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부부의 일상
회식이라며 새벽녘에 들어온 그녀의 남편 핸드폰이 눈에 띄었다
“오늘 꼭 와” “출장 갔다 온 거 다 알거든...”
“안 돼요, 저 그냥 집에 갈래요”
“얼른 와 알지?”
“네, 거기 어딘지 알아요 호호호”
상대는 여자였다. 그녀는 그 문자를 괜히 봤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속으론 너무도 화가 났다.
회식이라며 동료인 남자직원이 밥을 산다고 해서 밥 먹고 온다고 했던 남편이, 여자와 주고받은 문자, 문자수를 보니 그녀가 일 년 내내 주고받은 문자건수와 그 여자와 두 달 동안 주고받은 문자수가 비슷했다.
그리고 그녀, 아내라는 입장에서 남편과 주고받은 문자는 대부분 일방적으로 그녀가 보낸 문자들이었다.
그렇게 문자에 대한 답이 없었던 그녀의 남편이 한 여자에게는 여러 번 보냈다.
그녀는 화가 나서 잠이 오지 않았지만 딸아이 방에서 자는 남편을 깨워 따지지는 못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는 남편과 딸과 함께 딸의 안경을 맞추기 위해 시내로 나갔다.
안경가게 안에서 안경을 고르고 있을 무렵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 아빠 저 아줌마 아는 사이인가 봐”
“그래?”
그녀에게 퉁명스레 “빨리 골라, 뭐 해?”라며 말했던 그녀의 남편은 어떤 여자 하고는 아주 다정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가게에 손님이 많은 탓에 무려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만 했는데...
그녀의 남편을 보니 그 여자와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수다였을까?
“엄마? 아빠 너무 좋아한다, 꼭 부부 같아”
“아냐, 직장동료인가 봐”
어린 딸아이의 눈에 비친 모습에 그녀도 할 말을 잃었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녀에게 아니 그녀의 가족들에게는 늘 말없고 무서운 존재의 남편과 아버지였는데 그날 그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딸아이의 안경이 다되고 나서 계산을 하는 중에 남편은 그녀에게로 왔다
“다됐어?”
“.......”
그 여자는 없었다. 그 여자가 가고 나니 일어난 그녀의 남편.
앉을 의자도 부족해서 서서 기다렸던 그녀와 그녀의 딸에게 이리 와 앉으라는 말 한마디 없이 떠들어 댔던 남편을 보니 그녀는 너무 화가 났다.
“먼저 집에 가 우리는 좀 더 있다 갈게 당신 있으나마나잖아”
“왜 그래? 저리 가 있으라며?”
그랬다, 처음에는 너무 퉁명스럽게 말하는 남편에게 앉아있으라고 했던 말을 이제 그녀에게 써먹는다.
그녀는 눈물이 났다.
희생이란 말은 너무 과하다 싶지만 그녀는 희생을 했다. 남편을 위해 취직시험 공부하는 내내 그녀는 일용직일을 해가며 아이들 키워가며 남편을 뒷바라지했고 그 덕에, 그녀의 덕에 취직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자기가 잘나서 된 것이라고 떠들 때도 많았다.
가장이 1년 가까이 돈을 벌지 않고 살았다. 그 생각은 접어두고 이제 남편덕에 그녀가 산다니...
그녀도 일을 한다. 남편보다 못한 허드렛일, 일용직...
그녀는 참았다. 그리고 같이 집에 갔다.
신호에 걸려 서있던 차 하나.
“어~~~ 사무실가? 응~ 잘 가 ~~”
고개와 손을 내밀며 반가이 인사를 한다. 무뚝뚝한 그녀의 남편이 누구에게 다정히 인사하나 보았다.
촉이 온 듯, “아, 그 문자?”
그렇다.. 그 문자의 주인공이었다.
신호는 파란불로 바뀌었으나 그녀의 남편은 멍하니 있었다.
“아빠? 적응 안 돼요, 왜 그렇게 반가워해요?”
딸아이도 무뚝뚝한 남편, 아빠라는 것을 알기에 한마디 거들었다.
그날 그녀의 부부는 말다툼을 했다.
“질투해?”
“질투가 아니고 당신 자체가 문제야 왜? 가족한테는 그렇게 못해?”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그냥 직원이니까 그렇게 대하는 거지”
그녀는 그렇게 계속 반복적인 말씨름이 지겨웠다.
“그래 내가 당신이 뭘 싫어하는지 알았어, 그러니 내가 조심할게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잖아”
“꼭 질투로만 보여? 난 정말 당신 없으면 우리끼리 뭘 사 먹어본 적이 없어, 그리고 늘 당신 먼저 아빠먼저 생각하며 여행지도 다 당신한테 맞추잖아, 하지만 당신은 우리를 그렇게까지 생각해?”
“내 핸드폰 그렇게 마음대로 보는 거 안된다고 봐” 남편은 그녀가 핸드폰을 본 것에 대해 짜증을 낸다.
“왜?”
“부부사이에도 그런 건 지켜줘야지”
“그럼 비밀이란 말이야? 그게 부부야? 그리고 내 거 못 보게 한 것도 아니잖아?”
“그럼 봤으면 그런가 보다 해야지 그걸 가지고 말을 하면 안 되지”
그녀는 정말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이게 부부인가? 정말 사소한 일로 이혼을 할 수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그녀는 남편이 미워졌고 남처럼 보였다.
계속 반복되는 말싸움...
그녀의 남편은 질투라 단정 짓고 잘못한 거 없다고 하고 그녀는 남한테만 잘하는 남편이 싫다고 화를 내고, 누구 하나 물러서지를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집었다 놨다 화를 내며 아이들에게도 화를 낸다.
“아빠가 잘못했잖아요”
“너희들이 뭘 알아? 엄마란사람이 애들에게 별소릴 다하고...”
그녀에게는 지옥 같은 밤이었다.
잠 못 드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그녀는 출근을 했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한 후 그녀는 그녀의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지 않으면 지겹고 힘든 가족의 반복된 일상이 뻔하기에 꼬리를 내린 채 문자를 보냈다.
“현명하지 못한 나 때문에 피곤하고 힘들지? 지옥 같은 어제일 다 잊고 우리 앞으로는 행복하게 살자고요”
“이따가 전화할게”
그리고 얼마 후 그녀의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번주에 우리 여행 가자”
그녀는 이 한마디에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의 의미는, 오전 내내 그녀 자신을 추스르고 남편을 용서해야만 했던 자신을 위한 눈물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하나 그녀는 아니었다.
아직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웃을 수가 없었다. 그냥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데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어쩌나? 그녀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그것이 알고 싶었다.
그녀는 자꾸 눈물이 난다.
사십 대 중반 우울증인가 갱년기인가? 그녀 자신을 자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