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아이가 푹 자기 시작했다
나는 어릴 때 순한 아기였다고 한다. 주변 어른들에게서 "너희 엄마 아빠는 너를 거저 키웠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리고 "점잖다."라는 말도 자주 들었던 기억이 얼핏 난다.
작년 7월에 태어난 우리 현이도 나의 그런 기를 물려받은 것인지, 참으로 순한 아기였다. 아빠인 나보다도 주변 사람들이 먼저 알아볼 정도였다. 한눈에 봐도 온순한 아이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현이는 배고플 때 말고는 거의 울지 않았다. 어쩌다 쿵 부딪혀도, 기저귀가 한참 젖어도, 낯선 곳에 가도 웬만해선 우는 일이 없었다. 오죽하면 아버지가 "현이 우는 영상 좀 찍어 보내 봐라."라고 하실 정도였다.
그런데 그렇게 순하던 현이가 생후 6개월쯤 되면서부터 갑자기 잠을 잘 못 자기 시작했다. 원래도 긴 시간을 자는 편은 아니었다. 낮잠도 많아야 40분, 밤잠도 길어야 4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그래도 그 정도면 버틸 만했는데, 점점 더 심해졌다. 낮잠을 재우려 해도 아예 잘 생각이 없는 듯했다. 하품을 하면서도 눕히면 울었다. 자기 싫어서 우는 건지, 뭔가 불편해서 우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새벽이었다. 이전에는 최소 네 시간은 자고 나서 칭얼거렸는데, 어느 순간부터 한두 시간 간격으로 깨기 시작했다.
신생아 때만 지나면 밤잠은 곧 편해질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야 이런 지옥이 펼쳐질 줄은 몰랐다.
이방 저방 자는 곳을 옮겨도 보고, 달래는 방법을 바꿔보기도 하고, 아내와 교대로 맡아보기도 했지만, 그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백색소음기 같은 것도 효과가 없었다. 밝기 때문인지, 온습도 때문인지, 소음 때문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도 힘들었지만, 아내는 한 달 넘게 제대로 된 숙면을 취하지 못해 점점 지쳐갔다. 한두 시간씩 토막잠을 자며 하루 종일 현이를 돌보다 보니, 얼굴엔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았다.
그 여파로 나도 글을 쓰는 일이 더 힘들어졌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하루 두세 시간 정도는 카페에 가서 글을 쓰기로 했었지만, 밤새 한숨도 못 자는 아내를 두고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일주일 내내 카페에 가서 글을 쓰고 싶었지만, 현실은 일주일에 세 번 가는 것도 어려웠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글을 쓰고 싶은 욕구와 싸우느라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현이가 집에서는 그렇게 잠을 못 자면서도, 유모차나 카시트에만 태우면 금세 곯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처음엔 신기하다고만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계속해서 같은 현상이 반복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모차를 집 안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바운서는 아기 발달에 좋지 않다고 해서 애초에 살 생각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칠 대로 지쳐가던 와중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바디필로우에 눕혀볼까?'
바디필로우는 현이를 품은 아내의 배가 많이 불러왔을 무렵, 아내의 수면을 돕고자 사준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아내는 몸에 잘 맞지 않는다며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거의 새 것인 상태로 옷장에 보관되어 있었다.
하필 바디필로우가 떠오른 건, 일전에 ChatGPT에게 ‘왜 아기가 유모차나 카시트에서만 잘 잘까?’라고 물었을 때 들었던 대답 때문이었다. 여러 이유 중 ‘안정감’이라는 말이 특히 와닿았던 기억이 있었다. 매트 위에 덜렁 누워 있는 것보다 바디필로우에 감싸여 있으면 훨씬 안정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괜히 기대했다가 실망하면 그조차도 커다란 대미지로 다가올 만큼 심신이 많이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현이를 바디필로우에 눕힌 첫날 밤.
눈을 떠보니 새벽 4시였다.
뭔가 이상했다. 원래 같으면 중간에 최소 3번 이상은 깨야 했었다. 하지만 잠에서 깬 기억이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 어플을 확인해 보니, 아내가 밤새 현이를 다시 재운 흔적도 없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날 현이는 바디필로 품에서 무려 6시간을 넘게 잤다. 한 시간 남짓 자던 아이가 6시간을 내리 자다니, 곤히 자는 아내를 흔들어 깨우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게다가 이전처럼 어딘가 불편해서 깨는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배가 고파서 일어난 것이었다.
그럼에도 방심할 순 없었다.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다음 낮잠을 자는 걸 보고는 확신이 들었다. 이전까지 20~30분밖에 낮잠을 자지 않던 현이가, 한 번도 깨지 않고 1시간 30분을 잔 것이다.
일순간에 삶의 질이 확 달라진 것만 같았다. 로또라도 당첨된 것처럼 신이 나면서도, 이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런 잠돌이가 그동안 얼마나 피곤했을까.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것은 나와 아내뿐만이 아니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 그동안 '제발 잠 좀 자라'며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현이가 잠을 자지 못하니 아내가 고생이고, 아내가 피로에 절어 있으니 나도 모든 게 온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해결책을 찾고 나니, 갑갑하고 답답하던 마음이 한순간에 뻥 뚫린 것 같았다.
육아가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다. 근래에 수면 부족으로 힘들어지다 보니, 가끔 과거의 여유로움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아내와 결혼하고 아이의 아빠가 되어보지 못했다면, 요즘 느끼고 있는 이 수많은 감정들을 절대 경험하지 못했을 테니까.
육아는 생각보다 훨씬 힘들지만, 그 이상의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 자체에 감사하는 마음이 커졌다.
'자식은 자라면서 이미 효도를 다 한다'는 말이, 이제야 조금 이해될 것 같다.
[달보를 좀 더 알고 싶다면]