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롱신자의 나이롱신앙이야기
2019.09.12 100일 글쓰기 #9
고3 때 산 묵주팔찌가 끊어졌다.
서랍에 넣어두고 여행 때 종종 하고 다니다가 요즘은 우레탄 줄이 많이 늘어나서 그냥 두고 있었는데 오늘 서랍 정리를 하다 보니 줄이 삭아 끊어져 있었다. 검은색 십자가에 하늘색, 흰색, 파란색 플라스틱 구체로 엮어져 있는 내 묵주팔찌.
4살 때에 얼굴도 기억이 안 나는 대모님(엄마 친구의 딸이라고 썼다가 기억이 잘못된 것 같아 고친다. 아마도 먼 친척, 당시 20대인)과 함께 정읍의 어느 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 무렵부터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가 내 인생에서 가장 드레스를 많이 입은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세례명을 받았고 성심유치원을 다녔다. 성당 근처에서 살며 세례를 받은 외가, 친가 어르신들과 부모님들 밑에서 자란 나는 절이나 교회의 존재도 알았지만 가톨릭을 더 친숙하게 여기고 성당을 다녔다. 그렇게 열렬한 신심은 없었고, 그저 내 환경이 그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할 무렵에서야 성당을 다시 매주 가게 될 줄은 몰랐다.
10살 무렵에 정읍을 떠나 정착한 서울에서는 집 근처에 성당이 3개나 있는데도 성당에 가지를 않았다. 대부분의 종교 활동이 그렇겠지만 자연스럽게 같이 다닐 사람이 없어지면 가지 않게 된다. 근처에 있는 성당을 의식하게 될 무렵에는 나도 많이 예민한 시기였기에 신앙심은커녕 내 목숨을 부지하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를 하루하루 견디고 있기 바빴다. 엄마는 그렇게 마음이 힘들다면 성당에서 안식을 찾으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또한 타인에게 내 시간을 내줄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할 거다. 학원 다니기도 바쁜데 무슨 중등부 미사를 가요.
전학생한테 없는 게 뭐게요
내가 살던 동네에는 수능 100일 전부터 학부모(사실상 어머니들만) 모여 기도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거기서 자식 자랑도 하고, 입시 정보도 교류하고, 아울러 이들이 대학을 성공적으로 진학하면 청년부 신입 회원으로 새롭게 이끌 수 있는 아주 효율적인 커리큘럼이다. 우리 엄마는 기도를 위해 성당에 나갔다가 나도 몇 번 데려갔다. 그렇게 거의 10년 만에 다시 성당을 다니게 된 나는 '미사를 보고 성체를 모시려면 첫 영성체 교리를 받아야 한다'는 보좌신부의 말을 듣게 된다. 대체 내가 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을까? 하지만 전학생 신분으로 서울에서 살던 나에게 친구는 학교 친구와 학원 친구밖에 없었고, 1년 내내 수학학원 고3반을 같이 다닌 친구를 우연히 성당에서 만난 게 내 '신앙생활 리바이벌'의 시작이었다. 10살이 넘고 처음으로 동네 친구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 무렵에 엄마와 성당에서 미사가 끝나고 잠깐 열리는 성물방에서 묵주팔찌를 샀다. 내 천성으로는 연분홍 같은 색을 좋아하지만 파란 로고의 특정 학교에 가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파란색 팔찌를 샀다. 그리고 난 파란색 학교에 갔다. 100일 동안 기원했던 그 학교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성당에 다니지 않는다. 종종 성당에서 사귄 친구들을 만나긴 하지만, 그리고 신의 존재를 특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 성당과 신부의 성차별에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성차별만 하나. 식권만 받고 봉사하러 갔는데 부모 재력 가지고 은근히 차별도 한다. 물론 성직자 얘기다.ㅋㅋㅋㅋ 성당에서 친해진 사람들이 하나 둘 사제서품을 받고 신부가 되거나 되고 있는 중이지만, 이 얘기는 언젠가 그들도 꼭 기억해야 할거다. 그런 사람들, 그래도 되는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내가 성당 안 간다고. 나와 오랜 친구가 되어가는 당신들도, 남자로서 무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무난하게 신학교 다니고 해외봉사 하고 유학 다녀와서 사제가 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인생은 진지하게 헤아려보라고. (이 또한 내가 그들을 인간적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내 묵주는 그렇게 끊어졌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톨릭은 모에가 있는 종교다. 개신교회의 세력이 압도적이라 하지만, 사람들이 신부와 악마에 대한 판타지를 좋아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가지고 있던 묵주팔찌가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지난 5월 교토 여행 때 끊어지고 다른 하나는 오늘 끊어졌(또는 끊어져있었)으니까 내 소유의 묵주 뭐시기가 이제 없다. 그래도 냉담은 겨우 면하고 있는 상태인데 고작 이걸 계기로 탈종교까지 하자니 어쩐지 찜찜하다. 뭐라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성당에 가지 않을 뿐이지 때로는 기도를 하고 싶거든. 그럴 때 물건은 좋은 도구가 된다. 묵주 팔찌라던지, 반지라던지, 목걸이라던지 여러 가지 살 건 많다. 요즘 애플그린 다이아몬드 또는 루비가 있는 묵주 반지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 기회에 하나 사게 될지도 모르겠다. 왠지 여행 갈 때에는 이런 게 하나라도 있어야 할 것 같단 말이지.
청담동에 좋아하던 성물샵이 있었는데 주인분의 건강 악화로 작년 초쯤 문을 닫았다고 한다. 여기서 묵주 팔찌를 살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스무 살 때 첫 미사보를 사면서 내 세례명도 새겼던 곳이다. 신을 믿지 않더라도, 딱히 사고 싶은 것이 없더라도 참 예쁘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공간이었다. 언젠간 또 그런 곳을 만날 수 있겠지. 묵주 따위 없이 태어난 삶이지만, 한 번 가져보면 계속 사고 싶어 지는 게 묵주팔찌라는 거 우리 가톨릭 친구들은 다 알고 있지요.
우레탄 팔찌를 사봤자 몇 년 후면 끊어진다는 것을 요 몇 달 사이에 깨달았으니 이제는 반지를 살 차례인가 보다. 오늘치 글을 다 썼으니 이제 반지 구경을 하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