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과의 영혼 이야기

금강산여행을 보내드리지 못한 아픔

by 소소예찬

멀리 떠나신 아버님과의 영혼 이야기

봄이 되면 따스한 봄기운에 꽃도 피고 마음도 설렐 텐데 저는 그러지 못합니다.

봄이 시작되면 가슴 먹먹하게 가슴 시리게 떠오르는 한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시아버님이신데. 우리 큰딸이 6살 되던 해 축제 구경을 가셨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축제날 아침 아버님은 우리 큰아이가 먹다 남긴 미역국을 단숨에 들이켜시며 신발을 신고 기분 좋게 나가셨습니다.

“지원아 할비 다녀올 테니 유치원 잘 다녀오고 이따 보자”

“네 할아버지 다녀오세요?

”그래그래 선물 사 올게 이따 보자 “

이렇게 아버님은 손녀딸과 약속을 하시며 친구분과 읍내축제장에 가셨습니다.

우리 부부는 그 당시 집에서 40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시내에서 장사를 했었기에 얼른 가게문 열을 생각으로 출근해 가게 문을 열고 청소를 하던 중 떨이개가 걸리며 스킨 한 병이 떨어지고 깨져서 바닥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왜 이래? 아침부터,,, 아,, 안 다쳤어? “

남편은 찡그리며 저를 쳐다보다 안 되겠는지 다가와서는 ”안 다쳤으면 다행이지 내가 치울 테니 다른데 청소해 “라고 했습니다.

저도 다른 날 같았으면 막 화를 내며 남편에게 소릴 질렀을 텐데 그날따라 엄숙해지며 가슴이 탁 막혀왔습니다. 정말 저에게 무언가 전해지는 징조였을까요....

얼마 후 정적을 깨는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너희 아버지가 아버지가,,,,“

”네? 아버님이 왜요? “

”가셨단다,,,“어머님은 더 이상 말씀도 잇지 못하시고는 전화기를 내려놓으셨습니다.

그 후 어머님은 무표정의 얼굴로 말 한마디 없이 그저 마당 한편에 놓인 경운기만을 바라보시며 하루를 보내셨고 자식들이 오기만 하면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셨습니다.

”너희들 돈 많이 벌어, 이 아비 소원이 우리 아버지 고향에 있는 금강산 한번 가보는 게 소원이니 나 좀 보내줘 봐라 “ 타지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차린 가게비용이 모자라서 결국 아버님의 전재산을 털어 우리 가게를 차려주셨고 그러기에 아버님은 여행조차 가실 수 없으셨습니다. 죄송한 마음에 우리 부부는 아버님에게 굳건한 약속을 해버렸습니다.

”네 보내드리고 말고요 저희 열심히 벌어서 내년봄에 꼭 보내드릴게요 “

이렇게 호언장담했던 우리 부부, 하지만 삶은 녹녹지 않았습니다. 지인으로부터 사기, 설상가상으로 보증빚에 허덕이며 먹고살기조차 힘들 정도였고 그 상황에 가게문을 닫느냐 투잡을 하느냐 고민 끝에 놓인 상황였습니다. 그 반면에 그 당시(2000년도 초반) 티브이에서는 금강산여행을 가야 한다. 이번에 못 가면 못 간다 등등 금강산여행이 흥행을 타면서 주변 부모님들도 하나둘 여행을 다녀오셨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티브이 속 금강산만 구경하시며 ”좋다 좋겠다 나도 간다 조금만 기다려라 금강산아~“

우리 부부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봄은 금세 다가오는데 약속을 지킬 수 없음에 생각한 것이 다음기회에 보내드리자였습니다.

”아버님? 저희가 요즘 가게가,,,, 좀 그래서요,,,, 죄송한데요 금강산은 내년으로 미루면 좀 안될까요? “

”힘들면 안보 내줘도 돼, 너희들이 더 우선이지 놀러 가는 게 무슨 대수냐, 걱정 말아 “

연실 죄송하다는 말씀만 드린 채 서럽도록 시린 봄이 지나고 여름, 가을, 겨울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우리 부부는 가게를 닫을 수밖에 없었기에 작은 원룸을 얻고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은 채 출퇴근을 원룸으로 했습니다. 작은 원룸에서 3 등분해서 한편에는 남편의 공부방, 한편은 아이들 방 또한켠은 짐들이 쌓여 작은 원룸의 방안은 너무도 복잡했습니다. 아이들 또한 시내 가게 근처 유치원을 다녔었지만 사정상 그만두게 하고 작은 원룸에서 지내게 되니 작은 원룸에 우리 가족은 가득 찼습니다. 그렇다고 시댁에 두고 오자니 모든 게 불편해지고 죄송한 마음에 그냥 시댁에서 출퇴근을 했습니다. 언젠가는 가게문을 닫은 것을 들킬 수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말씀드릴 상황이 아닌 것 같아서 그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킥킥킥, 히히히, 놀자~“

”쉿, 조용히 해, 아빠 공부 중 너희들도 공부하자 “

아버님의 도움으로 오픈한 가게는 그렇게 1년 반 만에 문을 닫고 월세는 보증금에서 제해지고 있었고 저는 일용직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갔으며 남편은 취업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다 보니 언제 어디서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아이들의 행복은 어른과 달랐습니다.

”엄마? 여기 어디가 거실이야? “

”음,,,, 이만큼이 거실,,,,“

”그럼 방이 너무 좁아서 내발이 거실로 가는데 어떡해? “
”하하하하 하하하“ 웃을 일 없는 일상에서 아이들이 큰 웃음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의 웃음과 그로 인한 행복으로 그 시절을 보내고 지금의 자리가 만들어진 것 같아서 감사한마음과 안쓰런마음이 교차하네요. 하지만 더 큰 걱정거리는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봄이 오면 아버님의 소원이신 금강산여행이란 숙제가 남아있음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아버님은 안 가셔도 괜찮다 하시지만 자식 된 도리로 약속을 어길 수 없었기에 남편은 집중할 수 없는 원룸의 한편에서 최선을 다해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다시 봄이 됐고 정말 다행인 것은 남편이 취업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정말 이제 먹고살 수 있는 직장에 다니게 되었답니다. 우리 가족은 정말 2년 만에 돼지갈비를 먹었습니다.

”엄마? 이 고기 정말 달고 맛있어, 이거 무슨 고기야? “

”응 갈비야 맛있지? “
”나는 이제 갈비만 먹을 거야 히히히 “

우리 가족은 노래방도 가서 아이들의 곰 세 마리 노래도 들었고 아주 행복한 날을 보냈습니다.

그럼 이제는 아버님의 소원이신 금강산여행만 보내드리면 된다는 생각에 미리 대출이라도 받기로 결정을 했고 아버님께 말씀드리려던 어느 날였습니다. 그날이 바로 아버님이 봄축제 가시던 그 날였습니다. 아버님은 그날 엄청 즐거워하시며 우리 큰딸 남은 미역국까지 들이키시고 나가시던 날이었는데,,,, 그날 이후 아버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금강산여행조차도 막혀버린 상황. 정말 때가 있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싸늘히 식어가는 아버님의 손을 만지며 옷 속에서 나온 물품을 보았습니다.

손녀딸 주려고 주머니에 종이로 꽁꽁 싸서 넣어둔 작은 곰인형.

그렇게 허무하게 우린 아버님을 떠나보냈습니다. 자꾸만 눈뜨면 거실에 티브이보시던 모습이 떠올라 아무 생각 없이 ”아버님? 잘 주무셨어요? “라고 인사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아버님을 떠나보내고 새해 명절을 보내기 위해 명절전날 큰집으로 갔습니다.

시장도 보고 음식준비를 하던 중 저는 눈을 비볐습니다. 잘못본거 아닌가 라며 다시 보고 또 보았습니다. 제가 결혼해서 신혼살림을 시부모님과 함께했습니다. 그 당시 큰집 집마련해 주느라 돈이 없으시다며 우린 들어와 살다가 분가시켜주신다며 같이 살자 하시기에 저도 그렇게 따랐습니다. 그 당시 어머님 아버님은 ”이거 고구마밭은 너희 줄 거야, 그리고 이 금반지는 우리 며느리 줄 거고 “

”아녀요 이거 어머님 건데 왜 저를 주셔요 안 주셔도 돼요? “라며 말씀은 드렸지만 저는 속으로 너무 행복했습니다. 시부모님과 같이 사는 낙, 행복이구나 싶었습니다. 큰며느리보다 저를 더 좋아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저는 부모님께 잘하고 싶었고 퇴근하자마자 열심히 음식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반지를 큰 형님이 끼고 계셨습니다.

”형님? 이 반지 첨보는건데 어디서 났어요? “

”응 이거 어머님이 주셨어, 아버님 돌아가시고 두 분 반지를 남편하나 나 하나 주셨어 “

저는 너무도 속상한 마음에 ”아 그래요? 잘하셨네요 “라고 말하면서도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 명절 아침은 정말 속이 상하고 슬펐습니다. 하지만 아버님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저는 열심히 음식준비하고 상을 차렸습니다. 하지만 너무 속상해서 집에 가는 도중에 남편에게 말을 했습니다. 남편은 ”그거 니거 아니잖아 욕심부리지 마 “라고 하니 더욱더 서글퍼서 한동안 우울했습니다. 그래도 다음날 남편은 저를 위로해 주기 위해 드라이브하자고 하더군요. 마지못해 따라간 드라이드, 그리고 눈이 내린 산골짜기 풍광이 멋진 곳에 내려걸었습니다. 그런데.... 걸어가던 중 눈 속에 3분의 2가 파묻혀 있던 노란색 반지가 보였습니다.

”어머,,. 우리 딸들 주면 좋겠다 애들 소꿉놀이도 제대로 못 사줬는데,,,“

”줍지 마, 그런 걸 줍냐? “ 남편은 한 소리했지만 저는 아이들 주고 싶은 마음에 주웠습니다.

그런데,,,,그게 좀 이상하게 무거웠습니다. 장난감이 아니라 진짜 금반지였습니다. 믿기가 어려워 이로도 물어보고 집에 와서 무게도 달아보았습니다. 정말 금반지.... 어머님이 주시려던 반지가 아닌 아버님 반지랑 비슷한 반지였습니다. 이 산속에 왜 그 반지가..,, 하지만 나중에 감정을 받아본 결과 정말 금반지는 아니었고 도금반지였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버님이 슬퍼하는 나를 보신 거야 그래서 이렇게라도 내려주신 거지 “이렇게 저는 저를 위로하며 지냈습니다. 그나마 슬픔은 잦아들고 아버님의 따스한 마음만을 생각하며 지내게 됐습니다.

그러던 다음 해 새해 명절전 날였습니다. 명절을 보내기 위해 전날 선물을 사들고 큰집으로 갔습니다. 그때는 형님의 손가락에 금반지는 없었습니다. 잊고 싶었지만 형님을 보면 생각이 났는데요 없으니 좀 덜 속상하긴 하더라고요 그렇게 그 금반지가 어디 갔는지는 모르고 형님과 사이좋게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저녁에 맛있는 안주와 맥주 한잔도 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아가 이리 따라와 봐 “

”네 아버님 어디 가세요? “

”여기 봐봐 “ 아버님은 지저분한 화장실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오염되고 때가꼈지? 이렇게 오염된 거 이거 쉽게 지워지지 않지만 열심히 문지르고 청소하면 없어지는 거야. 열심히 살아온 우리 며느리 이제부터 행복한 일만 있을 거야 그러니 힘내고.,“이러시면서 꼭 안아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벽한쪽문으로 조용히 등을 보이시며 나가셨습니다. 말끔하게 차려입으신 모습에 너무도 반갑고 기뻤지만 가시는 모습에 다시는 오시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아버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잠에서 깼는데도 현실처럼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습니다. 큰집에서 큰 형님과 잠을 잤었는데 형님은 벌써 명절음식준비하시러 나가셨고 저는 오전 6시가 좀 넘어 일어났습니다. 그 꿈이 너무 생생했기에 너무도 혼란스러웠습니다.

”무슨 일일까? “

하지만 그 후 가끔씩 나타나시던 아버님은 한 번도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그 꿈은 아버님이 우리의 행복의 길을 알려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열심히 닦고 열심히 살다 보니 오염된 우리의 삶은 지워져 갔고 깨끗하고 행복한 미래였던 그날이 바로 지금인 것을 알았습니다.

지난날 지인의 사기, 보증, 경제적 고통 등으로 힘들었던 날이 지나고 나니 알았습니다.

삶은 속이지 않음을요.

아버님 이제 자식 걱정 하지 마시고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세요. 여기도 꽃피는 봄이 찾아왔어요. 그곳에서는 금강산도 가실수 있겠죠~~

아버님 너무 보고 싶지만 다시 오시지 않을 것 같아 이렇게 ”아버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쳐봅니다.

작가의 이전글몰래한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