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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 잘할게 _사춘기 소년소녀의 생일

출산 16주년 기념 꽃다발

by 이기적이너피스

소년소녀의 열여섯 번째 생일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건, 난 열넷인가.. 열다섯인가 하고 있었는데, 열여섯이었기 때문

열여섯이라니. 우리 소년소녀가 열여섯이라니. 정말 믿기지 않는 숫자다.

12시 땡 하자마자, 방마다 가서 꼬옥 안아주고 뽀뽀해주면서,

생일 축하해, 엄마한테 와줘서 고마워 라고 한참을 안고 있었다.

평소 때 같으면 손사래를 치며 왜 이러냐 할 테지만, 생일의 특별함은

이런 닭살스런 애정 표정도 허락하게 해주는 여유를 주는 듯하다.


아침을 잘 먹지 않는 아이들이지만, 우리 집에선 생일 아침엔 그래도 미역국.

그래서 먹을 거냐고 했더니 고분고분 먹을 거라고 한다.

생일 케이크랑 저녁은 어떻게 할까 했더니,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어서 바쁘시다 하셔서

저녁 9시에 케이크 하고 베이비 립 먹는 걸로 간단히 생일파티를 하기로 했다.

이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생파는 2순위 아님 3순위 정도.

친구들의 축하에 더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가 되었고,

그럴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이 들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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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의 축하 속에 바쁜 하루를 보낸 소녀에게 오늘 즐거웠냐고 물어보러 방에 들어갔더니,

꽃다발이 있어서 이런 선물도 받았냐고 하려는 순간.

- 엄마 아빠 거야.

어버이날에 형식적으로 받았던 카네이션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꽃 선물.


스티커에 쓰인 "내가 더 잘할게♥"라는 문구가 웃기면서도 감동스러웠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나, 더 잘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고 싶었나 보다.

16년 전 출산했을 때 남편에게도 받지 못했던 꽃 선물을 (뒤끝 작렬 ㅎㅎ)

16년이 지나 소녀에게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해 낸 거라면 너무 대견하고,

누군가 이런 조언을 했다면 그런 조언을 한 친구가 있다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생일은 부모님께 감사해야 하는 날이라는 걸

나이가 한참 들어서야 알게 되었는데,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생각한 소녀에게 이런 꽃 선물을 받고 나니 뭐라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 생긴다.


거칠고 큰 파도가 유능한 뱃사람을 만든다는 얘기처럼,

지금 거칠고 큰 파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 집 소년소녀도

이 시기가 지나면 인생의 큰 파도들을 유연하게 잘 넘길 수 있는

자기 인생의 선장이 되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되는 밤이다.

생일 축하해. 엄마가 더 잘할게.



2021.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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