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여자와 남자
“봉자씨? 오늘도 만났네요!”
“어머, 남석씨? 오늘은 왜 이리 늦게 가요?” 그날은 봉자가 야근을 하다 좀 늦게 정류장에 서있었는데 남석도 그 시각에 그곳을 지나가다가 봉자를 불렀다.
“내가 맥주 당긴다는 걸 봉자씨가 알고 있었나? 하하하하”
“그러게요! 어쩐지 필이 오더라고요”
둘은 그렇게 단골호프집에 갔다.
“오늘은 배고프니 치킨 한 마리 주문하자고요, 오늘은 내가 살게”
남석은 봉자를 위해 치킨 한 마리와 맥주를 듬뿍 주문했다.
“맛있다. 역시 맥주에는 치킨이 최고예요 호호호”
봉자는 웃다 말고 희경의 전화가 생각이 났다.
“말할까? 잘살고 있다고 말할까? 그리고 얼른 잊으라고 할까? 아냐...이젠 나도 이렇게 좋은 데서 희경이 얘기-그런 오래된 사랑타령 이젠 듣기 싫어”
봉자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봉자는 우울해졌다.
“봉자씨? 왜그래? 오늘은 기분이 별로인 것 같아”
“사실은요 저도 한 남자랑 사귀고 있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 헤어졌어요”
“그래? 말도 안 하더니, 왜 헤어졌는데?”
“휴... 말하기도 창피한데요 우리 부모님이 반대하네요”
“그래? 봉자씨 부모님도 희경이 부모 같아?”
“아, 아니에요. 그건 아니고... ” 봉자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희경의 부모와 봉자의 부모는 다르다. 그리고 남석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은 그런 그 남자 M... 나이 많고 머리숱 없고 키 작고, 가진 것 없고, 그냥 비교하기 싫어 말할 수 없었다.
“이별 같지 않은 이별이에요, 그냥 어느 날 말없이 가버렸어요”
봉자는 비참해졌다.
“그래? 마셔, 마시고 잊어버려, 나처럼, 쿨하게 하하하하 ”
“하하하하하. 뭐야? 잊지도 못하고 뭘 쿨하게 잊어요? 얼마전 희경이한테 전화 왔었는데 희경이는 아주 잘 살고 있대요. 좀 있으면 애기도 태어나고...”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봉자는 남석이 아직도 희경이를 품고 있다는 생각에 너무도 샘이나서 말해버렸다.
희경이도 미련이 남아 남석을 걱정하는데 그말은 하지 못하고 미운말만 골라서 했다.
남석. 순간 남석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래. 그래야지”
“건배해요, 채인사람들끼리 내일을 위하여!”
그래도 봉자와 남석 둘은 서로에게 고마워했다.
위로의 대상과 위로해 줄 대상이 생겼다는 안도감.
“우리 이제 잊자, 그리고 우리 잘살아보자. 나도 봉자씨도 뭐 꿀릴 거 있어? 우리 건전하고 멋진 남녀야, 어디 뭐 우리 짝 없을까? 하하하하”
“그래요, 힘내자고요”
하지만 둘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가슴 찡한 추억이 남아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우산하나에 둘이 팔짱 끼고 걷던 그날. 서글픈 일이 생기면 위로해 줄 내편이 있었던 그날들.
하나같이 잊을 수도 지을 수도 없는 화석 같은 날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