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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디D Oct 07. 2021

애인이 호스피스에 들어갔습니다.

2021년 5월 28일 


2019년 5월, 애인이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고 검사를 받기 시작한 시점부터 이제 딱 2년이 되었습니다. 


애인은 난소암 4기 판정을 받았고, 지난 2년 동안, 수십 차례, 다양한 종류의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항암 외에도 자연치유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4월 말, 의사는 더 이상 항암이 듣지 않고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약이 없고, 전이가 심해졌음을 알리며, 우리를 호스피스 완화과로 옮길 것을 제안했습니다.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부터, 이런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가능하면 오지 않을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던 것인데, 정말 이런 상황이 왔네요.


 아직 40대 초반인 애인은, 죽음이 목전에 왔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너무나 건강했던 사람이고, 지난 2년 동안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잘 버텨내 왔던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는 것도 당연합니다. 


요양병원에서 좀 더 치료에 매진하고 싶어 하던 애인을, 친구들이 설득해주었습니다. 모진 말, 힘든 말을 해가며 요양병원이 아닌, 친구들 곁에서 단 얼마라도 함께 하자고 제안해준 친구들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길은 좀 더 막막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시간의 얼마간을 함께 해준 친구들이 있어, 정말 고맙고 다행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바쁜 사람들이 한데 모여, 애인과 시간을 보내고, 함께 밥을 먹고 추억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 며칠이 없었더라면, 아마 우린 좀 더 분노와 절망에만 빠져있었을 거예요.


의사의 마지막 진단 이후, 애인의 몸은 급격하게 나빠져갔습니다. 식욕이 떨어진 지는 오래이고, 복수와 부종이 점점 심해져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은 상태입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애인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급격히 나빠지는 몸상태는 집 안에서 케어하고 버틸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마음만은 집에서 함께 하고 싶었지만,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 주려면 그래도 호스피스로 가는 게 최선이다 싶었어요.


그래서, 어렵게 설득하여, 애인은 현재 호스피스에 있습니다. 보호자로는..... 애인의 어머니가 함께 들어가 계셔요. 


마음이 많이 복잡합니다. 내가 법적 파트너였어도, 어머니가 저렇게 들어가 계셨을까 싶기도 하고, 그런 걸 떠나서 내 자식이 저런 상태면 내가 부모라도 당연히 함께 있을 거다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여하튼 모든 걸 떠나, 면회도 안 되는 이 코로나 시대에, 보호자는 1인만 가능하고, 그 시작은 어머니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발 애인의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나아져서 제가 교대로 병원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오기만을 바라고 있어요. 


통화는 매일 두어 번씩 하고 있지만, 보호자가 바로 붙어 있고, 몸이 힘들어 말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우리가 나누는 대화라고는 밥 잘 먹느냐, 잘 먹어야 한다, 필요한 게 뭐가 있다 정도입니다. 서럽죠. 서러운데 또, 뭐, 그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어요.  


애인이 아프기 시작한 순간부터, 법적이지 않은 우리의 관계가, 이 상황이 무섭고 불안하고 화가 났습니다. 의사는 뭐만 하면 너네는 무슨 관계인지, 어머니가 오실 수는 없는지 물었고. 대리 진료를 받으러 갈 때도 환자의 동의서, 위임장 등을 주렁주렁 가지고 가야 하더라고요. 그나마라도 가능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처음 진단부터 바로 직전의 의사 면담까지 다 내가 함께 했지만, 저의 위치는 "친구"입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같이 가방을 싸고 풀고, 손을 잡아 함께 걸어간 것도 다 저인데, 저는 그냥 "친구"더라고요. 


그나마 애인 어머님이 저에게, 친구들에게 많이 의지해주셔서 다행이긴 해요. 하지만, 여전히 제 자리는 모호하기 그지없네요. 친구.


활동가인 나는 이럴 땐 좀 더 씩씩하게 목소리도 내고 주장도 하고 그럴 수 있으리라 상상했는데, 현실은 그냥 애인 어머니가 연락을 끊으면 어쩌지?라고 두려워하며, 하루하루 전화기를 붙들고 전화하고 또 전화만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친구들이 제 위치를 만들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고민해주었어요. 이런저런 조언과 응원을 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지금을 버틸 수 있습니다.)


망할. 전화로는 이쁘다 사랑한다는 말도 지금은 할 수가 없어요. 


애인은 커밍아웃도 한번 한 적 없었던 사람입니다. (다행히 지난주에 친한 친구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했어요) 공통의 친구들은 다 우리가 함께 십몇년을 보낸 줄 알고 있지만, 애인의 학교, 직장, 어렸을 때 친구들, 가족들은 아무도 몰라요.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 모르겠지요. 언젠가는 배 째라 커밍아웃하겠다던 생각도, 지금 이 상황이 오니, 그냥 배부른 소리였다 싶어 져요. 평생 그런 거 안 해도 좋으니까, 평생 벽장 안에서 살아도 되니까, 뭐든 다 허락해 줄테니까, 살기만 하면 좋겠어요. 


애인의 목소리는 하루하루 달라져갑니다. 걸어서 들어간 요양병원에서 지팡이를 짚고 나왔고, 호스피스에 들어갈 때는 휠체어를 탔어요. 지금은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대요. 못 먹는 게 제일 위험하다고 지 입으로 그러더니, 지가 이제 밥을 잘 못 먹어요. 죽 몇 숟가락 먹은 걸 자랑이라고. 나쁜 자식.


아마 저는, 마지막까지 기적을 기도할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기적이 와주지 않는다면, 다가올 마지막의 순간에 제가 꼭 손을 잡아줄수라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까지 일지 모르겠지만, 애인의 남은 소중한 하루하루가 평온하길, (기적을 우리에게 던져주길) 함께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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