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04
문득. 력사의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너의 죽음으로 얻어진 것들. 배워진 것들. 성장한 것들. 무엇이든.
지난해 12월, 사촌의 결혼식에 갔다. 가서 나에게 력사 안부를 묻는 사촌에게 력사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내 소식을 인스타로만 보고 있던 사촌은 알았더라면 장례식에 갔을 거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결혼식에 엉엉 울 뻔 한건 안 비밀) 여튼, 어디가 아팠는지 그런 이야기를 시시콜콜했더랬다. 그리고 올 설날 직전. 엄마가 "**이 수술한다고 입원했다"라는 소식을 전해줬다. 너무 놀라 전화를 했더니, 자궁 근처 어디에 혹이 있어 수술로 떼어내는 거라며, 그때 네가 력사이야기 하면서 꼭 검사받고 그러란 말이 생각나서 검사를 받았고, 수술을 하게 되었다며 고맙다는 말을 전해왔다.
다행히 심각한 병은 아니었지만, 여튼, 력사야. 넌 사람 목숨도 하나 살렸다.
력사 장례식을 겪고, 이후의 몇몇 장례식에서 친구들은 좀 더 능동적이고 능숙한 대처를 할 수 있었다. 력사야. 너는 우리의 장례 문화도 바꾸었다.
그리고 력사가 아팠던 지난 2년의, 그리고 마지막 몇 달의 경험으로 주변에 몇몇에게 호스피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다. 력사는 우리의 어려운 일에 대처하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뭐, 력사의 사망의 의미가 사실 뭐가 있겠네. 그냥 넌 죽어버린 거고, 나는 뭐라도 의미를 찾으며 너의 사십몇년의 삶이, 그리고 그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더 많고 많고 많은 의미가 있었다고 위안하고 싶은 것이다.
저런 걸 굳이 찾아내지 않아도, 력사의 삶은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었고, 만약에 세상 아무 의미 없었던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너는 내 옆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
참 잘했다고 토닥여주고 싶다.
사실. 얻어진 게 있을 리가 만무하다. 사랑하는 이를 잃었는데, 천만금을 얻었더래도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래도, 뭔가 스스로 위로하고 위로할 꺼리를 계속 찾아내려고 하는 내 행동이 안타깝기도 귀엽기도 우습기도 하다.
오늘 우크라이나 집회에 가는데, 할 말을 정리하는데, 할 말이 점점 없어진다. 이 모든 전쟁이 누군가의 사랑하는 이를 앗아가는 것보다, 누군가의 삶이 사그라드는 것보다 중요할 만큼 의미가 있다 생각하는 걸까? 정말? 정말 이런 걸 감수할 의미가 있다고? 그럴 리가 없다. 정말, 그럴 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