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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디D Oct 07. 2021

장례 후 감사의 글

2021년 6월 14일


안녕하세요. 캔디입니다.


제 파트너 차력사의 장례식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지난 2년 동안의 파트너의 투병생활은, 저에게도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법적 지위가 있고 없음이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병의 상황과 방향을 논의하는 과정 과정, 병이 악화된 후 호스피스에 들어갈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장례식에서의 위치까지 세세한 것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배려와 동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취약한 위치라는 게 새삼스레 알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주변 친구들의 노력과 혈연 가족의 배려로 임종 순간까지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이걸 다행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현실이 참담하고 서럽기도 했지만, 장례의 과정과 방향 결정을 함께하며 상복을 입고 조문객을 맞이할 수 있었기에 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습니다.


오랜 친구들은 차력사의 투병 기간부터, 임종의 시간까지 많은 부분을 함께해주었습니다. 요양병원에서 돌아와 호스피스에 들어가기 전까지 기꺼이 집을 내주고, 친구들과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도록 해주었고, 력사의 어머님께 손편지를 써 제가 장례에 함께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해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수목장을 위해 장소를 함께 찾아주었고, 장례기간 중에도 다들 시간을 쪼개고 나누어 조의금을 받는 것부터, 운구까지 모든 순간을 함께해주었습니다.


제 친동생과 파트너, 조카도 빠르게 달려와주었습니다. 한 명이라도 저의 혈연이 방문해 준 것이 저에게는 아주 큰 위로와 위안이 되었습니다. 차력사와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순간부터, 파트너를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였고, 투병기간에도 최선을 다해 심적 물적으로 지원해주었고, 호스피스에 들어가기 직전에 조카와 함께 찾아와 "고모에게 인사해"를 하며, 동성파트너인 우리가 큰 가족의 울타리에 들어가 있음을 계속 표현해준 저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준 동생 부부에게도 감사합니다. 


또한 파트너와 저의 공통의 지인들 또한 한달음에 달려와 차력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추억을 함께 공유해주었습니다. 연락이 닿지 않았던 오랜 시간 동안도 파트너를, 저를 기억해주었고, 함께 눈물 흘리며 저를 위로해주었던 지인들 덕분에 힘든 시간의 일부를 따뜻한 추억으로 채워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파트너를 만나보지 못했지만, 경사에는 함께 못해도 조사에는 꼭 함께 해야 한다며 달려와주시고, 조문해주신 커뮤니티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요즈음은 성소수자 활동가뿐 아니라, 모든 활동가들이 정신없이 바쁜 시기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민청원을 향해 모두 긴박하게 달리고 있고,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코앞으로 다가와 모두 준비에 여념이 없는 시간들입니다. 바쁜 와중에도 달려와 저를 위로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제 파트너 차력사는 저와는 2009년부터 함께해온 사람입니다. 언니네트워크 활동가였고, 친구들을 좋아하고, 자전거, 축구를 즐겼으며, 최근엔 목공, 오리엔티어링, 캠핑을 즐겨하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던지라, 발병 후에도 삶의 의지를 불태우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을 했습니다.


자연을 사랑했던 파트너를 고려하여, 장례는 양평의 공원묘원에 수목장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양평의 풍광 좋은 곳에서 편히 쉬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많은 사랑하는 이를 떠난 사람들이 그렇듯이, 저도 앞으로 허망하고 아픈 시간을 보낼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해받은 수많은 마음들이 있어, 그 시간을 조금은 덜 아프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삶은 어떻게든 살아진다고 하죠. 마음을 다해 그리워하고 싶은 만큼 그리워하고, 미워하고 싶은 만큼 미워하고, 마음이 기억하는 만큼 기억하며 아픈 마음도, 즐거운 마음도 외면하지 않고 지내겠습니다. 


조금만 더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생활로 들어가 삶의 곳곳에서 또 만나 뵙겠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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