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고 시작합시다
2024년 1월 2일, 뉴스레터 '어거스트'에 발행한 글입니다. [뉴스레터 링크]
안녕하세요, 에디터 나나입니다.
2024년 새해가 시작되었어요. 올 한 해의 시작을 뉴스레터와 함께 시작하신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영감이 가득한 한 해가 되시길 바랄게요! 저는 12월부로 신입사원 때부터 다녔던 직장을 퇴사하고, 오늘부터 새로운 일터로 출근하게 되었어요. 올 한해도 여러 가지 변화 속에 보낼 생각을 하니 걱정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크네요.
‘변화’가 키워드인 시기여서인지, 다른 사람들의 변화에도 관심이 많이 가는 요즘인데요. 그중에서도 최근 제 눈길을 사로잡은 변화는 방송인 이효리의 행보입니다. 오늘 레터는 이효리 씨와 같은 광고계의 ‘빅모델’과 그 효과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마케터 구독자분들 중 올해 새로운 마케팅 캠페인을 계획하면서, 관련한 고민이 있으신 분들은 레터 하단의 피드백으로 그 고민들을 공유해주세요. 피드백 레터에서 함께 이야기 나눠보아요!
오늘의 이야기
1. 이효리가 컴백한 후
2. 브랜드, 그리고 모델
3. 무엇을 남기시겠습니까
제가 어릴 적 방송에서 가장 많이 보았던 연예인, 2000년대 가장 핫했던 가수이자 방송인이었던 이효리는 2010년대 초 이후로 연예계 활동을 잠시 중단했었습니다. 중간중간 ⟪효리네 민박⟫, ⟪서울체크인⟫과 같은 프로그램들을 통해 근황을 알리기는 했지만, 2000년대 중후반에 가수 활동과 방송 활동으로 왕성했던 모습에 비하면 많이 축소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그녀는 2023년 초 안테나뮤직에 합류하며 광고와 방송 영역에서 활동을 다시 늘리고 있는 상황인데요. 방송계에서는 이효리의 복귀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레터에서 소개해 드린 적 있는 KBS 2TV의 심야 음악 토크쇼 프로그램인 ⟪더 시즌즈⟫는 시즌4를 맞아 이효리를 새 MC로 발탁했습니다. 박재범, 최정훈, 악뮤에 이은 MC가 이효리라니, 제작진도 기대하는 바가 클 것 같아요.
새해 첫 금요일인 1월 5일부터 방영하는 이 방송은 이효리가 10년 만에 MC로 복귀하는 첫 예능 프로그램이면서, 그녀가 처음으로 단독 MC를 맡게 되는 방송이라고도 합니다. 음원 성적이 좋지는 않았지만, 지난 10월에 나온 신곡 ‘후디에 반바지’ 또한 발매 소식만으로도 화제가 되었어요.
연예계 활동을 줄이기 이전, 이효리는 개인적인 신념을 이유로 근 10년간 상업광고를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7월, SNS를 통해 돌연 본인의 소셜 채널에 ‘광고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행보 하나하나가 화제가 되는 인물이다 보니, 광고주들이 관심을 갖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광고 복귀 선언 후 이효리는 롯데온을 시작으로 2023년 하반기 동안 무려 10개가량의 브랜드와 신규 광고를 찍거나 준비 중이에요. 캠페인을 진행한 영역은 기존의 이미지와 가까웠던 의류, 화장품, 건기식뿐만 아니라 렌터카, 주방용품, 영어 학습 앱까지 다양합니다. 심지어 창사 이래로 39년간 연예인 모델을 활용하지 않았던 풀무원조차 이효리와 ‘풀무원지구식단’ 캠페인을 전개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그녀가 광고계 복귀를 선언했을 때, 많은 이들의 관심은 어떤 브랜드가 가장 먼저 이효리와 광고를 찍을지에 쏠렸는데요. 저는 당시 인스타그램에 달린 브랜드들의 ‘댓글’이 흥미로웠습니다. 댓글 하나하나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느껴져서 재미있었거든요. 이효리 씨에게 전하는 ‘구애의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브랜드들과의 차별점을 보여주는 단 한 줄의 ‘카피라이팅’으로도 보였습니다. 이 댓글 창이 마치 각 브랜드 담당자들의 센스들을 모아볼 수 있는 전광판이 된 것 같았어요.
그런데 광고 현업을 하다 보면 캠페인의 목적보다는 ‘모델’에 방점이 찍히는 상황이 종종 발생합니다. 모델 선정의 배경은 광고주 키맨(CEO, 임원 등)의 팬심 때문일 때도 있고, 임원의 지인이기 때문일 경우도 생기죠. 최근 저는 경쟁 PT에 참여했다가, 모델 때문에 수주하지 못했던 일이 있었어요. 누가 들어도 인정할 만한 ‘빅모델’을 경쟁사가 제안한 것이 그 이유였죠. 하지만 실제로 제작된 광고물은 결국 기존 이미지를 고려해, 현실적인 이미지의 모델로 캠페인이 만들어진 것을 보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일을 하면서 여러 상황들을 겪어서인지, 최근 이효리 씨의 소식들을 보며 작은 의문이 생겼어요. 그녀를 모델로 섭외한 브랜드들은 만족하고 있을까? 뭐라도 효과를 보고 있을까?
우선, 가장 먼저 이효리를 섭외한 ‘롯데온’은 캠페인 집행 이전 대비 키워드 언급량이 2배로 늘었다고 하고요. 이효리와의 캠페인과 함께 신제품을 런칭한 ‘리복’은 제품 출시 당시 온라인몰 접속자가 폭증했고, 덩달아 신규 회원 수도 전주 대비 1.5배 늘었다고 합니다. 확실히 고무적인 데이터들로 보여요. 예전처럼 모두가 ‘애니콜’ 광고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효리가 입은 청바지를 따라 사 입는 세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광고를 다시 하겠다’는 단순한 발언이 만들어낸 변화들이 신기합니다.
'에토스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현우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의 저서 ⟪설득의 쓸모⟫에서 알게 된 표현인데요. 에토스(ethos)는 고대 그리스어로 ‘성격’ 또는 ‘관습’이라는 뜻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화자의 공신력, 호감도, 권위까지 아우를 수 있는 개념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해당 도서에서는 마켓컬리가 배우 전지현씨와의 광고 캠페인을 진행한 후 그 영향력을 설명하고 있는데요. 현재 광고계에서의 파급력을 생각하면 현재 이효리가 만들어내는 상황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효리 효과’만 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광고계에서는 브랜드 인지도와 모델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 왔어요. TV 광고의 전성기였던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에는 국내 학계에서도 브랜드와 모델의 관련성에 대한 논문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과거에 비해 소비의 개인화가 진행됨에 따라 브랜드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브랜드 이미지 확보를 위해 유명 모델 활용 비중이 늘어난 시기이기도 하고요.
몇 가지 연구 내용들을 살펴보면 결론은 아래와 같습니다.
모델의 이미지는 확실히 브랜드에 대한 태도와 직관적으로 연결이 된다 (김성덕, 윤명길, 김기수 / 한국유통과학회, 2012)
제품과 모델의 부합도가 높을 수록 구매 의도에 효과적이다 (진용주, 유재웅 / 한국브랜드디자인학회, 2012)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고 브랜드 성격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브랜드 성격과 광고 모델 이미지를 일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채영지, 2003)
물론 최근의 연구를 바탕으로 더욱 구체화된 개념들도 있지만, 시사점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브랜드의 이미지에 맞는 모델을 활용해야 효과가 있다. 결국은 기업 내부에서 브랜드에 대한 고민과 방향성 정립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브랜드의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결정을 하는 것이 먼저고, 그 후에 유명 모델을 활용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캠페인을 전개할 것인지 선택을 하는 것이 순서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요.
광고 모델의 효과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실무적으로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 광고 캠페인을 집행할 때, 모델비뿐만 아니라 매체 비용(TV나 유튜브 등), 프로모션 비용 등도 상당히 많이 지출을 하게 되는데요. 이 때 노출이 늘어나면 어느 정도는 시장에 반응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매체에 돈을 쓰면 노출이 만들어지고, 노출이 생기면 인지에도 영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광고 미디어의 Reach 개념과도 연결지을 수 있지만 일단 넘어갈게요)
그러니 잘 짜여진 캠페인은 반드시 탑급 모델이 아니어도 이슈가 되는 케이스들도 많고요. 모델이 매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연관성은 있을지 몰라도 그 자체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스타 마케팅 전문 대행사인 앤드컴의 전병하 대표 인터뷰에서는 ‘모델만 쓰면 될 것 같다’는 광고주들의 희망에 대한 현실적인 의견이 드러납니다. 인터뷰는 협찬 등 간접광고 사례를 전제로 한 것으로 보이지만, 일반 광고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연예인들이 입어서 완판이 나는 사례는 그렇게 흔하게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한 방을 노리고 스타 마케팅을 하시는 것은 마치 로또를 사고 당첨을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그런 사례가 제가 일하는 동안 몇 번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건 정말 천운입니다.”
그렇기에 모델 선정에 집중하다가 본질을 잃어버리는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면 안타까운 마음이 커요. 각자 브랜드마다 왜 이효리를, 전지현을, 혹은 박보검을, 정해인을 모델로 선정했는지 이유는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브랜드와의 이미지가 부합한다고 설명하곤 하죠. 그러나 그 이유가 정말로 소비자가 느끼는 브랜드 태도와 일치하는지는 자기 객관화가 필요합니다.
애초에 적게는 몇천만 원부터 몇억까지도 쓰게 되는 것이 ‘스타 마케팅’인데,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그 돈이 너무 아깝잖아요. 모델에게 출연료만 준다고 끝나는 문제도 아니고요. 광고 촬영비를 살펴보면 단순히 모델에만 관련된 것도 엄청난 금액이지만 촬영을 위해 필요한 부대 비용들이 차고 넘칩니다.
간혹 광고주와 대행사 간에 그런 비용들을 낮추고 낮추는 ‘네고’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결국 연예인을 활용한 광고는 퀄리티 싸움이기에 계속 금액을 낮추다가 아쉬운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건 부지기수고요. 2013년 한국광고주협회에서 발간한 저널에서, 탑급 광고모델 활용에 대한 문제점들을 제기한 적이 있는데요. 10년이 지나도 모델의 부정 이슈로 인한 브랜드 손해 문제, 모델료 문제, 모델 쏠림 현상 등은 여전히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앞서 잠깐 말씀드렸던 마켓컬리와 전지현의 만남은 스타트업 씬에도 영향을 미쳐서, 대기업에만 허락되는 것 같았던 빅모델 캠페인이 2021년~2022년 동안 스타트업 브랜드에서도 자주 보였습니다.
우려할 만한 점으로 짚었던 모델 비용이 아무래도 중소 규모의 기업 입장에서는 많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수준이라서요. 캠페인 런칭 당시에는 일시적으로 화제가 되었고, 인용한 기사에서도 소개하듯 좋은 효과를 보였지만 이 효과들이 현재까지도 해당 기업들에게 유효한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빅모델 광고가 우후죽순 유행처럼 지나가고, 기업에게는 무엇이 남았는지 살펴봐야 해요. 단숨에 올린 인지도가 고객으로 제대로 전환되었는지, 그리고 그 고객들은 얼마나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겠죠.
저는 지난번 팝업스토어 관련 레터에서도 브랜드의 가치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실체는 없는데 그걸 구체화하는 작업이니, 브랜딩은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도 없고 어려운 영역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꾸준하고 집요한 모습을 보여주는 브랜드들을 좋아하는데요. 그만큼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운 일이라고 느껴지기에 더욱 그렇게 생각하게 돼요.
시장이 많이 변했다고 해도 광고는 ‘고객이 있는 곳’에 하는 것이 정론입니다. 내 취향 기반으로 영상 큐레이션을 할 뿐만 아니라, 광고마저 내 특성을 추측하고 타겟팅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그런 타겟팅을 이해하고, 내게 맞지 않는 광고라고 생각하면 보이지 않게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광고에 대해 깊이 인지하게 되었어요. 그러니 모델이 좀 취향이라고 당연히 우리 브랜드를 선택하게 되지는 않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소비자 취향이 아닌 대표님 취향이라면 더더욱 어렵겠죠)
그래서 저는 다시 한번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물론 오래된 역사를 가진 브랜드가 신선한 이미지를 위해 아이돌 모델을 쓰고, 브랜드 앰버서더를 선정하는 활동들 자체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경쟁사가 빅모델을 썼으니까, 우리 브랜드도 비슷한 수준의 모델을 써야한다는 식의 논리는 경계해야 한다는 거죠.
이효리 씨가 광고를 다시 찍겠다고 했을 때, 러브콜을 준 광고주들을 정리했더니 거의 A4 3장 분량의 브랜드들이 리스트업 되었다고 해요. 당연히 현실적으로 이들과 모두 광고 촬영을 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여기까지 생각해 본 기업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너무 많은 광고가 나와서 우리 브랜드가 아니라, 이효리만 기억에 남는다면?
앞으로 그녀가 얼마나 더 많은 광고를 찍게 될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결국 이미지는 서로 얽히기 마련이고, 이를 염두에 둔 광고주끼리도 캠페인 공개 시점을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해 신경을 쓰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보니 모델 이미지의 빠른 소비와 소비자의 피로감까지도 생각하게 돼요. 물론 여러모로 단단해진 ‘광고퀸’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이지만요. 그녀의 타고난 감각과 매력이 예전과 같이 새로움과 영향력을 계속 보여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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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나나>의 코멘트
새해 첫 곡으로 뭐 들으셨어요? 저는 작년에 자우림의 Something Good을 들었는데요. 엄청나게 대단한 다짐은 아니어도 그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그 낙관 자체가 저에게 일년 내내 힘이 되어주었답니다. (그리고 꽤 좋은 한 해를 보냈다고 생각해요) 올해에는 뭘 들었고 어떤 한 해를 보냈는지… 지내보고 내년에 말씀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