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4학년 소풍날이었다. 언니도 함께 간 것을 보니 4학년이 맞는 것 같다.
'소풍'이라는 단어는 그것만으로도 하루 종일 싱글싱글 웃게 만드는 마법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매번 걱정이 하나 따라붙었다. 도시락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김밥에 과일, 간식까지 싸 오는데 엄마는 지금까지 딱 두 번 김밥을 싸 주셨다. 나머지는 늘 계란밥이었다. 소풍날은 즐거웠지만 도시락을 꺼내는 순간만큼은 몸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안 먹을 수는 없으니 뚜껑을 열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친구들과 사이좋게 김밥을 나눠 먹었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날 소풍 장소는 우리 동네보다 위쪽에 있는 왕촌마을 근처 저수지였다. 전교생이라 해봤자 많지 않은 시골 산촌학교였다. 학년마다 한 반, 학생은 20~30명 남짓. 선생님을 앞세우고 삼삼오오 출발했다. 오전마을을 지나 중촌마을을 지나 오휴마을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앞서 가던 아이들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까치발을 들고 앞을 보려는데 누군가 소리쳤다.
"벌이다!"
"벌? 어디? 없는데?"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벌 떼가 몰려들었다.
모두가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벌집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달아났지만 벌들은 지치지도 않고 따라왔다. 옷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벌을 떼어내려 했지만 국민학교 4학년의 손은 무서워서 잡지를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상황이 정리됐다. 여기저기서 쏘인 아이들이 나왔는데, 내가 가장 많이 쏘였다는 걸 그때 알았다. 머리카락 속까지 벌들이 들어간 나는 결국 소풍을 포기했다. 오휴마을에서 작은 산 하나를 넘으면 우리 동네로 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로 혼자 집에 왔다.
엄마는 온몸이 벌집이 된 나를 보고 기겁을 하셨다. 햇빛 잘 드는 마루에 앉혀 머릿속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벌들을 하나씩 떼어내고 벌침이 보이는 건 모조리 뽑았다. 동글동글하던 얼굴이 퉁퉁 부어 빵순이가 되어 있었다.
엄마는 벌에 쏘인 곳에 된장을 바르려 했다. 나는 죽어도 싫다고 했다. 실랑이 끝에 꿀을 바르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벌침에 꿀이라니. 아이러니하지만 그때 우리 집에 있는 약이라곤 물파스가 전부였으니까.
그렇게 4학년 소풍은 끝났다.
친구들과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고 싶었다. 계란밥이어도 괜찮았다. 수건 돌리기도 하고 싶었고, 보물 찾기도 하고 싶었는데.
다음 날 퉁퉁 부은 얼굴로 학교에 갔다. 친구들이 놀릴 줄 알았는데 다들 괜찮냐고 걱정을 해줬다. 말썽꾸러기 남자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이 미리 당부를 했을 것이다.
어제 먹지 못한 계란밥이 먹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