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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인사가 어려울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by 달보


내가 사는 아파트 건너편에는 공원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내려가 공원을 가로지르면 '이런 곳에?'라는 생각이 절로 떠오르는 위치에 커다란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층고가 높은 4층짜리 건물로, 새하얀 외관에 모던한 분위기가 배어 있다. 커피 메뉴는 여느 카페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내부 가구들이 예사롭지 않다. 넓은 공간에 간격을 두고 배치된 테이블과 의자, 소파들은 단 하나도 같은 디자인이 없다. ‘여기 사장님, 가구에 진심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 플레이리스트도 특별하다. 보통 카페에 가면 이어폰을 꽂고 최대 볼륨으로 음악을 들으며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 나지만, 이곳에서는 이어폰을 잘 끼지 않는다. 그곳을 다니기 시작한 지 어느덧 4년이 되어간다.

나는 어디서든 ‘단골’이라는 입장이 된 적이 거의 없다. 바깥활동이 적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카페나 음식점에서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인사할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카페에서 오래 일하신 직원분이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에, 안녕하세...ㅇ"


그 순간 나는 막 커피 주문을 끝내고 3층으로 향하며 스마트폰으로 적립 포인트를 확인하던 참이었다. 예상치 못한 인사에 반응할 겨를도 없이,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어설프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하나씩 밟을수록 마음에 떨어진 불쾌한 추의 질량이 점점 늘어나는 듯했다. 그동안 수없이 커피를 주문하고 트레이를 반납하면서도, 단 한 번도 그런 개인적인 인사를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더 당황스러웠다. 그런데도 마치 친절에 대한 트라우마라도 있는 사람처럼 어색하게 반응한 내 모습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불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인식하는 것조차 싫었다. 오히려 스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고 싶었고, 도울 일이 있으면 기꺼이 돕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남들이 바라보는 내 모습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의 미묘한 표정과 갈 곳 잃은 눈동자를 통해 그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내 인격은 군대에 가기 전과 후로 나뉜다. 그 차이를 가르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인사였다. 원래 나는 인사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대상은 정해져 있었다. 어른이면서 어른답지 않은 사람, 선배이면서 선배답지 않은 사람에게는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굳이 마주쳐도 무심히 지나쳤다.


그런데 제대 후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나가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먼저 인사부터 건넸다. 상대가 탐탁지 않아도 일단 인사하고 보자는 마음가짐이 자리 잡았다. 군 생활 도중 접한 책의 영향이었을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냥 ‘어쩔 줄 모르겠으면 일단 인사부터 하자’라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인사를 잘하고 다니자 모든 사람이 나를 호의적으로 대했다. 동생들은 깍듯하게 형 대접을 해주었고, 형들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덕분에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인간관계는 확장되어 갔다.


그랬던 내가 어쩌다 이제는 인사 한 번에 인색해졌을까. 혹시 그동안 거의 모든 인간관계를 끊어버린 여파일까. 아니면 혹시 익숙한 내용만 찾아 읽는 틀에 박힌 독서를 하느라 편협해진 것일까.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읽는 독서행위가 오히려 역행(逆行)을 부르는 게 아닐까.


예전에는 누구에게나 잘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그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걸 너무 잘 안다. 사람들은 정을 나누는 듯하지만, 결국 서로의 필요에 의해 얽히고설킨 관계라는 걸 이제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사는 잘하고 싶다. 어느 정도의 보호막은 필요하지만, 이렇게 두껍고 거추장스러운 갑옷까지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가벼운 재킷 하나 걸치듯, 적당한 거리감 속에서도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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