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아래 흑백 사진 한 장

부러움의 시

by 캔디작가

감나무 아래 흑백 사진 한 장

우리 집에는 묵은 때가 묻어 있는 앨범이 여러 개 있다. 20대까지만 해도 가끔 앨범을 열어보곤 했었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정신없이 지나간 30대에는 앨범을 꺼내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앨범 속에서 나의 가장 어린 적 사진은 엄마와 아빠가 나(아기)를 한 명 안고 우리 집 감나무 아래에서 찍은 모습이 담겨 있다. 넉넉하지 않았던 집안 살림을 생각하면, 이 사진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국민학교 저학년 때, 어느 날 부모님께 물어본 적이 있다.

"우리 집에는 카메라가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사진들이 많아요?"


나의 동네 친구 중 '연화'라는 친구가 있다. 연화의 삼촌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어서 동네 사람들 사진을 많이 찍어 줬다고 한다. 당시 카메라는 부자들만 가진 사유물이었기에 연화와 그 삼촌이 얼마나 부럽던지. 연화네 집이 특별히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동네에서는 그럭저럭 형편이 괜찮은 편이었다.


또 다른 부러움의 대상은 경혜였다. 경혜 가족은 우리와 같은 1남 3녀였지만, 모든 면에서 한 수 위였다. 경혜 부모님과 할머니는 참 깔끔한 성격이셨고, 경혜네 할머니는 참빗으로 곱게 빗어 내린 쪽 찐 머리와 단정한 옷차림을 하셨다. 그래서인지 경혜와 언니들도 항상 깔끔한 새 옷을 입고 다녔다.


늘 언니 옷만 물려 입던 나에게 새 옷은 꿈같은 존재였다. 4~5학년 때, 엄마가 추석이라며 처음으로 새 옷 한 벌을 사 주셨다. 당연히 처음은 아니었겠지만 기억 속 새 옷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읍내 시장에서 사 온 옷인지 친구도 나랑 똑같은 옷을 입고 학교를 왔다. 둘 다 같은 옷을 입은 날이면 서로 좀 민망해했지만, 그래도 난 그 옷이 너무 좋아서 엄청 자주 입고 다녔다. 그날의 기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언니와 나는 사촌 언니의 옷도 잘 물려 입었는데, 서울에 사는 사촌 언니 또한 부러움의 대상 중 한 명이었다. 큰아빠는 명절이면 빠짐없이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명절을 보내셨다. 내가 조금 커서 안 얘기지만 큰아빠는 아빠의 친 형이 아니고 사촌 형이었다. 어릴 때는 멋도 모르고 큰아빠니까 그냥 큰아빠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전쟁에 고아가 된 사촌들을 우리 할머니가 거의 키우다시피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큰아빠는 우리 할머니가 엄마라 생각하고 명절이나 제사에 빠짐없이 참석하셨다. 멀리 서울에 살았는데도 말이다.


사촌 언니는 항상 예쁜 옷을 입고 왔다. 서울 아이들은 다 그렇게 옷을 잘 입고 다니는 것 같았다. 큰엄마는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언니의 작아진 옷들을 가지고 왔고, 그 옷은 언니의 몫이 되었다. 새 옷은 아니지만 사촌언니의 옷은 레이스가 달린 예쁜 옷들이 많았기에 나도 갖고 싶었다. 하지만 항상 언니가 먼저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1~2년이 지난 후에나 내가 입을 수 있었다. 언니가 2년을 더 입은 옷이지만 여전히 그 옷은 예뻤다.

월요일 연재
이전 01화할머니 품에서 시작된 첫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