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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괜찮으니, 너나 잘 살아라

여행 한 번 가지 못한 부모님을 떠올리며

by 달보


감정 기복 없이 매일 감사하며 무탈하게 살아가는 나에게도 아픈 손가락 같은 부분이 있다. 그중 하나가 부모님에 대한 것이다. 친구들의 부모님이 제주도를 다녀왔다는 소식이나, 책에서 부모님이 해외여행을 다녀와 자식에게도 권했다는 이야기를 읽을 때면, 내 마음은 바람을 타고 날아간 나뭇잎처럼 가라앉는다.


나의 부모님은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 단 한 번도 없다. 비행기도 탄 적 없으니, 많은 사람들이 흔히 가는 제주도조차 가보지 못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크게 개의치 않으며 살아왔다. 그럴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이가 좋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도 서로를 다정하게 챙기신다. 그러나 가난의 굴레는 벗어나지 못했다. 시대가 변하며 기성세대도 경제관념을 익혔지만, 우리 부모님은 예외였다. 그들의 맏아들로 태어난 나는 그들처럼 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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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도를 가볼까 고민한 적이 있다. 하지만 금세 접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여행비를 감당하면 당장의 생계 유지가 어려웠다. 안정적인 삶에 접어들기 전에는 약간의 예외지출에도 생활이 흔들렸다. 비행기라도 탔다가는 오히려 부모님께 생활비를 부탁해야 할지도 몰랐다.


둘째, 부모님의 평온한 마음에 쓸데없는 바람을 불어넣을까 걱정되었다. 부모님은 행복하다고 늘 말씀하셨고, 나는 그것이 거짓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여행을 다녀오시면, 그 경험이 오히려 현실과의 괴리를 키워 만족감을 떨어뜨릴까 두려웠다. 괜히 좋은 곳을 구경시켜드렸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허전함만 남지는 않을까 싶었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을 때도 있으니까.


이제는 예전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부모님과 해외여행 한 번쯤은 무리 없이 다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혹시라도 나중에 정말 큰돈이 필요할 때 책임지지 못할 상황을 마주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결혼 후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진 못하지만 전화는 꼬박 드린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우리는 괜찮으니, 너나 잘 살아라"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이 진심이면서도 그냥 하는 말이라는 걸 알지만, 마음 한편이 씁쓸하다.

스스로 잘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효도라고 여기며 살아가지만, 이 선택이 나중에 후회로 돌아오지는 않을까. 언젠가 부모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때는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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