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놓아 외쳐봐도
울리는 것은 내 화통뿐
작게 뛰는 가슴만이
오로지 솔직하다
다문 입은 외자 한마디 뱉을 뿐
솟아 나오는 가시는
애써 삼킨다
내 너를 어찌 떠나리오
작디작은 내 몸은
그저 탈뿐이다
직장생활 6년 차.
퇴사의 고민을 한지도 2000일이 넘어간다.
회사를 떠나고 싶다는 푸념을 할 때면
엄마는 3·6·9법칙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가 이야기하는 3·6·9법칙은
3개월마다, 6개월마다, 9개월마다
그리고 3년 차, 6년 차, 9년 차마다
그만두고 싶어 진다는 것.
엄마도 직장 생활할 때, 3·6·9법칙마다
마음속 사직서가 불쑥불쑥 나왔다며 나를 달랜다.
나를 회사에 묶어두는 건 엄마의 설득뿐만이 아니다.
숨만 쉬어도 내놓아야 하는 지출들은 나를 회사와 헤어지지 못하게 한다.
누구든 사직서를 가슴속에 품고 산다고 하지 않는가.
나도 그저
곱지 않은 말들을 가득 적어, 곱게 접어놓은 사직서를 품고 살뿐이다.
싫어하는 상사, 말 안 통하는 거래처, 뒷담 없이 못 사는 동료...
그들도 결국 사직서를 품은 채 출근하는 나 같은 월급쟁이일 뿐이다.
그런데, 왜
모두 같은 월급쟁이일 뿐이면서, 본인들도 빌런은 싫으면서
으쌰으쌰 다 같이 하루를 버텨내도 모자랄 판에
왜 스스로 빌런을 자처하며 기분을 상하게 하는가.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곳은 일의 끝, 퇴근이다.
그저 일이 잘 마무리되는 것이 한 가지 목표이다.
상사 당신의 화는 업무방해, 의지상실의 원인일 뿐이다.
내 글도, 내 격해지는 감정도 결국 내 가슴속에 묻을 뿐이다.
빌런 누구에게도 가시처럼 쏘아붙이지 못하고 삼켜버린
'네.' 한마디만이 허용될 뿐이다.
나는 버텨야 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