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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디D Nov 12. 2021

그녀가 우리의 레퍼런스가 되길 바란다

211112

력사의 사망 이후, 인터뷰를 할 일이 있었다. 인터뷰를 연결시켜준 친구는 너무나 마음 쓰여하며, 혹시 힘들거나 하다면 인터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덧붙여 주었었다.


력사의 사망 이후 강의를 할 일이 있었다. 김규진 씨의 인터뷰 영상을 수강생 분들에게 보여주었었는데, 강의 중간이었는데, 눈물이 나서 매우 당황했었다. 내 이야기를 하진 않았지만, 동성결혼이 얼마나 필요한지 이야기를 평소보다 길게 했다.


변희수 하사의 사망 이후, 그로 촉발된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강의를 요청받은 바가 있다. 사망이 주제가 되어 인권을 이야기하게 되다니 절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사망 이후 세상의 문제를 깨달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기도 하다 생각하며 강의를 했었다. 


력사 사망 한 달 후, 몇 달 후, 장례식에 가야 할 일들은 계속 생겼다. 아픈 사람들은 계속 생겼다. 어떤 이는 나에게 전화를 해서 이런저런 문의를 했다. 아픈 이들이나 사망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나는 활동가다. 


력사가 사망하고, 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마음속 깊이 품고 있던 현실과 생각이 밖으로 스믈스믈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력사는 우리 친구들 중에 몇 안 되는 벽장이기도 했고, 몇 안 되는 직장인이었고,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ㄴ그리고 다행히 주변의 지지자원도 많은 편이었다. 20대에 만난 우리들은 이제 대부분 40대가 넘었고, 학생이었고 사회 초년생이던 많은 이들이 전문가가 되었다. 다행히 주변에는 의사도, 변호사도, 활동가도 있고, 이제는 급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차도 있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력사의 암을 발견하기 직전, 몇 달 동안 력사는 알 수 없는 소화불량과 불편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몇 년 전에는 스트레스로 인한 하혈도 있었다) 하지만 하혈 이전에도 이후에도 산부인과 진료를 받는 것을 너무나 싫어했던 이 부치는-_- 병원에 꾸준히 가지 않았다. 


2019년 5월, 서울에 올라왔던 력사를 끌고 살림에 갔다. 력사를 진료한 주치의는, '당장' 초음파와 시티를 찍으라고 했고, 당일 서울에서 찍지 못한 초음파와 시티를 찍고, MRI를 또 찍고 최종 결과를 받는 데에 걸린 시간은 무려 한 달이었다. 

진단을 받자마자, 서울 병원으로 전원 했다. 인터넷에 능숙한 우리는 검색을 했고, 검색으로 가장 잘한다는 의사를 찾아갔다. 다시 한번 난소암 4기 확정을 받았다. 폐에도 전이가 있어 수술을 할 수 없고, 일단 항암을 해야 한다고 했다. 력사는 면역 항암(비급여, 비싼 거)을 포함하여 총 4종류, 24회 항암을 진행했다. 항암을 하면서, 중증질환자가 전체 비용의 5%만 내도 되는 의료보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었고, 사람들이 왜 사보험을 드는지도 알게 되었다. 

력사는 다행히 사보험이 하나 있었고, 직장보험이 있었다. 그리고 휴직이 가능하고 휴직 기간 동안 기본급의 일정 부분을 주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직장과 보험이 휴직기간 동안 력사를 살 수 있게 했다. 온갖 대출과 세금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건강한 음식'을 찾게 되고, 대체요법으로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온갖 것들을 먹다 보니 엥겔지수는 하루가 다르게 올라갔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사보험과 월급, 그리고 친구들의 도움이었다.


삶의 말기가 가까워지면서, 력사는 친구들의 몇 주간에 걸친 설득 후에 겨우 친구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40대 초반의, 이제 막 삶의 날개를 펴기 시작한 사람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형병원에서의 호스피스 전원 설명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고, 의사는 직접적으로 죽음을 언급해주지 않았다. 력사는 본인의 건강에 늘 자신이 있었고, 그래서 누가 보기에도 상황이 안 좋아지는 상황에서도 본인은 안 좋아지고 있는 자신을 인지하지 않았다. 


일주일-열흘 동안, 수많은 친구들이 다녀갔다. 그냥 함께 밥을 먹고 가기도 했지만, 몇은 력사를 퇴원시키고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의사인 친구는 새벽부터 길을 달려와 력사의 모든 의료 기록을 보며, 력사에게 시간이 얼마 없음을 이야기해주었다. 친구로서 너무나 힘들일이었을 테지만, 냉정하게 3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고 이야기해주었고, 또 다른 친구도 찾아와 퇴원하고 마지막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해준 덕분에 력사는 요양병원 생활을 접고 퇴원을 결심할 수 있었다. 


우린 계속 운이 좋았다. 우리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작은 빌라였다. 호스피스에 들어가기 전에 집에서 지역 간호간병을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서야 력사의 주소지가 은평이 아니라서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력사가 올라갈 수도, 간호사 선생님들이 오기도 어려운 구조였다. 친구들이 아파트의 방 하나를 내어줬다. 5일을 있었던가. 그 5일 동안 력사는 수많은 친구들이 방문을 받았고, 미루고 미뤄두었던 커밍아웃도 할 수 있었고, 추억을 나누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고, 작성을 완성하진 못했지만 유언장을 함께 쓰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사망이 임박한 환자를 받아준다는 것은 정말 쉬운 선택이 아니다. 병원에 옮겨지는 순간까지를 생각해야 하고, 사망 후 남겨질 공간의 흔적을 견딜 결심도 필요하다. (생각보다 더 힘들다) 세상 바쁜 친구들이 자신의 일을 줄여가며, 쪼개가며 력사를 위해 시간표를 짜고 함께해주었다. (이는 사망 이후까지 계속되었다)


마지막 한 달을 다시 쓰려는 것은 아니었고, 이렇게 수많은 전문가/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도 40대를 넘어가는 우리 모두는 이제 질병과 돌봄, 죽음을 처음 목도하고, 고민하게 되는 그 시점에 서 있다.


이 2년여간의 경험은 나 혼자 한 것이 아니고, 모두가 함께 겪어낸 것이기도 했다. 


우린 질병과 보험, 의료 시스템에 대해 알게 되었고,

(노인이 아닌) 젊은 환자의 간호, 간병의 상황과 고민 한계 등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요양병원과 호스피스 사용에 대해 알게 되었고, 

유언장 작성과 사망 후 서류 정리, 유산에 대해도 알게 되었고

당연히 납골당과 수목장, 장례지도사 고용 등 장례절차 전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제 딱 5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난, 내가 배우고 알게 된 모든 일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한다.


나를 비롯한 모든 친구들이 본인들이 이 상황을 함께 겪으면서 배운/알게 된/경험한 모든 것들을 사용하고 활용했으면 좋겠다. 력사와 함께하며 우리의 몸과 마음과 머리에 남은 모든 것을 레퍼런스로 사용했으면 한다.


물론, 앞으로도 무리는 계속 다양한 케이스를 알게 될 것이고 더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될 것이지만, 그래도, 아마도 많은 것이 초반의 경험이었을 력사와의 경험을, 우리 모두가 딛고 있는 이 땅에서 사례로 사용했으면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비슷한 상황에서 해결책을 찾고, 누군가는 비슷한 상황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배울 수 있기를, 그리고 1인 가구의 의료 정책에서, 성소수자 커플의 간병/사망/사망 후의 과정에서, 유언장 작성에서,  직장인의 휴직과 급여지급에서, 혹은 고향 밖에서 사망하는 사람들의 장례식 진행에서, 뭐든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싶다. 

나도, 아마 앞으로의 나의 활동에서 나의 경험을 그대로 운동의 사례로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어떤 일들은 누군가 다시 겪지 않기를 바라며 사례를 나눌 것이다. 이전의 사례가 있었기에 나도 력사의 장례식을 좀 더 잘 준비할 수 있었다. 자신의 힘들었던 상황을 기꺼이 사례로 나누어주었던 이에게 너무나 감사했고, 그가 있어 위로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누구든 마음 불편해하지 말고, 력사를 레퍼런스로 사용해주길.  그리고 그 사용으로 력사의 사망이 우리의 삶에 또 다른 고민의 문을 열어주었음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된다면, 그 시작의 어딘가에 력사가 함께했음을 기억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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