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7년 전 우리 부부는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유일한 처녀총각으로서 당연히 맺어져야만 되는 유일한 커플이었죠!
뭐시가 그리 급했는지 결혼도하기 전에 우리 큰딸이 생겨서 얼른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결혼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창피한마음과 죄송한 마음으로 시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시부모님 그러시더라고요
“결혼준비도 안된 터이니, 우선 결혼식을 치르고 몇 년 들어와 살다가 분가혀라 ”하시네요
둘째 아들인 남편은 부모님 말씀 잘 듣는 효자였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로 끝나버린 우리의 결혼생활 시작
결혼시작부터 전 새벽같이 울어대는 수탉의 소리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3번 울릴 때면 부엌에 가있어야만 했고 밥숟가락은 커다란 밥숟가락으로 3번 떠서 얼른 먹고 화장하고 옷 입고 출근준비 해야 했습니다.
물론 회사의 저녁회식은 참가하는데 의의만둘뿐 끝을 보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거의다반사였죠!
그렇게 4년간을 살다 보니 우리 딸도 4살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화창한 봄날 토요일이었어요
남편이랑 같이 퇴근하면서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에 한마디 건넸습니다.
“나 민속촌가고 싶어! 한 번도 못 가봤어!”
신랑은 말이 없었습니다.
그 순간 “내가 미쳤지! 애는 왜 이리 빨리 가져서 제대로 결혼식도 못 올리고 여행도 못 가고, 시골집에서 시부모님 모시면서 살고,,, 그렇다고 늦잠을 잘 수 있나? 난 쉬는 날이면 더 바빠! 왜냐고? 하며 엉엉 울었습니다.
그동안의 설움들을 다 토해내 놓듯이 눈물이 마구마구 흘렀습니다.
그이유인즉,
시골이다 보니 시부모님은 휴일이면 날을 잡더라고요
농사일 즉 모내기, 밭일,,, 약주기 등등 4형제들이 있지만 다들 도시로 나가 사니 주말에 일하라고 연락할 수도 없고. 일이 많아서 연락할 때면 나름대로들 무슨 결혼식등에 참석해야 한다고 못 온답니다.
어쩔 수 없이 같이 사는 아들 가족이 할 수밖에요, 또 타지에 나가있는 형제들은 부모님과 같이 사는 사람-우리가족이 있기에 맘 놓고 연락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이 되면 하루 5끼를 준비해야 합니다.
아침 먹고 치우면 11시쯤 새이를 내 오라 합니다. 새이 내서 차려드리고 치우면 점심때 되고요
점심먹고치우면 새참... 새참내고 나면 집안청소 빨래, 시골이다 보니 흙먼지에 빨래는 왜 그리도 더러운지, 손빨래해야 하고요, 저 정말 그 순간 원하는 거 있다면 내 등한 번 방바닥에 붙여보는 거였어요
이렇게 밥 차리고 집 치우고 빨래하다 보면 고생스러운 휴일이 가네요. 그 휴일이 지나면 또 출근 똑같은 한 주가 또 시작되는 거죠
그렇게 평일 출근하고 퇴근하고 나니 또 찾아온 토요일 오후 남편과 같이 퇴근을 하면서 정말 집에 가기 싫던 그날. 그날은 남편에게 많이 투덜댔습니다.
“에구 난 주말이 싫어! 휴~~ 한숨을 쉬며 혼자 중얼거리며 아무 말 없이 입만 뾰루퉁하게 나와있었답니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난 후 설거지가 끝날 무렵 남편이 저를 부르더군요
“여보? 낼 거기 가자! 근데 부모님과 같이 가자”이러는 거예요
전 잠시 생각했어요(생각: 내가 부모님과 함께 가면 차도 신랑 옆에 못 타고 밥도 싸가지고 가라 하실 테고...)그리고 난 후
“안.. 안 갈래”하며 일어서는데 남편이 “ 아니다 그냥 우리끼리 가자”하지 뭐예요
그날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남들은 이럴 때 기분이 좋아 들뜬 마음에 잠을 잘 수없었겠지만 전 기분이 너무 좋아서가 아니라 낼 아침 부모님께 무슨 말을 하고 나가야 되나 이런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이 먼저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 저희밖에 나갔다 오겠습니다”
옆에 서있던 저는 너무 죄송하고 어색했지만 그저 “다녀오겠습니다” 말 한마디만 남긴 채 아이를 데리고 남편꽁무니만 따라갔습니다.
남편옆에 타고 길가에 핀 꽃들을 바라보며 노래도 부르고 하는 사이에 아 이게 아닌데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여보? 민속촌은 경기도 아냐? 고속도로로 들어가야 되는 거 아녀?”했더니
남편은 “ 응 거긴 좀 멀고 똑같은데 좀 더 가까운 곳이 있어” 하길래
전 “더 좋지”하며 빨리 도착하길 바랐습니다.
4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의 이정표가 “문경 00 촬영세트장”이라고 되어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20분을 걸어서 간 곳에는 정말 초가집, 궁궐,, 와! 티브이에서 나온 곳이 다 있었습니다.
(제가 민속촌을 안 가봤으니, 그냥 초가집 있으면 다 같은 민속촌으로 생각했던 거죠!)
전 이집저집을 들어가 문도 열리면 열어보고 부엌도 들어가 보고 다 만져보았습니다.
우리 딸 지원이도 너무 좋아라 하며 방문도 열어보고 신기한지 와우,,,라며 감탄을 하네요
많은 집들을 둘러보고 나니 배가 고파졌습니다.
“여보? 우리 오랜만에 맛있는 점심 먹자”
“그래 가자” 하며 따라오라고 준비된 사람처럼 앞서 갔습니다.
열심히 따라간 곳은 바로 국숫집
“이게 뭐야? 국수는 새참으로 내가는 거잖아 이게 맛있는 거야?”하며 화를 냈더니
“부모님은 찬밥 드시는데.. 뭘 바래? 이건 여기 유명한 오미자국수야” 한술더뜨더군요
어찌됐든 우리 세 식구 주먹만 한 국수덩이 한 뭉치로 허기를 때우고 집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목어귀에 어머님이 “지원아?" 딸의 이름을 불렀고 그다음 ”어디 갔다 왔니? “하시는 말씀을 듣는 순간 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듯했습니다.
아이가 놀러갔다고 말하기 전에 대충 말하려고 했는데..... 하지만 걱정과 달리 딸은
“응 할머니 누구누구네 집에 갔는데 문을 열어도 아무도 없어!”
“그래서 그냥 왔어”
어머님말씀이 “그래서 그냥 왔어? 나간 김에 맛있는 거 먹고 놀다 오지 그랬어!
이 말씀에 저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죄송하다는 말이 입에서 맴돌고 있었답니다.
그날밤 저는 내가 사는 이 시골의 땅 하늘별 아래에서 무척이나 행복한 별이 하나 반짝이고 있다는 것... 을 알았네요. 저의 시골 신혼생활은 이렇게 추억이 되었고요,
지금은 직장문제로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도시에서 살고 있고 다시 신혼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왜냐면 아이들도 커서 늦게 집에 오고 여행도 따라다니지 않으려 하니 늘 우리 둘 남편과 저 단둘이 밥 먹고 여행 가니 신혼생활 아닌가요?
정말 호사스러운 신혼생활을 하는 것 같아 너무도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