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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둔해서 다행이다

세상을 편안하게 살아가는 의외의 방법

by 달보


사람들이 말하는 '비린내'라는 게 대체 어떤 냄새인지 나는 평생 모를지도 모른다. 코로 숨을 쉬긴 하지만, 냄새라는 개념은 내게 희미한 미지의 영역이다.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말하면 잘 듣지도 못하고(청력의 문제는 아닌듯 하지만), 상한 음식을 먹어도 탈이 나지 않을 정도로 몸이 둔하다. 좋게 보면 건강하다 할 수 있지만, 주변 사람들은 날더러 하나같이 '둔해빠졌다'라고들 한다. 그나마 시력은 좋았는데 대학생 시절 밤 좀 샜더니, 2년 만에 1.5에서 0.1로 고꾸라졌다. 얼핏 보면 건강해 보이는데, 알고 보면 옳게 기능하는 게 몇 없는 이상한 몸이 내 영혼을 두르고 있다.


그런데 나처럼 둔하면 살아가는데 꽤 이점이 많다. 싱거워서 안 먹는 음식은 있어도, 비리다는 이유로 못 먹는 음식은 없다. 남들이 비린내에 질색하며 거부하는 음식은 내겐 별미다. 생선 껍데기나, 굴, 생고기 같은 날 것들이 특히 그렇다.


눈이 나빠진 만큼 세상이 흐릿하게 보이지만, 블러(blur) 효과를 입힌 듯 명확하지 않은 풍경은 의외로 낭만적이어서 꽤 즐길만 하다. 자세히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다 보면, 희한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지고 잡념이 줄어들었다.


둔해서 다행이다. 내가 둔하지 않았다면, 난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피곤한 세상 속에 살았을 지도 모른다. 꼭 자세히 봐야 할 때가 아니라면 주변을 대충 보며 살아가는 것도 세상을 편안하게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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