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던 공간들을 되돌아보며
내가 처음 글을 썼던 곳은 거실 창가에 놓인 6인용 원목 식탁이었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새벽 달빛을 받으며 글쓰기를 삶에 들이던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다 따스한 전구색 스탠드 조명 아래, 책상 하나만 놓인 단출한 작은 방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확실히 거실보다 집중이 잘됐다. 거실에 있으면 안방에서 자고 있는 아내가 마치 곁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공간은 넓어 좋았지만 식탁은 밥을 차려야 하는 곳이라 노트북을 놓고 치우는 게 번거로웠다.
의외로 방문을 닫는 일이 쉽지 않았다. 단순히 공간을 구분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방문을 닫으면 아내와의 연결이 끊어지는 것만 같았고,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붙잡았다. 마치 아내의 영혼과 결속이라도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랄까.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 24시간 카페가 새로 문을 여는 걸 보았다. 요즘이야 그런 카페가 흔하지만, 그땐 새벽에 운영하는 곳이 처음이었다. 처음엔 그곳에 갈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새벽에 일어나도 글이 잘 써지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그 카페가 떠올랐다.
카페는 집중력을 끌어올리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오가는 사람들은 마치 감시자 같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물론 유튜브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봐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껏 카페까지 와서'라는 생각이 들어 그러기도 쉽지 않았다. 카페는 뭔가에 몰입하는 데 있어 내게는 최적의 장소였다.
그러다 얼마 전, 나를 닮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덕분에 새벽 카페는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거실도, 방도 온전한 글쓰기 공간이 아니었다. 아이와 아내를 두고 매몰차게 방에 들어갈 수도, 거실에서 마치 남인 것처럼 글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글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어느새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 아니, 어쩌면 애초부터 그랬는지도 모른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글쓰기가 이리도 일상에 깊이 뿌리내린 걸 보면 말이다.
나름의 해법으로 이동식 사이드 테이블을 샀다. 튼튼하고 담백한 디자인에 유압식 높낮이 조절, 바퀴가 달려서 쉽게 옮길 수 있었다. 노트북과 마우스, 머그컵 하나를 올려두기 딱 적당한 크기였다. 그 테이블은 집 안 곳곳을 누빈다. 책상이 없는 안방에 들여 아이를 돌보며 글을 쓰기도 하고, 거실에서 놀고 있는 현이 곁에서 책을 읽기도 한다. 내 작업실, 작은 방은 이제 아내와 아이가 완전히 잠든 후에만 쓸 수 있어서 예전만큼 친숙한 공간은 아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장소를 옮겨 다닌 덕분에 글쓰기가 지루할 틈이 없었던 게 아닐까.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부지런히 다른 공간을 찾아다닌 것이 글쓰기 습관을 몸에 배게 한 비결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어디에서든, 어떻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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