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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 된 피아노

아빠가 보고싶은 밤

by 이기적이너피스



다음주에 콩쿨나간다며 연습보다 드레스 입을 상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우리 딸.

간만에 연습 좀 하시는데, 가온 도 아래 솔 건반이 누르고 나서 올라오질 않는다.

고장났다고 며칠전부터 그랬었는데, 놔뒀다가

오늘 괜히 기운이 뻗혀서 피아노를 살피려고 분해했다.

분해라고해봤자 상판과 덮개를 열고

건반지지대의 나사를 풀어보는 것.

몇년전에 친정에서 우리집으로 가져올 때 조율을 한번 했었는데,

다시 할때도 되기도 했지만

우선은 간단한 문제일수도 있어서 다 열었다.

피아노 내부를 처음보는 둥이들은 갑자기 너무 신이나서

피아노를 막 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무들이 움직이고, 현을 쳐서 소리가 나는 거라고 생각도 못했을터라.

보고나더니 소리도 크게 나고 좋다고

계속 이렇게 열어놓고 있자 한다.

난 도데체 35번 건반이 왜 안올라오는지 계속 살펴봐야 하고,

속이 다 보이는 피아노에 신난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액션 부위를 살펴봤다.

스프링 낡은 정도나 댐퍼 상태들은 다른 건반들이랑 거의 다 비슷해서,

35번 건반을 빼냈더니, 먼지가 가득.

그 먼지들 빼주니 건반이 다시 잘 움직인다.

다음에 날 잡아서 다시 열고 건반 아래 먼지들이랑 좀 청소해 줘야 겠다 생각하고,

다시 피아노를 덮었다.



이 피아노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 우리 엄마아빠가 사주신 피아노다.

어릴때는 몰랐었는데,

커서 엄마가 해주신 얘기로는

이때 창원에서 살던 우리가 피아노를 구입한걸로,

아빠는 본사에서 거래처 등에서 무슨 뒷돈을 받아 산거 아닌가 해서 감사까지 받으셨다고 한다.

지방의 집값을 고려하면 피아노 한대 가격이 상당했던 것.

사택에 살고, 우리엄마가 아빠 동생들인

삼촌등 결혼자금도 드리고, 사업자금도 빌려드리는 와중에

피아노 치는 거에 소질 좀있다고 9살짜리 딸에게 피아노를 사주신 거다.

이 얘기를 단편단편 듣다가

결혼식을 앞두고 상견례날 어머님과 술한잔씩 나누시던 아빠가

내가 그런 소중한 딸이라는 얘기를 둘러하신다면서

이 피아노 얘기를 해주셨었다.



나름 피아노를 잘 쳐서,

오르간도 배우고 성당에서 봉사도 했었고,

전공자도 아니면서 콩쿨 반주도 했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그당시 피아노가 있는 집이 그리 많지도 않아서,

피아노가 집에 있으면 그만큼 연습할 수도 있고

난 그래서 잘 쳤었던 것 같다.


한참을 피아노와 데면데면할때였는데,

아빠의 피아노 얘기를 듣고.

이 피아노는 9살 꼬마가 20년이 지나 29살이 되어 시집가려고 할 때가 되어서야

빛나는 보석이 되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시댁에 피아노가 있어서 가져오지 못했고,

그리고 노래부르기 좋아하는 엄마께도 피아노가 필요해서 놔뒀다가,

아이들 크고 피아노를 치고 싶어해서 찾아왔다.


진짜 30년.

여전히 고운소리 내어준다.

아빠 보고싶은 밤이다.



2013.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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