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을 것들
누워서 앙앙 거릴 줄만 알던 현이가, 어느새 배로 바닥을 밀어 집안 이곳 저곳을 탐방하고 있다.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벽이고 천장이고 가끔씩 멈춰 서서 헤벌레 입을 벌린 채 한참을 쳐다본다. 그에 덩달아 나도 시선을 맞추게 된다. 아내는 글쓰기에 미쳐 있는 나와 달리, 현이 옆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폰을 보더라도 옆에서 본다.
왕할머니가 "좀 웃어라~!"고 할 정도로 무표정을 고수하는 현이가, 그래도 부모라고 나와 눈이 마주치면 헤벌쭉 바보 같은 미소를 짓는다. 나를 알아보고 웃어줬다는 사실에 한 번, 눈웃음에 두 번 녹는다. 그런 우리를 지켜보며 세상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내가 눈에 들어오면 세 번 녹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지금 이 순간이 내가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과거나 미래가 아닐까 하고.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타노스를 상대로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건 다름 아닌 '일상'이었다. 혹 나도 어벤져스 무리에 끼어 그들과 목숨을 건 전투를 치르고서 겨우 얻어낸 순간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하고, 아내와 현이를 보며 생각했다.
사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꽤 여러 번 했다. 이유는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당장의 순간이 소중하게 여겨진다는 점이다. 혹은 이 순간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말도 안 되는 의미를 덧붙이는 걸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떨까.
'결혼은 미친 짓이다', '결혼하지 않으면 인생 이지모드다'라는 문장이 종종 눈에 띈다. 사실 그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결혼은 어떤 면에서 미친 짓이었고, 결혼 후에 인생 난이도가 올라가는 건 이리 저리 머리를 굴려도 부정할 만한 겨를이 없다.
하지만 한 아내의 배우자, 한 아이의 부모로서 희생과 헌신을 배워가는 지금의 삶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생각을 품을 수 있었을까.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저 작은 생명에 얽매여 있는 게, 되려 축복이라 여길 줄 상상이나 해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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