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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있고, 또 어디에도 없다.

소중한 이를 도둑맞았다.

by 이기적이너피스

지난 4월,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입원하시고, 일주일이 지나 중환자실로 옮기시고,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았던 날,

가족 모두가 중환자실에 모일 때까지

겨우 맥을 끌어올려 기다리셨다가 우리 모두를 모이게 하시곤

그렇게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셨다.

뭐가 그리 서둘러 가셨나 싶지만,

어머님이 올해 여든여덟이셨다.

응급실로 가셨던 그날도 출근하셔서 진료를 보시고 퇴근하셨고,

그래서 팔순을 넘긴 시간에도 일을 하시고 지내셔서

어머님의 나이를 잊고 지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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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머님의 생신이자, 어머님의 49재.

왔다 갔다 자식들 힘들지 말라고 그렇게 날짜도 맞추셨나 싶게,

그렇게 날짜도 공교롭게 같은 날이었다.

갑작스레 여행 떠나신 탓에

모실 곳도 미리 알아보지 못해서,

장례가 끝나고 일주일 정도 어머님 방,

오래된 자개장 문갑 위에 어머님의 납골함을 모셨다.

모실 곳을 정하느라 며칠을 보내고, 가족사진과 어머님 사진을 함께 넣어드렸다.

며칠 전 생신에 가면서

새로 제작한 반짝이는 납골당용 액자와

어머님의 의사가운을 미니어처로 주문해 납골함에 새로 넣어 드렸다.

새로 제작한 액자를 넣으니

어머님과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들이 선명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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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남편이 결혼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어머님이 며느리는 딸이 아니라는 말씀을 친구분들과 나누시는 걸 들었다.

그 말은 언뜻 들으면 서운한 말이긴 하지만,

살아보니 며느리는 딸이 아닌 게 맞다.

그래서 조금은 조심스럽게 서로를 대하며

긴 시간 스며들어 가족이 되었다.


20년이 넘게 함께 살았어도,

어머님의 장례에 며느리인 나의 슬픔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듯 해 참 그 기분이 서러웠다.

20년 넘게 며느리로 살다가

이제 머리가 굵어져 편하게 딸처럼 굴려고 했는데

성격 화끈하신 어머님이 그건 싫으셨다 보다.




압력솥에 밥하고 앉은 누룽지,

방 한켠에 놓인 커다란 강냉이 봉지,

이제는 토르가 앉아있는 어머님 방의 안락의자,

약국에 쌓여 있는 비겐크림톤 6G,

퇴근길에 어머님을 모시러 가던 신용산역 3번 출구.

곳곳에 어머님이 있지만,

또 어디에도 어머님은 없다.

어머님의 동생처럼 지내던 오랜 인연의 이모님이

언니를 도둑맞은 것 같다고 하셨다.

남은 우리는 인생에서 소중한 이를 도둑맞고,

살아내고 있다.

차마 앞에서 말은 못 했지만,

참으로 삶이 고단했던 우리 어머님.

천국에선 이제 아프지 마시고,

예쁜 구두도 신고 가볍게 사시길.

#안녕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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