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물 쓰기

사물 쓰기, 1. 매니큐어

나의 작은 강박증을 소개합니다

by 나나

2019.09.07. 100일 글쓰기 #4


나와 오래 본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나는 매니큐어(또는 네일 폴리쉬) 바르는 것을 좋아한다. 본격적으로 처음 바르게 된 것은 중학생 때 에뛰드 매니큐어를 샀을 때부터였다. 에뛰드의 모든 물건이 핑크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던 시절에, 핫핑크색 폴리쉬와 요즘으로 치면 마르살라색 폴리쉬를 샀었다. 지금도 마르살라색(또는 홍차색, 또는 말린장미색, 로즈우드, 기타 등등으로 불리는)을 좋아하니, 돌이켜보면 취향이 참 확고한 편인가 보다.


학생의 꾸밈에 보수적인 엄마가 매니큐어 바르는 것만큼은 적극 지지해주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매니큐어를 사자고 한 사람이 엄마였다. 그 이유는 손톱을 물어뜯는 내 버릇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손톱에 피가 나도록 이로 뜯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도 완벽히 고쳐진 것은 아닌데, 그래도 손톱 자체가 주어진 영역은 다 채우고 있으니 많이 나아진 편이다. 심할 때에는 오른손 가운데 손톱이나 검지 손톱의 반은 날아가 있고 손톱 아래 살만 남아있기도 했다(자세한 묘사 죄송).


손톱 물어뜯는 행위가 일종의 강박증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입학 무렵 때였다. 집에서는 마냥 보기 싫다고 혼나기만 했지, 어떤 종류로 구분되는 문제행동이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혼난다고 반감에 더 심하게 뜯으면 뜯었지. 고입 직전 겨울에, 수학 학원에서 고1 수학 예습을 한창 받을 때였다. 꼬맹이처럼 생긴 남자 선생님이 내 담당 선생님이었는데, 약간 시니컬하고 쨍한 말투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생긴 건 말썽꾸러기 개발자같이 생겨가지곤.. 아무튼 수업이 끝나고 1:1로 오답노트 검사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선생님에게 문제를 설명받으며 손톱을 없애고 있는데, 대뜸 선생님이 '너 강박증 있니?' 하고 물었다. 강박증이요?

제가 강박이 있어 보이나요 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려서 그 이야기는 더 하지 못했다.


다만 내가 하는 짓이 강박의 일환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에 대한 생각도 조금 달라지게 되었다. 매니큐어를 발라서 손톱을 물어뜯지 않는 것이 단순히 생각하면 엄마를 만족시켜주는 행위가 되지만, 내가 가진 강박이라는 것에서 벗어나게 해 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대학에 입학할 무렵 내 손톱은 '매니큐어 바르기 좋은 손톱'으로 변했다. 내 손이 남에게 보기 좋아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스무 살이 넘고서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매니큐어 바르는 행위가 강박(손톱 물어뜯기)을 없애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 모양이다. 이미 손톱 거스러미와 굳은 살은 생길 만큼 생겼고, 손 주변을 보는 것은 버릇이 되었기 때문에. 그나마 손톱 자체를 뜯는 것이 드물어졌을 뿐이다. 왜인지 매니큐어를 바르면 고르게 발라져 있는 것이 예뻐서 참을 뿐, 지우고 나서 손톱을 다시 깎을 때에는 거슬리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될 때까지 손톱에 대고 세공을 하고 있다. 그런 나 자신이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지만 핸드크림을 바르면서 이 강박을 잊어보려 노력이라도 하는 것이지.


매니큐어는 워낙 어릴 때부터 썼으니 온갖 제품을 다 써봤는데, 그다지 손톱이 얇거나 민감한 편은 아니라서 무슨 제품이든 쉽게 쓰는 편이기는 하다. 손재주가 있는 편이라 양손을 고르게 곧잘 바르기도 하고. 그동안 가장 오래/많이 사용한 브랜드는 '토드라팡'이다. 이 곳 제품 중 제일 잘 사용하고 좋아하고 관심도 많이 받은 색은 소위 마르살라 컬러인 Roman de la Rose. 색깔 소개 겸해서 손 사진이 올라오는 인스타그램 계정도 소개해봅니다.

인스타그램 @nahnahiro

토드라팡 제품은 굳이 얇게 여러 번 바르지 않아도, 한두 번만 바른 뒤 금방 마르기 때문에 굉장히 편하다. 컬러 수도 다양하고 네이밍이 귀여워서 잘 썼다. 요즘은 장사를 접은 건지 아니면 나올 만큼 나와서인지(?) 새 컬렉션은 안 나오더라. 인스타그램 활동도 없고. 왜일까... 아시는 분은 알려주세요.


단일 제품으로 제일 좋아했던 건 '데보라 립만'의 '라비앙로즈(la vie en rose)'. 2014년 오스카 시상식 때 루피타 뇽오의 손을 장식했던 폴리쉬다. 나는 주로 봄에 제일 많이 발랐는데, 벚꽃 색과 똑같기 때문에 벚꽃과 함께 손 사진을 찍으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2014년 오스카 시상식의 루피타 뇽오. 손 사진만으로도 많이 이슈가 됐었다. (Frazer Harrison/Getty Images)

본인이 좀 어울릴 것 같다 생각하면 꼭 사보세요. 장점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단점은 5번 정도 발라야 보기 좋게 색이 올라온다는 것.


최근에는 네일 스티커에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위에서 구구절절 얘기한 강박 덕분에 다른 손톱은 괜찮지만 엄지손톱은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으면 이 사람 저 사람 다 물어볼 정도로 바다처럼 굽이치고 있는 상태다. 그러다 보니 네일 스티커는 당연히 붙여봤자 잘 붙지 않을 거고 불편하겠다는 생각에 사용을 안 했는데, 괜찮은 제품이 있어 함께 소개를 해본다.

오호라(ohora)라고, 반경화 젤 네일 스티커 브랜드이다. 실제 젤 네일을 스티커로 만들어(?) 젤로 굽고 사용하는 방식의 제품인데 디자인들도 독특하고 예쁘고 여러모로 연구를 많이 한 것이 느껴지는 브랜드다. 원래도 다른 디자인들로 판매를 오래 했었는데 최근에 브랜딩을 새로 하면서 새로운 디자인도 많이 나오고 주목을 많이 받고 있다. 사용 후기는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p/B0bMFYegZ-Q/)을 참고해주길 바래 친구들아.


헛짓거리도 꾸준히 하면 업이 된다고, 어차피 매번 찍는 손 사진 모아두기라도 하자는 생각에 만든 계정이 벌써 3년이 되어간다. 게시물도 300개나 올렸고. 이러다 보면 언젠간 더 재밌는 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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