... 싫어요”

아저씨는 마구 떠미는 퀴라의 손을 꼭 잡고 아저씨의 입술을 퀴라의 얼굴 여기저기 가져다 댔다.

퀴라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꽉 잡은 팔도 너무 아팠고 험한 가시 같은 입술이 퀴라의 입을 막아버렸기에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아저씨는 퀴라의 작고 여린 손발조차 바둥거릴 수 없게 무서운 힘을 가하고 있었다.

퀴라는 무서운 아저씨로부터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며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던 중 퀴라의 귓가에 퀴라를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퀴라야? 퀴라야?”

퀴라를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아저씨는 창문밖으로 고개를 돌렸으며 그 순간 방심한 아저씨를 밀치고 퀴라는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 순간 그런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9살 퀴라는 괴물에게서 탈출했다.

하지만 퀴라에게는 문고리를 여는 시간조차 엄청난 시간이 흐르고 있는 듯해 보였고, 뒤에서는 마치 끈적이는 괴물의 엄청난 액체가 쏟아져 그 속에 갇혀 버릴 것 같은 공포감과 잡히면 죽을 것 같은 순간이었기에 온 힘을 다해 빠져나와야 한다는 생각뿐이였다. 하지만 퀴라의 생각처럼 그리 빠르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문밖으로 뛰쳐나와 골목길에 다 달았을 때 퀴라의 모습은 전쟁을 치르고 나온 모습이었다.

양갈래로 묶었던 머리카락들은 헝클어져 엉켜버린 철수세미처럼 되어 버렸고, 노란 원피스의 단추들은 떨어질 듯 말 듯 간신히 매달려 애원을 하고 있었다.

“오빠?”

“퀴라야? 괜찮아?”

“오빠? 어떻게 알고 왔어?”

귀옥이네 집 입구 골목길에 윤석이 서있었다.

윤석의 얼굴도 퀴라의 얼굴도 시간이 멈춘 듯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이 상황을 이야기해야 할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윤석이 먼저 말을 했다.

“아.... 애들이 너 여기 들어갔다는 말에 놀라서 왔어”

“응, 아저씨가.... 이상해”

“그래.... 다친 데는 없어?”

“응, 얼굴이 좀 아파”

"왜? “

퀴라는 “아저씨가 턱수염으로 퀴라의 얼굴을 비벼대서 아팠어!” 라는 말을 하려고 했으나 순간 같이 있었던 남자아이들이 바짝 다가와서는 “너 당했지? 어땠어?” 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퀴라는 어떠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퀴라야 어서 집에 들어가”

윤석은 동네 아이들에게 화를 내며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아무 일 없었다잖아” 라고 소리치며 쫓아버리고 퀴라의 머리를 손으로 매만져 주며 집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그리고 퀴라의 어머니도 퀴라가 그 아저씨네 집에 있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문 앞으로 달려 나와 퀴라의 몸을 여기저기 살피며 “거길 왜 갔니?” 라며 퀴라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면서 소리치셨다.

“엄마 잘못했어요, 저는 그냥 아저씨가 잘해주시길래...”

“아이고, 내 팔자야, 이제는 자식까지 속 썩이네”

우시는 엄마의 모습에 퀴라도 엉엉 울어버렸다.

무슨 잘못을 한 것인지, 무엇이 엄마의 속을 썩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던 퀴라는 그저 그 상황에 울어 버리는 게 정답인 듯 큰소리로 울었다.

그리고 퀴라는 그 후 아저씨의 모습이 보이기만 하면 후다닥 숨어버렸다.

잘해주는 아저씨가 괴물이 되어버리기까지 퀴라는 아버지와 다른 가장된 따뜻한 정의 유혹에 빠져들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아저씨는 아저씨가 아닌 괴물로 보였다.

그리고 동네 남자아이들도 괴물의 유혹, 쭈쭈바가 끈적한 괴물의 무서운 액체인 줄도 모른 채 그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잠시나마 퀴라를 무서운 괴물에게 넘겨버린 것이었다.

퀴라는 그런 일이 있은 후 여자와 남자라는 경계의 선에서 낯선 남자들에게 한치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퀴라의 어머니도 매일같이 퀴라에게 아침인사처럼 반복적으로 말을 하셨고 그 말은 예방주사와도 같은 것이었다.

물론 퀴라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들이 퀴라의 아버지에게 비밀이라고 말씀하셨다.

“현주야? 오늘 학교 끝나면 재깍 집으로 와 알았지? 어디 가면 절대 안 되는 거 알지? 누가 뭐 사준대도 따라가면 안 되고 알았지? 그리고 너희 아버지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고, 알면 난리 난다...”

“네”

이제 퀴라는 학교 집 학교 집 이렇게 다람쥐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했다.

“엄마? 동화책 오늘은 백설공주 주세요”

“그래”

백설공주가 되고 싶었다. 퀴라는 이제 하얀 백설공주가 되어 퀴라를 구해준 멋진 왕자님과 평생을 행복하게 살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잊었던 영아가 보고 싶어졌다.

“영아도 백설공주가 되고 싶다고 했었는데...”

동화책을 읽다가 일어나 영아네집으로 갔다.

이제 아주머니 아저씨도 돌아오실 때가 되었을 텐데 아직도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왜 아무도 없지? 유주도 다 익어서 많이 떨어져 있고 저거 그냥 떨어져서 썩으면 아까운데...”

이런저런 걱정을 하다 새빨갛게 익어 터져 버린 유주를 보며 지그시 미소를 지었다.

“윤석오빠는 유주를 싫어해, 나도, 나도 싫어”


퀴라는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 영아네 아줌마 아저씨 왜 안 오셔?”

“응 이 집 팔았대, 이제 안 오실 것 같아 아마도 이사 갈 때나 오겠지? 아참 현주야? 우리도 다른 데로 이사 갈 거야”

“정말? 어디로?”

“시골로... 지난번에 엄마가 먼데 갔다 왔잖아, 집보고 온 거였어”

퀴라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이사라는 말에 한편으로는 홀가분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것저것 아직 남아있는 숙제를 남겨둔 채 가버리는 것 같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 그럼 정확히 언제 이사 가요?”

“다다음주쯤에 갈 거야”

“그렇게 빨리?”

“응 아빠 출근해야 해서...”

갑작스러운 퀴라아버지의 직장 인사발령으로 인해서 먼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시골로 인사발령이 나게 되면 좌천이란 의미로 무언가 잘못을 하였던지 아니면 정말 일이 힘들어서 옮겨 달려든지 그런 이유 외에는 다른 곳으로 가기가 쉽지 않았다.


10

“뻐꾹뻐꾹... 뻐꾹뻐꾹 퀴라야~~”

“어, 오빠?”

잠을 자고 있던 퀴라의 귓가에 퀴라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니? 이상한 소리가 담뒤에서 계속 들리는데 뭐지?”

퀴라가 일어나려는 순간 퀴라의 어머니가 이상하다며 일어나셨다.

“뻐꾹뻐꾹, 뻐뻐꾹, 퀴라, 드라퀴라....”

“엄마? 왜 일어나세요? 내가 방귀 뀐 건데 이히히히”

“얘가 왜 이래? 아빠랑 동생 잠 깨우려고 야? 작게 말해...”

퀴라는 퀴라를 부르는 소리 보다 더 크게 엄마에게 말도 안 되는 말들을 이어댔다.

“엄마~ 저 화장실 갔다 올게요

“응, 조심해...”

퀴라의 어머니도 잠이 드시는지 잠꼬대인 듯 대답을 하시더니 어느새 코를 고셨다.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와 양철대문을 조심스레 열고 벽돌하나로 다시 문이 닫히지 않도록 문을 살짝 고여 두었다.

“퀴라야? 우리가 얼마나 불렀는지 알아? 아우 목아퍼” 윤석의 옆에 붙어있던 연기가 입을 삐죽거리며 퀴라에게 쏘아댔다.

“어, 오빠 미안해, 잠이 들었었는데... 오빠들 왜? 무슨 일이야? ”

“응, 우리 아지트 때문에...”윤석이 퀴라에게 말을 건넸다.

“왜? 무슨 일인데...”

“오늘 저녁에 우리 아지트가 부서졌어...”

윤석이 아쉬워하며 퀴라에게 말을 하는 내내 연기는 퀴라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머리카락 하나하나 옷매무시 하나하나 손가락 하나하나 궁금증을 풀어내려는 듯 뚫어져라 바라보며 퀴라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기는 무언가 알고 싶어 하는 듯 퀴라에게 질문을 했다.

“퀴라 너, 그거 사실이니?”

“뭐? 뭐가?”

“너, 저기 변태아저씨가...”

말을 이어가려는 연기에게 윤석은 커다란 손으로 연기의 입을 막아버렸다.

“아.... 왜 이래... 아파”

“퀴라야 오늘은 안 되겠다. 연기가 좀 이상하지? 오늘 뭐 잘못 먹었는지 아까부터 이상해, 아지트가 부서졌고 이제 벽돌도 없어서 만들 수가 없어 그러니까....”

윤석은 연기의 입을 막으며 뒷걸음질을 치고 퀴라에게 손짓을 했다.

“들어가 집으로 들어, 잘 자”

“응... 오빠..... 오빠도 잘 자....”

퀴라는 우울해졌다. 아지트가 없어졌다는 것 보다도 무엇인지 모를 허전함과 부끄러워해야만 하는 듯한 퀴라의 자신이 너무도 슬펐다.

“우리 집 이사 가는 거 오빠한테 말해줘야 하는데, 아무 말도 못 하고...”

퀴라는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퀴라는 잠 못 이룬 탓인지 부스스한 모습으로 학교를 갔다.

“현주야? 너 전학 간다며? 정말이야?”

앞에 앉아있던 민석이가 뒤돌아보며 퀴라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알았어?”
“나만 알고 있어, 너 정말 다른 학교에 가는 거야?”

“응 우리 집 이사 간 대”

“그렇구나”

민석은 퀴라가 전학 간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아쉬워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퀴라도 민석이와 조금 더 일찍 친해졌더라면 하는 표정으로 아쉬워했다.

퀴라는 수업시간 내내 민석이의 뒷모습을 공책에 복사하듯 열심히 그림만 그렸다. 그리고 청소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특별실로 자리를 옮겨 청소를 시작했다.

“현주야? 괜찮아? 다친 데는?”

청소를 하고 있던 퀴라에게 민석이가 찾아와 퀴라의 몸 여기저기 살피며 다급히 물었다.

“.....”

순간 퀴라는 무슨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아저씨.... 그 일을, 민석이도 알고 있는 걸까?”

퀴라의 가슴을 마구 찔러대는 듯한 민석의 말에 더욱더 놀라 말을 하지 못했다.

“현주 너 철봉에서 떨어진 거 아니야?”

“나? 나 아닌데...”

“하하하하 하하하하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너 아니구나?”

퀴라네 반에는 퀴라와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 김현주라는 친구가 있었다.

선생님들은 키가 큰 김현주를 큰 현주라고 부르고 키가 작은 퀴라를 작은 현주라고 불렀었다.

운동장청소였던 김현주가 철봉에 올라갔다가 떨어져서 턱을 다쳐 양호실로 갔었는데 민석은

“현주가 철봉에서 떨어져 다쳤어”라는 소리에 퀴라가 다친 줄 알고 달려와 퀴라를 찾았던 것이다.

“다행이다... 많이 다친 줄 알고,” 민석은 급하게 오느라 청소하던 빗자루를 들고 왔다. 그리고 퀴라가 다치지 않은 모습을 확인한 후 다시 교실로 돌아가 청소를 했다.

퀴라는 행복했다. “큰 현주가 다쳤지만 내가 다쳤으면 더 좋았을걸...”라는 생각도 하며, 그랬으면 또 어떤 행복한 일이 일어날까?라는 생각이 퀴라의 뇌리 속을 스쳐갔다.

그리고 하굣길에 민석이가 따라왔다.

“자, 이거, 받아.”

“뭔데?”

“너 이거 좋아하잖아, 초콜릿”

“고마워, 잘 먹을게”

“그래, 그리고 이거...”

“이게 뭔데?”

“우리 집 주소야 너 이사 가면 여기로 편지해”

“그래 알았어”

민석은 새로 전근오신 키다리선생님의 아들이었다. 키다리선생님이 전학담당일을 하셨기에 민석이는 친구들보다 더 먼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퀴라는 주소가 적힌 종이를 가방 안에 넣어두고 집으로 향해갔다.

골목길안에 다 달았을 때 부잣집 대문 안에서 음악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줌마들과 마법사아저씨가 계신 곳이네... 가서 보고 싶다”

퀴라는 들어가서 보고 싶었지만 이제 더 이상 들어갈 수도 없었다.

“우리 엄마 이제 못 가시지, 내 잘못 때문에 아빠한테 혼나고 싸우게 하고...”

퀴라는 애꿎은 자갈돌만 텅텅 차버리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현주 왔니? 얼른 들어와”

“네”

퀴라는 급히 반겨주시는 퀴라의 어머니 말씀에 신발도 저만치 날려 버린 채 후다닥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나갔다 올 테니 동생하고 잘 놀고 있어 알았지?”

“어디 가시는데요?”

“잠깐 다녀올 곳이 있어 알았지?”

“네”

퀴라의 어머니는 퀴라와 동생을 남겨둔 채 나가버리셨다.

그리고 그 다음다음날도 또 그 다음다음 날도 그렇게 퀴라의 어머니는 퀴라가 아지트를 가지 않는 날만큼 외출을 하셨다.

“아지트도 없고, 윤석오빠도 못 보고, 동생하고 노느라고 나가지도 못하네 대성아? 우리 낯잠 자자”

퀴라는 노는 게 귀찮은지 동생에게 낮잠을 자자고 말했다. 하지만 문밖에서 퀴라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왔다. 엄마가 도넛 사 왔는데...”

“우와 신난다. 엄마?”

퀴라와 동생은 엄마를 반가워하며 도넛봉지를 먼저 받아 열어젖혔다.

“그래 맛있게 먹어, 그리고 퀴라는 내일 학교 갔다 오면 이제 다른 학교에 가야 해, 내일은 인사 잘하고 와라”

“엄마? 나 다른 학교로 가는 거야?”

“그럼, 이사 가는데 학교도 옮겨야지”

“나 싫은데...”

“싫긴 뭐가 싫어? 좁아터진 골목 안에 이상한 사람도 있고 얼른 떠나는 게 상책이여 가자”

“그래도 좋은 사람도 있는데...”

아직 남아있는 아지트에 대한 이야기와 동네 언니들과의 고무줄놀이, 그리고 영아를 잘 지켜주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과 함께 더 큰 아쉬움은 윤석오빠와 헤어지는 것 그리고 민석과 이제 친해졌는데...라는 아쉬움 커졌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곳이 어디인지도 자세히 모르는 퀴라는 윤석에게 미리 말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지난 그 일 이후 윤석은 담벼락에 붙은 뻐꾸기 역할도 하지 않았고 퀴라를 부르는 퀴라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퀴라네 방은 어수선했다.


“현주야? 이 책들은 다 버리자 다음에 또 사 줄 테니 너덜너덜한 책은 버리자”

“안 돼요 그건, 제가 젤 좋아하는 책인데...”

너덜너덜해진 백설공주 동화책이 너무나 낡아버려 한 장 한 장 춤을 추고 있었다.

하지만 퀴라는 소중한 백설공주 책을 버릴 수가 없었다. 엄마가 버리려 하는 백설공주 동화책을 얼른 책가방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짐을 싸시는 퀴라의 어머니를 뒤로한 채 퀴라는 방을 나갔다.

“영아야? 안녕! 이제는 나도 떠날 거야, 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너무 그립다. 꼭 행복하게 잘 지내고, 그리고 영아야? 미안해! 더 잘해주지도 못하고 잘 놀아주지도 못하고 너희 집 땅콩잼, 초콜릿 먹기만 하고 또 유주도 훔쳐가고, 내가 정말 잘못했어, 영아 너 다 알고 있겠지? 하늘나라에서는 다 보이지? 나 반성하고 있어...

그리고 나 이제 내일이면 나도 여기를 떠나는데, 너를 지켜준다고 해놓고 약속도 못 지키고... 미안해, 하지만 이사 가는 그곳에서도 너의 별은 그대로 있을 테니 볼 수 있을 거야, 그럼 다시 만날 날까지 안녕”

영아랑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들마루에 걸터앉아 퀴라는 영아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리고 퀴라는 양철대문을 열고 골목길을 서성였다.

“윤석오빠가 지나갔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알려줄 수 있는데, 나 이사 간 대”

퀴라는 윤석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서성였다. 하지만 윤석은 보이지 않았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귀옥이네 세 들어 사는 그 무서운 괴물 아저씨가 문을 열고 나오고 있었다.

퀴라는 놀란 마음에 뒤를 돌아 양철대문을 꼭 닫아 버렸다.

그리고 양철대문을 꼭 잡아당겼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떠한 힘이 반대편에서 대문을 잡아당기는 듯했다. 그 괴물이 잡아당기며 퀴라를 잡아가려는 듯 힘을 주어 잡아당기고 있었다.

퀴라는 더욱더 힘을 모아 문이 열리지 않도록 잡아당겼다.

“아, 아, 안돼”

퀴라는 겁이 났다. 그 괴물이 퀴라를 본 후 퀴라가 들어간 양철대문을 잡아당기는 것 같아 너무 무서웠다.

“왜 이리 안 열리지... ”

순간 주인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괴물이 아니다”

“현주구나! 왜? 문을 잡고 있어?”
“네... 그냥,,,”

“그동안 잘 지냈지? 이삿짐은 다 쌌어? 아줌마도 현주가 보고 싶을 거야”

“네...”

“그동안 우리 영아랑 잘 놀아줘서 고마워... 아줌마가 현주한테 주고 싶은 게 있는데... 잠시 따라 들어올래?”

“네”

퀴라는 무척 궁금했다. 영아에게 미안하다고 고백했는데 선물을 받아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우리 영아가 아끼던 것들이야, 처음에는 태워 버리려고 했는데 현주생각이 났어, 이거 현주한테 주면 현주가 잘 간직해 줄 것 같고 영아도 그러길 바랄 것 같아서”

퀴라는 작은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곳에는 영아랑 함께 가지고 놀았던 화투, 인형, 그리고 영아가 자주 읽었던 백설공주 동화책이 들어있었다.

영아의 백설공주 동화책은 아주 깨끗했다. 팔에 힘이 없었던 영아는 아주 조심스레 책장을 넘겼었고 퀴라가 원하는 것처럼 멋진 백마 탄 왕자를 그리던 여린 소녀가 보았던 책-백설 공주였기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잘 부탁한다 그리고 영아를 잊지 말아 줘, 우리 영아 아주 착하고 예쁜 딸이었는데...”

주인아주머니는 퀴라의 손을 잡고 영아를 생각하며 우셨다.

“현주야? 이사 잘하고 이사 가서 현주도 학교 잘 다니고... 내가 너무 오래 잡아두었구나 얼른 가서 짐 싸 아줌마가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퀴라는 상자를 안고 집으로 갔다.

퀴라네 방안에는 내일 아침 학교 갈 때 필요한 가방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보자기와 상자에 담겨 있었다.

“현주야 얼른 정리하고 저녁 먹고 일찍 자자, 그리고 내일 학교 갔다가 와서 바로 이사 가자”

“네”

퀴라는 그날 저녁잠이 오지 않았지만 자야만 했다.

뻐꾸기소리도 퀴라를 부르는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그날밤은 기찻소리마저 고요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학교에 도착해 아침조회시간이 되기 전에 우유상자를 교실로 가져다 놓았다. 그날 우유당번은 아니었지만 민석이가 우유당번인 것을 확인하고 민석이가 오기 전에 우유박스를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아침 조회시간이 되었을 때 담임선생님이 퀴라를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을 하셨다.

“현주 앞으로 나와서 인사하자 ”

담임선생님은 퀴라를 교실 앞으로 나오게 했고 마지막 인사를 하게 했다.

“얘들아 안녕! 나 이사 가기 때문에 전학을 가야 해서...”

퀴라는 순간 눈물이 났다.

“현주야 잘 가”

“응 안녕”

같은 반 친구들이 잘 가라며 인사를 해주었다.

짐을 챙겨 나가는 퀴라에게 민석이는 짐을 들어주며 따라나섰다.

“현주야? 잘 가고 꼭 편지해 알았지?”

“응 알았어”

“잘 가”

“응”

“그리고, 우유, 고마워...”

“.........”

교실문을 나와서 신발을 신고 있는 퀴라의 눈앞에 퀴리의 어머니와 동생이 서 있었다.

“어서 가자”

“네”

퀴라의 어머니는 퀴라의 책가방과 양손에 들려진 잡동사니들을 들어주시며 퀴라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민석은 퀴라의 모습을 지켜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퀴라도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데 퀴라의 어머니는 빨리 가야 한다며 재촉을 하셨다.

“어서 가자! 아직 짐을 다 싣지 못했어, 정리할 것도 남았고 아는 분들한테 인사도 해야 하니 이사 가려면 오후 늦게나 출발해야겠다”

“엄마? 그러면 저 오늘 수업 다하고 가도 되지 않아요?”
“아니야 그러면 더 복잡해져, 어서 가서 짐 나르는 것 좀 도와주고 너도 순남이네랑 귀옥이네 가서 인사도 하고 와”

“언니랑 귀옥이는 집에 없을 텐데...”

“없으면 있는 사람들한테 인사하면 되지”

퀴라어머니는 몸과 마음이 급하셨는지 퀴리의 말대꾸가 귀찮다며 먼저 빠르게 걸어가셨다.


이사 가는 날... 골목길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옆집 흰둥이만 나와서 아쉬운 듯 퀴라의 모습만 물끄러미 쳐다보는 눈길이었다. 가벼운 보따리 짐이나 작은 서랍장 하나하나를 들고 나와 손수레에 싣는 동안 퀴라의 시선은 윤석의 집을 향해있었다.

“말도 못 하고 가는데, 짐을 좀 천천히 나르면 오빠를 보고 갈 수 있으려나?”

퀴라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짐을 나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순남이네 집에 들어갔다. 하지만 너무도 조용했다. 바람에 펄럭이는 이불 빨래만이 퀴라를 반겨줄 뿐 아무도 없었다. 학교, 공장 두 곳 만이 정해진 그들의 삶 속에 여기저기 널려진 옷과 이불의 빨래들이 그네들의 바쁜 일상을 말해주는 듯했다. 바쁜 일상 그 자리에 그들이 급히 나간 모습들이 아직도 그림자처럼 머물러 있었다.

퀴라의 아버지는 직장에서 간단한 송별식을 하신다며 조금 늦는다고 퀴라아버지의 직장동료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말을 전해 들은 퀴라의 어머니는 불같은 성격으로 화를 내신다.

“아니 이사 가는 당일날 송별식이 뭐여? 빨리 와서 짐을 싸던지 나르던지 해야지 가장이 되어서 기가 막히네...”

발밑에 걸려든 세숫대야가 퀴라의 어머니 발끝에 차여 “쨍그렁”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내동댕이 쳐진다.

“현주야? 엄마 친한 아주머니들한테 인사하고 올 테니 동생하고 짐 잘 지키고 있어”

“네”

퀴라의 어머니는 부잣집나무대문을 열고 들어가셨다.

못다 배운 춤이 아쉬우신 듯 가장 먼저 그 부잣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셔서는 큰소리로 인사를 하신다.

때마침 사교춤을 배우러 온 아주머니들이 모여 있던 그 부잣집 방안.

퀴라는 손수레에 가득 담긴 짐들 위에 걸터앉아 멍하니 골목길안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던 동생을 위해 골목길안에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를 주워 동생과 공기놀이를 했다

“누나? 나 배고파” 동생은 배가 고프다며 퀴라를 애처롭게 바라다보았다.

“짐을 다 싸서 먹을 게 없는데, 어쩌지?”

“엄마 불러와”

“안돼 엄마는...” 퀴라는 무서우면서도 엄마에 대한 연민이 느껴졌다. 그래서였는지 퀴라는 동생을 달래며 조금만 기다리자고 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는데도 퀴라의 어머니는 나오시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못 배운 사교춤을 다 익히시며 즐거워하시는 듯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퀴라어머니의 시계는 멈춰버린 듯했다.

퀴라는 집으로 들어가 부엌을 살펴보았다. 부엌에는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주인집 부엌은 달랐다. 영아네 부엌을 지나치는데 그 부엌 안에 무언가가 퀴라의 시선을 멈추게 했다.

“어, 저거는.... 영아랑 놀아주면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땅콩잼”

퀴라는 머뭇거렸다.

“주인아줌마 아저씨는 집을 알아보신다고 멀리 가셔서 안 계시고, 영아도 없고, 아줌마는 땅콩잼이 싫다고 했는데, 그러면 저거 내가 먹어도 되는 것 아닌가?” 퀴라는 땅콩잼 병을 손으로 잡았다. 하지만 유주를 따다 들켰을 때 그 일들이 떠올라 다시 그 자리에 놓고 나왔다. 퀴라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

“누나? 나 배고파 엄마 부르러 가자”

동생은 배고프다며 퀴라에게 더욱더 보챘다. 퀴라는 더 이상 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부잣집 나무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방 안에서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퀴라는 잠시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방문이 열리며 아주머니 여러분이 나오고 계셨다.

“서운하네요.. 이사 잘하시고 종종 놀러 오세요”

“고마워요 저도 많이 아쉽고 서운하네요. 그래도 저를 위해 그동안 열심히 가르쳐주셔서 감사하고 많이 배웠습니다. 이사 가서도 잊지 않을게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나누시는 퀴라의 어머니를 잠시 바라보다 얼른 나가버렸다.

“그동안? 아, 그럼 엄마가 여기 춤 배우러 오신 거였나?”

퀴라는 엄마의 외출이 이거였구나!라는 확신이 들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동안 엄마에 대한 죄책감이 사그라드는 듯 미소가 지어졌다.

“현주야? 많이 기다렸지?”

“엄마 나 배고파”

퀴라의 동생은 배고프다며 엄마 치마를 붙잡고 “맛있는 거 사 주세요”라며 졸라댔다.

“그래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정말요?”

“응 우리 짐에 보자기라도 씌워놓고 시장에 가서 맛있는 거 먹자”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외식이란 것을 해보는 듯 퀴라의 어머니는 퀴라와 동생을 데리고 시장 안으로 갔다.

“여기서 먹자”

“..........”

퀴라는 퀴라어머니의 말씀에 잠시 머뭇거렸다. 그곳은 바로 윤석과 함께 왔었던 분식집.

“현주 너는 뭐 먹을래?”

“저는, 꼴뚜기”

“튀김 먹고 싶었구나?”
퀴라의 어머니는 퀴라가 주문한 꼴뚜기튀김과 어묵, 그리고 순댓국 두 개를 주문했다.

“어머 꼴뚜기 아가씨? 오늘은 엄마랑 왔구나!”

꼴뚜기튀김을 들고 오시던 주인아주머니가 퀴라를 알아채고는 말을 건넸다.

“꼴뚜기 아가씨? 호호호호 우리 현주가 꼴뚜기 아가씨였나?”

퀴라의 어머니는 우습다며 퀴라와 주인아주머니를 번갈아 바라보며 한참을 웃으셨다.

“오빠는 학교에서 안 왔어?”

“네...”

순간 퀴라는 당황하며 얼른 꼴뚜기튀김을 하나 집어 엄마에게 내밀었다.

“오빠가 어딨 어요? 얘는 동생만 있는데...”

“.........”

퀴라어머니의 말씀은 순간 가게 안을 어색하고 조용하게 만들었다. 퀴라는 더 큰 목소리로 엄마와 동생을 번갈아 바라보며 소리쳤다.

“맛있다. 그렇지?”

“응 엄마? 나 꼴뚜기 더 줘”

퀴라의 동생은 꼴뚜기 튀김이 맛있다며 더 주문을 해 달라고 했다.

“여기 튀김 좀 더 주세요. 현주 너도 어서 먹어”

“네”

퀴라의 어머니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행이다. 엄마가 요즘 복잡한 일들로 나에게는 관심이 덜 하신 거겠지?”

퀴라는 다행이다 싶어 엄마에게 꼴뚜기튀김 하나를 집어 엄마의 입속에 쏙 넣어드렸다.

“어쩜 그리 이쁘냐? 우애도 좋고 엄마한테도 잘하고 아주 효녀네 효녀”

주인아주머니는 부러우신 듯 퀴라의 가족을 쳐다보며 연실 부러움의 미소를 지으셨다. 한참을 맛있게 먹고 나서 퀴라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퀴라는 다시 이삿짐을 쌓아둔 골목 안으로 걸어갔다.

“너희 아버지가 얼른 와야 갈 텐데, 어머 벌써 트럭이 왔네”

퀴라네 짐을 옮겨줄 트럭이 미순이네 시멘트공장옆에 서있었다.

“아이고 지송하네요, 좀만 기다리셔요 얼른 짐 가지고 올게요”

“빨리 갔고 오셔요 한참 기다렸으니...”

짐트럭 아저씨는 종종거리며 뛰다시피 하시는 퀴라의 어머니에게 재촉을 해댔다.

퀴라와 퀴라의 동생도 빠른 걸음으로 엄마를 뒤따라 갔다. 손수레에 짐을 싣고 나와 큰 길가에 세워져 있는 트럭에 짐을 옮기는 동안 퀴라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누군가가 있었다.

“퀴라야? 잘 가 그리고 이사 가면 연락해”

그 사람은 바로 윤석이였다.

윤석은 퀴라에게 주소가 적힌 종이를 내어주며 잘 가라고 인사를 했다.

“오빠.... 학교 끝났구나”

“응, 학교에서 민석이한테 얘기 들었어, 그 얘기 듣고 바로 달려왔어”

윤석의 등뒤에는 아직도 책가방이 열린 채 윤석의 등에 애달프게 매달려 있었다.

퀴라는 다시는 볼 수 없을 줄만 알았던 윤석의 모습에 너무도 반가워서 하고 싶었던 말도 잊은 채 그냥 조용히 윤석이 내민 종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하교하던 동네 아이들도 나와서 손수레를 밀어주며 “잘 가”라고 퀴라에게 인사를 해주었다.

짐을 다 옮기고 나니 퀴라아버지도 오셨다

“내가 늦었지, 어서 타자”

퀴라 아버지는 동생을 무릎에 앉히고 그 옆에 퀴라의 어머니, 그리고 퀴라도 올라탔다.

좁은 트럭에 퀴라의 가족은 짐과 함께 어디론가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퀴라는 손에 들린 종이를 꼭 붙잡고 퀴라어머니의 무릎에 앉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아쉬움에 퀴라는 트럭 창밖만 바라보며 숫자를 세었다.

하지만 숫자는 트럭이 달리는 거리만큼 늘어났고 더 이상 셀 수 없을 만큼 늘어갔기에 퀴라는 그만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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