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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디D Oct 07. 2021

보호자 일기

0. 보호자가 되었다

그녀와 십 년을 만나면서도, 농반진반으로 결혼을 이야기하면서도, 한번 도 난 내가 심각한 뜻의 ‘보호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녀가 하혈을 멈추지 않았을 때도, 걱정하고 잔소리하고 함께하긴 했지만, 그건 그저 ‘걱정’이었다. 주변 친구들의 파트너가 아파서 수술을 하는 것을 보았지만, 단기 환자였고 기실 그들의 수술 후 관리의 주체는 스스로로 보였기 때문에 ‘보호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내가 ‘보호자’가 되었다.


난소에 암이 있대”

그녀의 말이 너무나 침착해서, 놀랐지만 당황하지도 않았다.


몇 달 전부터 소화불량과 복통을 호소했다. 예민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촉진을 하던 우리 주치의는 ‘당장 초음파와 CT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암 판정을 받은 것은 그때부터 정확히 한 달 후였다.


지방의 병원을 거쳐 대학병원, 수도권의 ‘명의’가 계신다는 큰 병원으로 가기까지는 진단 후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


그렇게 입원한 애인을 옆에 두고 난 ‘보호자’가 되었다.


당장 응급실을 통해 입원한 그녀의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아 밤새 꾸벅꾸벅 졸다가, 그녀가 잠든 틈을 타서 급하게 집에 가 병원 짐을 꾸려왔다.


처음 꾸려보는 병원 짐이라 어설펐지만 뭐, 필요하면 더 가져오면 되니까! 싶어 지다가 혼자 어이가 없어 웃었다. 벌써 병원에 익숙해지는 건가?


병원에 입원한 며칠 동안 온갖 검사를 다시 받고, 또 받았다. 집이 지방이라 입원할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진단이 명확해지는 그 순간 동안에 그녀의 상태는 사실 많이 나빠졌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곁에서 난 내가 보호자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단한 결의가 아니라, 응급실에서부터 입원실까지 보호자 명을 작성하고 관계를 쓰는 서류가 계속해서 있었고, 거기에 이름을 올리고 명찰을 받으면서 자동적으로 난 ‘보호자’라는 명칭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을 만나 이야기를 함께 들으면서 그들은 날 ‘완전한’ 보호자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환자와의

관계”를 답한 후였고, 난 이 대답을 이후 일 년 내내 후회한다. 그리고부터 다시 보호자의 의무와 권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나는 올해 십일년차 동성커플이다. 우리는 소위 ‘대국민 커밍아웃’은 하지 않았고, 당분간은 할 예정도 없다. 그녀가 암에 걸렸고, 난 병원에 내가 ‘친구’ 라고 이야기 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이 글들은, 우리의 지난 1년의 기록이자, 나의 기록이다. 이 글은 현재 진행형이며, 긍정적인 과거형이 되기를 매일 소망하며 우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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