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시간 기능이 있는 팔찌 일지 몰라도
2019.09.09. 100일 글쓰기 #6
유독 시계를 잘 차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의 내 얘기는 아니다. 시계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거의 차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하며 가지게 된 스마트폰으로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게 되었으니까. 그래도 손목시계를 항상 가지고는 있다.
내 손목시계 브랜드는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내 스와치였다. 보라색 고무줄 밴드에 분홍색 무늬가 들어간 스와치 어린이용 손목시계. 우리 엄마는 꾸준히 베이지나 하늘색 같은 디자인을 권했지만 나 또한 꾸준히 내 취향만을 고수했다. 엄마도 아빠도 우리 집의 누구도 이렇게 분홍과 보라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대체 누구 취향인 건지. 지금도 그런 색 조합이 좋은 걸 보면 단순 여성성에 대한 통제로 이루어진 취향은 아닐 테다. 적어도 난 그렇다.
중학교를 입학할 때에는 운 좋게도 시계가 두 개나 생겼다. 평소 취향인 분홍색이 들어간 주황색 포인트의 고무 스트랩 시계 하나, 그리고 베이지색 가죽 시계 하나. 평소 어머니의 소비 습관이나 나의 장녀적 버릇에 의하면 절대 두 개를 사지 않았을 텐데, 과소비 성향을 물려준 아버지의 부추김에 더불어 아버지 후배(내가 삼촌이라 부르던 사람)가 사주는 중학교 입학 선물이다 보니 당당히 두 가지 디자인을 가질 수 있었다. 상반된 디자인은 당연히 나와 엄마 취향에서 서로 타협을 본 것이다. 그때는 강남 롯데백화점 1층에 스와치 매장이 있었다.
누가 뭐래도 분홍색 시계가 너무 좋아서 샀다. 그 시계의 특별한 점은 시계 얼굴에 고무 장식을 붙여서 팔찌처럼 착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해도 그 시계를 포기하지 못할 것 같은 눈치였는지 어른들은 내가 그 시계를 가질 수 있게 허락해줬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한 번에 한 가지의 물건을 여러 디자인으로 살 수도 있다는 경험을 했다. 아빠의 과소비 성향에 많이 고생했던 엄마가 내가 자아를 가질 무렵부터는 절대 그런 일을 허락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우리 집 돈을 쓰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정말 가지고 싶어 했기에 '둘 다 사'는 실현되었다.
그런데 정작 학교에 들어가자 나는 '베이지 가죽 스트랩 시계'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아마 Desert라는 인기 기종과 비슷하게 나온 디자인이었던 것 같다. 이걸 기억하는 이유는 그때 미리 브로셔로 봐 두고 간 Desert가 생각보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무난해서 자주 할만한 친구였다. 난 분홍 시계가 정말 좋아서 샀지만, 왠지 중학교에서 하고 다니기에는 10살 무렵 공주병이라고 왕따를 당한 경험도 있고 유치해 보일 것 같아서 부적절해 보였다. 베이지색 시계는 무난함을 방패로 여러 가지 위험에서 날 지켜줬다. 그렇게 난 엄마의 취향을 흡수하게 되었다.
이 시계를 중학교 내내 하고 다니면서 시험에 유용하게 썼다. 손목시계 없이 시험을 어떻게 봐야 할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는 어쩐지 집에 피에르 까르뎅 시계가 있어서 그걸 차고 다녔다. 좀 올드해 보이긴 하지만 또 옛날에는 좀 쳐주는 물건이었지.
진퉁인지 짜가인지는 모르지만, 딱히 그런 걸 눈여겨보는 사람도 없지 않나. 네모 모양에 검은색 스트랩, 갈색 스트랩이 각기 있어서 하나가 낡은 후 그다음 걸 하고 다녔었다. 그 시계는 그냥 학교에서 기 안 죽으려고 하고 다닌 것 같다. 그래도 꽤 예뻐서 종종 했다. 생일 때 엄마가 O.S.T에서 사준 하얀 손목시계도 잘하고 다녔다. 귀여웠는데. 가격이 싸서 금세 낡았다. 둘 중 어떤 시계를 먼저 하고 다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시계를 하고 다니지 않다가 최근에 산 것이 라코스테 스포츠 시계다. 그냥 고무 스트랩으로 된 시계인데 봄여름에 편하게 하고 다니기 좋다. 역시 고무로 된 시계는 물 묻는 걱정도 크지 않고 가죽처럼 빨리 낡지 않는다는 게 장점이겠지만, 땀도 금방 차고 손목에 붙지 않으니 좀 어색한 감도 있다. 주말에 팔찌가 애매할 때 하고 다니지 시계를 보려고 쓰는 일은 잘 없다... 언제 토익 치러 가면 시계 차고 가봐야겠다.
최근에는 애플 워치에 관심이 좀 있다. (관심이 많다고 썼다가 고쳤다. 사실 그렇게까지 자세히 알려고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전처럼 무적권 핑크만 고르지는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1순위로는 일단 로즈골드로 사고 싶다. 얼마 전 생일에 4세대를 사려다 말았는데, 아마 5세대가 나오면 사게 될지도 모르겠다. 샤오미 미 밴드도 안 썼는데 애플 워치라고 돈 준만큼 쓸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 여태 사지 않았지만 에어팟이랑 같이 써보고 싶기는 하다. 애플 워치가 그렇게 좋다면서요? 내가 쓸 물건이라면 언젠가 사게 되겠지. 시계를 반드시 하고 다니던 버릇은 이제 없어져서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쓰다 보니 뭔가 더 나아질지는 아직 모르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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