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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디D Oct 07. 2021

글을 써야겠다 생각한 이유

6월 5일 공개하지 못했던 글


계속 글을 써야겠다 생각하게 된 것은, 동성커플에 대한 논의들이 다각도로 이미 나오고 있는 현실에서, 정말 실제적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상황이 무엇인가를 기록으로 남기고, 이럴 때 성소수자 커뮤니티로, 공동체로 함께 하고 있는 우리는 어떤 대처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가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40대로, 제 주변의 친구들은 이제 40대에서 50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주변에는 이미 10년을 넘게 함께 하고 있는 커플들도 많고요. 


이제 다들 나이 듦을 준비하고, 중장년 노년의 우리의 삶을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 고민을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물론 이전에도 갑작스럽게, 혹은 질병으로 파트너를 떠나보낸 사례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십 년 이상을 함께 한 커밍아웃하지 않은 커플의 현재 이야기를 더 나눔으로써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하고 다들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애인은 집에 전혀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다행히 애인의 가족은 제가 각별한 친구임을 알고 있고, 제 기대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함께 논의해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파트너라는 법적 지위가 있고 없음은 심리적으로 장벽이 생겼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논의와 별개로 제가 심리적으로 원하는 마지막의 순간에 함께 한다거나, 급하게 응급실에 갔을 때 판단을 내린다던가 하는 부분은 전적으로 가족의 배려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겠더라고요. 이후 집을 정리한다거나 하는 부분에서도 (다행히 재산이 섞여 있지는 않지만) 제가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은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 이것은 가족과의 관계를 넘어, 직장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저는 성소수자 활동가라는 위치와 공동체로 함께 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고, 단체의 배려가 있어 제가 하고 싶은 만큼의 간병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일반 회사에 다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나 코로나 상황인 현재에는 병원에서 간병을 할 것을 결정하는 순간 병원에 갇힌 채로 다른 간병인과 교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게 됩니다. 일반 직장이라면 가족의 간병을 위한 휴직이나 병가나 월차를 내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웠겠지요. 


3) 제가 가질 수 있었던 많은 혜택은 공동체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애인의 어머님이 여러 생각을 열어놓고 논의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도 친구들을 만나고입니다. 저 말고도 십수 년 이상을 함께 해온 퀴어 친구들이 애인의 여러 가지 순간을 결정하고 지지하고 함께 해주었습니다. 애인 곁에 있는 친구들을 보며 어머님께서는 애인이 혈연 가족만큼 (그리고 가족보다 더 )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본인도 거기에 함께 기대며 논의를 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처음엔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은 그나마 몇 개라도 현실이 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친구들과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4) 저 또한 친구들이 있어 지금 조금 더 괜찮을 수 있습니다. 물론 친구들도 (혈연이 아닌) 가까운 이를 이렇게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 것이 처음이거나 낯선 경험입니다. 우리는, 그래도 아직은 누굴 떠나보낼 준비를 하기에는 젊은 나이잖아요. 이전까지 겪었던 갑작스러운 이별들은 그 상황을 마주하고 감당하고, 당사자가 되지 못해 서글퍼하고 분노하거나 했던 상황이 더 많았는데요. 이번엔 그 모든 과정을 함께 하고 있거든요. 우리가 계획하고 상상하고 논의하는 모든 것이 다 현실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모여 추억을 나누는 시간도 있었고, 유언장을 함께 써보자는 이야기도 나누었고, 애인이 없는 공간에서 우리는 이후의 과정들을 모두가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논의하고, 애인을 떠나보낼 저를 걱정하고 케어하는 것을 논의하기도(한다고)합니다.


5) 오랜 시간을 친구들과 함께 보내며 마음을 나누었지만, 우리의 우정이, 챙김이, 마음이 이 정도로 크고 깊다는 것은 이제야 새삼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6) 생각해보면, 센터에서 성적소수자의 노년,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를 예전부터 시작했으면서도 이 것을 제 이야기로 절박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은 애인의 발병 이후, 애인의 병세가 악화되는 것을 느끼는 이후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 준비가 없었던 저를 계속 뒤돌아보게 됩니다. 사후라거나 유언장이라거나 우린 어떤 장례를 치르고 싶을까 같은 이야기는 농담 따먹기로만 했지, 각 잡고 준비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많진 않았더라고요. 그나마 저는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눈 편이라고 생각했는데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많았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물론 찬란한 유언장 행사도 있었고, 장례식에 대한 상상도 있었지만, 그게 저한테는 일종의 행사였지 정말 제 다음을 준비하는 시간이 아니기도 했나 봐요.


7) 아,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 삶을 살아가야 한다거나, 난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빛이 사그라져간다고 해서 제가 함께 사그라들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게 아무리 내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일지라도 말입니다. 전 삼시세끼 밥을 먹고, 잠도 자고, 해야 하는 일들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100%나 그 이상만큼을 해내지는 못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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